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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약속한 ‘한국원로연예인상록회’ 사무실의 지난 8일 모습은 코미디언 배일집 씨와 영화감독 임화섭 씨 등 누구에게도 낯익은 연예인들과 낙원동 동네 어른들로 북적인다. 동네 사랑방의 주인공 같은 그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이처럼 많은 비결’을 묻자 “내가 상대를 좋아해야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답한다.
“인사도 사랑이다.” 낙원동 거리를 50년 넘게 걷고 인근의 대중음식점을 늘 이용하는 그와 같이 있으면 인사받기 바쁘지만 그의 답변 인사도 늘 즐겁다. 이날도 그는 황해도 출신들이 즐겨 찾는 을지로 하동관 음식점에서 점심을 하고 걸어왔다. 그 전날 기자는 그와 대중음식점 ‘파고다타운’에서 만나 자리를 같이했다. 늘 인근 주민과 지인들 10여명이 북적이는 자리이지만 이날따라 옆자리서부터 인사치례가 오가며 한층 분주하다.
상대 알고자 적극 노력하는 것도 인연법
“사회자 까불어야 출연자들 마음 푼다”
27년 장수프로 ‘KBS전국노래자랑’ 진행
다음날 기자가 찾은 낙원동 사무실의 화제는 ‘송해의 길’이었다. “다문화 시대를 맞아 우리 시대 문화의 상징인 낙원동의 거리에 가장 많이 걸어다닌 인물을 넣어야하는 것 아니냐.” 종로3가국악로상가번영회 김동옥 회장이 간단명료하게 취지를 밝힌다. ‘송해의 거리’ 최초발의자는 전KBS 예능국장 이문태 씨와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 엄용수 씨다.
엄용수 회장의 취지는 명쾌했다. “대중문화예술인 중 최고령 현역이고 국민의 벗이라서 세대간 문화 소통의 중심”이란 말이다. 악기상이 몰려있고 음악인들의 작곡사무실과 음반사들이 출범지였던 낙원상가 주변 길 도로명을 ‘송해의 길’로 명명하자는 운동은 그렇게 한창이다.
지난 6월17일 종로2가 1일파출소장이 돼 정장으로 동네를 순찰할 때 주민들이 인사차 던진 그 말에 대해 당사자인 그는 특유의 능청과 애교로 맞받아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다문화 시대에 옛날로 돌리면 되냐.” 권위와 관록은 어눌한 표정에서 솟아나는 단호한 어투의 말솜씨에서 슬며시 살아났다. 분위기는 동네사랑방이지만 그의 말은 방송 사회자의 구력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최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솜씨는 ‘상황의 요리사’였다. 각종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방송연예프로의 현장에서 한 줄기로 진행을 끌고 가는 그의 즉석처리 기법이 어디서부터 나온 건가. 천부적 재질이냐는 질문에 그의 답은 저 멀리 비켜났다.
“성경과 불교경전이 다 같다. ‘효도’ ‘사랑’ ‘베풀자’는 3가지가 공동 화두다. 이것들이 대중가요 가사이고 추억의 노래다.” 그의 답은 사람 사랑에 대한 열정이다.
그의 열정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불교방송 개국준비 때는 전국의 사찰부터 암자까지 다 돌았다. 돌과 소나무 어디에도 부처님이 계시다는 마음으로 전국을 순회하고 모금하고 불교방송 현재의 건물 공사에도 열심히 거들었다.” 당시 모금 행사에는 ‘수덕사의 여승’을 부른 가수 송춘희 씨도 동행했다. 그는 대구 동화사에서 마이크를 설치하고 추억의 노래를 불렀던 장면의 회고에서 웃음이 만면 가득이다.
그는 부처님에 대해서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반복한다. “나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란 설명을 달아준다. 우리 주변 언제 어디에도 있는 부처님이기에 자신의 존재를 반조할 기회를 줘서 그렇다.
최고령자 95세, 최연소자 만 4세란 초유의 출연연령 극간을 매우는 그의 ‘전국노래자랑’ 사회 솜씨는 우리 사회 내면을 속 깊이 보게 만든다.
출연자들은 연령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직업과 삶의 환경 모두가 천차만별이다. 꽤나 특색있다고 자신하는 인물들이 평생 한번 TV출연 기회를 잡고 짧은 시간에 몰입하는 찰나의 공연, 그 길목에 선 그는 “누구나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길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회자이다. 출연자와 시청자, 심지어는 연출자와 음악 악단까지도 그가 만든 공간에서 동시에 만족감을 느끼므로 인해 ‘전국노래자랑’ 프로가 28년간 지속됐다.
‘공간 창출의 마술’이란 용어가 어울릴까. “연출은 처음부터 없다. 다만 즐겁다보니 아주 기막힌 장면들이 연출처럼 나온다. 그래서 다들 즐겁다. 출연자와 관객들이 한 덩어리가 되는 곳에 내 자신이 있을 뿐이다.” 무대가 그처럼 즐거워지는 이유란 아주 단순했다. “우선 내가 편하게 비쳐져야 한다. 사회자가 까불지 않으면 출연자들이 마음을 풀지 못한다.”
그토록 전국 어디서나 능청과 애교를 부릴 소재는 뭔가. “먼저 시장부터 찾아 거리를 돌아다닌다. 국밥도 사먹고 막걸리도 먹고 그들의 마음을 읽고 동시에 나를 낮춘다.” ‘사람 사귀는 방식도 그렇게 하면 되는가’란 기자의 질문에 답도 그렇다. “내가 먼저 상대를 알고자 노력해야 한다. 불교의 하심(下心)이란 가르침도 그런 것 아닌가.”
자그마한 외모부터 검붉게 그을려 어디서나 마주쳐도 동네어른 같은 거리낌없는 매력이 방송프로그램을 끌고가는 견인력은 강인하다. 천연스러움이 위엄을 넘어서는 소탈한 멋도 그의 장기다. 음식 생각이 전혀 없을 때도 출연자들이 들고 나온 향토음식을 덥석 한입에 먹는 것이 연출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건 삶의 현장이다. 그(출연자)와 나의 소통이고 대화이다”고 넘긴다.
아흔 넘은 할머니부터 3살배기까지 오빠이고 누구나 길거리에서 형님 호칭에 주저함이 없이 따라붙는 인연소치란 말이다. 그의 사랑론은 마지막으로 “인연법도 하심(下心)도 사랑이다”란 불교였다.
■ 방송인 송해 씨는…
황해남도 해주시 재령군 출생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 한국군 통신병 복무 중 정전협정 통신문을 모스부호로 전송했다. 이전 해주예술학교 성악학과 전공에 1955년 창공악극단 가수로 데뷔, 12편의 영화와 악극단 배우, 2006년 3집 앨범 ‘송해송 나팔꽃 인생’으로 정식 가수 데뷔한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방송인이자 명사회자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그의 소원은 ‘전국노래자랑 황해도 편’ 진행이다.
[불교신문 2739호/ 7월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