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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ICA 홍보모델 '심은경'

淸潭 2011. 7. 19. 17:03

KOICA 홍보모델 '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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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정치부 차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해외봉사단을 모집하면서 미국 평화봉사단원이었던 제게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그래서 사진 촬영에 응했는데 이렇게 나를 돋보이게 하는 광고가 나올 줄 몰랐어요."

얼마 전 이임(離任) 인터뷰를 위해 만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에게 KOICA가 그를 홍보모델로 만든 신문광고를 내밀자 그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다음 달 3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스티븐스 대사는 KOICA 홍보모델을 한국인들이 이별 선물로 주는 훈장(勳章)으로 여기는 듯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한미국대사가 한국 정부기관의 신문광고에 나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는 "미국과의 동맹을 재고해야 한다" "한국과 이혼하라"는 목소리가 두 나라에서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로 불안정했던 양국 관계가 안정됐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난 3년간 스티븐스 대사의 활동이 호평(好評)만 받은 것은 아니다. 한·미 관계의 내실을 다지기보다는 일반 한국인을 상대로 미국의 이미지를 다듬는 '공공외교'에만 신경을 쓴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녀(海女) 체험을 하고, 연극 공연무대에 서고,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그에게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분명 그런 지적을 받을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티븐스 대사는 시골 장터를 찾아 촌부(村婦)의 손을 잡고, 전임자들이 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지방도시를 돌며 한국인들의 여론을 청취한 유일한 미국대사였다. 그의 관저는 가수 김태우가 열창하는 콘서트장, 탈북 대학생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한 리셉션장으로 변모했다. 1980년대 반미(反美)의 진원지였던 광주광역시의 한 여고(女高)에서 강연을 한 것도 양국 관계를 가깝게 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하루 24시간을 사는 미국 외교관이지만 한국에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느낄 수 있었다. 지난달 그의 자전거 여행에 동행해서 경기도 수원시 화성(華城)을 지날 때였다. 그가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동행한 16명의 미국 외교관·군인에게 사도세자와 화성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부채춤 공연이 벌어지는 것을 보자 갑자기 진로를 바꿔 다가간 후 탄성을 질렀다. 그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떠나기 싫다"고 한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 어느 때보다 양국 관계가 평안한 상황에서 임기를 마치는 스티븐스 대사지만, 그는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재의 한·미 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주한미국대사의 업무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했다. 자전거가 멈춰 서는 순간 쓰러진다는 것이다.

스티븐스 대사가 지난해 출간한 책의 제목은 '내 이름은 심은경입니다'다. 그는 이 저서에서 한·미 관계는 '최선을 다하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는 영어 속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반도의 미래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긴밀한 한·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스티븐스 대사가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온 한·미 관계를 다음 달 부임하는 한국계 성 김 대사가 더 높은 고지(高地)에 올려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