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글은 한계암의 스님방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액자나 족자가 아니라 그냥 도배를 하여 붙인 것인데, 혹여 벽지를 다시 붙인다면 없어져 버릴 글입니다. 이 글 말고도 몇몇 글이 더 있는데 혼자 보기 아까워서 소개를 합니다.
한계자(寒溪子)는 한계암을 지은 혜각스님 자신을 일컬음인 듯한데 무신년(戊申年) 7월 25일이라고 하니 무신년은 1968년입니다. 혜각스님은 불모(단청을 하는 사람)로써 유명한 스님인데 80년대 후반에 한 번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벌써 90세 가까운 노인이셨는데 100 수를 넘겨서 입적하셨습니다.
오른쪽의 글과 왼편의 글은 서로 다른 날에 쓴 것인데 도배를 할 때 나란히 붙인 것입니다. 또한 오른편 오언절구는 사명대사의 시라 들었는데 왼편 칠언시는 잘 모르겠습니다. 종이는 당시 많이 사용하던 분당지의 일종인 듯한데 청정한 산골의 암자에 붙여져 있어서 보관 상태는 좋은 편입니다. 또한 글씨체도 특이하여 마치 규중 처녀가 쓴 듯한 수줍음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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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편 글을 먼저 살펴봅니다.
朝遊山色裏(조유산색리)
暮臥水聲中(모와수성중)
窓前鳥語亂(창전조어난)
驚起日輪紅(경기일륜홍)
아침에는 푸른 산 속에서 놀고 저녁에는 물소리 가운데 눕는구나. 창 앞에서 새소리 난무하여 놀라 깨어보니 둥근 해가 붉도다.
1968년 7월 25일 한계자
이 글은 한가한 산사의 정경을 그림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산색과 물소리 들으며 수도하는 가운데 잠자리에 들었으나 아침이 오는 것도 잊고 늦잠을 자다가 창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언뜻 잠에서 깨어 밖을 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정경이 파노라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토굴 속에서 용맹정진 수도하다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깨달음을 얻어 무릎을 탁 치고 하늘을 보니 붉은 해가 축하를 하듯 싱글벙글 내려다 본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
왼편의 글입니다.
祖師無眞假(조사무진가)
何處有影像(하처유영상)
隻履不傳傳(척리부전전)
兒孫保妄想(아손보망상)
조사(달마)께서는 진짜도 가짜도 없는데 어느 곳에 영상이 있단 말인가 신발 한 짝으로 전전하지 마소 어린 후손들이 헛된 생각에 빠질라
달마대사가 죽고 난 뒤 삼 년 뒤 인도에 사신으로 갔던 어떤 사람이 중국으로 되돌아오는 길목에서 달마대사를 만났습니다. 달마는 신발 한 짝만 들고 지나가는 것을 그 사신이 알아보고 인사를 하며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서쪽으로 간다며 조정의 임금이 바뀐 것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귀국하여 조정에 알리고 달마의 묘를 파보니 시체는 없고 신발 한 짝만 놓여있었다는 고사가 있는데 이 시는 그 이야기인 듯 합니다. 말하자면 죽은 후에 다시 환생한다는 따위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일종의 조롱입니다. 신발 한 짝 들고 다니지 말아라, 후손들이 수행을 하여 깨달음을 얻기도 전에 죽어 환생한다는 등의 허황된 망상에 빠질까 두렵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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