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민상 수영대표팀 감독이 13일 오후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 수영대표팀 포상식에서 용퇴를 발표하며 박태환과 포옹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기흥 대한수영연맹 회장. /뉴시스
노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에서는 물러나지만 대한수영연맹과 관계는 유지하면서 유망주 발굴·육성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그는 “박태환이 지금 한국 수영 기둥이지만 제2, 제3의 박태환을 어디든지 쫓아가서 발굴해 내겠다”고 강조했다. 노 감독은 “어디든 불러주면 달려가서 도와줄 것이다. 상당히 마음 아프지만 훌륭한 후배들을 위해 이쯤에서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좋은 일 아닌가 생각한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며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이기흥 대한수영연맹 회장은 노 감독이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이미 “많이 지쳤고 힘들다. 선수들의 기량도 많이 올라왔다”며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연맹에서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자며 노 감독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당분간 경영대표팀은 수석코치인 안종택 코치가 감독직을 대행하고 연맹은 경기력 향상위원회를 열어 새 감독을 영입할지, 내부에서 뽑을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감독은 수영 명문인 오산중을 거쳐 오산고에 진학했지만,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1980년 군 복무를 마친 뒤 선수가 아닌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 감독은 박태환을 7살 때부터 가르쳤다. 5살 때 천식이 있던 박태환에게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시킨 그의 부모는 처음엔 가까운 스포츠 센터 수영반에 보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선수로 키워볼 생각에 수소문 끝에 노 감독의 수영 클럽을 찾아 박태환을 들여보냈다. 박태환의 타고난 지구력과 폐활량을 보고 가능성을 알아차린 노 감독은 줄곧 그를 지도해왔다.
노 감독은 2006년 8월 캐나다에서 열린 팬퍼시픽선수권대회 직전 처음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고교 중퇴 학력으로 수영대표팀 감독을 맡은 것은 노 감독이 처음이었다.
노 감독은 이후 경영대표팀 감독을 계속 맡아 박태환이 아시안게임 2회 연속 3관왕(2006·2010년)을 비롯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 등을 따며 세계적 스타로 성장하도록 이끌었다. 2009년에는 소강체육대상 지도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