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책 속의 향기

불교적 시각으로 읽어낸 건축의 지혜

淸潭 2010. 8. 15. 14:24

불교적 시각으로 읽어낸 건축의 지혜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원철 스님 지음/뜰
기사등록일 [2010년 08월 09일 15:52 월요일]
 

“토굴이란 말 자체에서 주는 어감은 때론 팽팽한 긴장감으로 다가오고 때론 느긋함이 함께하는 이중성을 가진다. 그것으로 인하여 대중 생활을 하는 출가자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살아보기를 꿈꾸는 이상향 같은 곳이다.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은 토굴에서 밤낮을 잊은 용맹 정진의 결과로 수행 경지가 한 차원 높아진 경우가 많았다.-본문 중에서-”

그동안 대중성과 함께 깊이를 갖춘 글을 꾸준히 선보여 온 원철 스님이 옛 절집에서 스웨덴 숲속 교회정원에 이르기까지 불교적 관점에서 건축을 읽어낸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를 펴냈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건축물과 건축의 본질을 오가며 때로는 사찰 문화의 미래까지 사고하면서도 결국은 불심으로 돌아오는 경쾌한 글쓰기다.

건축학자들은 “건축은 보는 사람마다 모두 달리 읽을 수 있고, 건축을 읽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어느 정도 머리로 건축을 이해했느냐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축을 온전하게 읽어내려면 가슴으로 읽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온몸으로 읽어야만 한다”고 건축 읽기의 참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스님이 어떻게 그런 건축읽기에 도전했을까. 원철 스님은 오래전 경전보기와 글쓰기 외에 취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건축, 아니 건축책 읽기를 취미(?)로 택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앞의 예문처럼 토굴을 이상향으로 상정하기도 한 스님은 이 책에서 절 안 스님의 신분이면서도 절 밖의 시선을 갖추었고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전문성과 역사성 그리고 문학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 있네』는 건축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책 곳곳에 다양한 설화와 온갖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 역사책이나 문학을 읽는 즐거움도 함께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스님의 눈으로 불교적 시각에서 본 건축물들의 이모저모를 풀이하고 있어서 마치 법문 같기도 하고 불교와 세상의 또 다른 소통창구를 보는 듯하기도 하다.

 
풍경에 달린 물고기가 원효 스님의 바위굴을 바라보고 있다.

실제 스님은 ‘근심을 풀다-절집 해우소’에서 “옛 어른들은 변소 건물을 손 볼 때는 간소하나마 꼭 의식을 치르도록 했다. 고사를 마친 후 헐어낼 건물을 대중들이 돌아가며 막대기로 몇 번 큰 소리가 나도록 두드렸다. 이유는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알고 살고 있는 모든 미물들에게 알려주고 미리 옮겨 갈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배려다”라고 쓰고 있다. 절집의 오래된 관습 중에서 측신을 달래야 뒤탈이 없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명 존중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절개의 상징-개성 선죽교’ 편에서는 선죽교 다리 밑에 숨어 있던 자객에게 죽임을 당한 정몽주와 송도삼절의 주인공 황진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끌어왔고, 스웨덴 숲속의 교회정원이라고 불리는 스코그스키르코가르덴 묘지공원과 이탈리아의 도시형 묘지인 산 카탈도 공동묘지를 소개하면서는 죽은 자를 어떻게 하든지 멀리 밀쳐내려 하는 우리의 실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글쓰기는 곧 일상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원철 스님은 건축을 글로 읽어내면서 그 건축에 시를 입히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언뜻 스님이 무슨 건축이야기냐고 반문할 수도 있고, 아마추어적 사견을 벗어날 수 있겠나 하는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으나 스님의 건축 읽기는 그 관심의 폭이 방대하고 깊은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모든 건축적 대상을 스님이라는 신분 그리고 불교라는 입장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 한계와 취향을 분명하게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스님이 이 땅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사람 냄새와 손때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격조 있는 아름다움이 스며 있고, 독자들은 거기에서 멋스럽고 고졸한 문화적 아취를 느끼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무언의 가르침을 배우게 된다. 1만 8천원.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1059호 [2010년 08월 09일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