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원한은
원한에 의해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직 용서로서만 원한은 사라지나니
이것은 변치 않을 영원한 진리다
- 『법구경』
먼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화창한 봄날, 창가에 기대어 아름다운 꿈을 엮어가는 온화한 심성을 가진 한 여인이 있었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일은 결혼을 한 뒤 오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빼고는 매우 행복한 여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여인은 아기를 기다리는 성실한 남편에게 미안해서 착한마음으로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여 남편을 그녀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두 번째 여인은 아기를 낳았고 남편의 사랑은 두 번째 여인만을 향하게 되었다. 행복했던 여인의 마음에선 어느새 원망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두 번째 여인과 아기를 미워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그랬더니 남편 역시 첫 번째 여인을 미워하여 역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미움과 원망은 끝없이 펼쳐져 갔다. 원한의 앙갚음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고 고통은 무한대로 퍼져나갔다. 우리의 삶은 이러한 원망과 앙갚음의 순환인 것이다.
원한은 원한으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여인이 상대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 결국에는 미움과 원망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이를 중생의 어리석은 업보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중생의 자업자득일 뿐, 아무런 외적인 요인은 없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웠던 마음에서 일순간 원망의 불꽃이 일어나고 그 뒤에 이어지는 고통과 악의 연결고리는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우리들의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노와 전쟁도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처럼 단순히 한 순간의 악한 마음에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기신론』에서는 ‘홀연염기(忽然念起)’라고 한다. 홀연히 일순간에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서 악의 씨앗을 뿌린 다음에는 죄업의 꽃을 피우고 원한의 열매를 맺어서 악업의 순환 고리가 형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악의 연결고리를 한 칼로 끊어버리는 지혜인이 되라고 타이르신다. 그리고 끊어버리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니, 그것은 상대를 향한 용서하는 마음뿐이라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원한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하여 우리가 몸소 행해야할 ‘용서하는 마음’ 이라는 말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실천하기에는 몹시 힘든 이야기이다.
내가 누구의 잘못을 용서해 준다고 하면 이것은 어려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대를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남을 원망하는 마음을 밖으로 끌어내 버리는 일을 먼저 실천해 보자. 남을 원망하는 마음을 밖으로 끌어내는 일은 바로 자신의 내면을 향한 참회의 기도이다. 나의 깨끗하지 못함, 나의 죄업의 소산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먼저 맑히려는 행위가 참회의 마음인 것이다. 남을 향한 미움까지도 나의 깨끗한 마음속에 담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자. 자신을 향한 참회의 행위가 깊어지면 바로 타인을 향한 용서의 행위로 이어질 것이다. 남의 잘못과 악업까지도 나 자신의 소산이라고 받아들여서 함께 참회하고 함께 용서하는 일을 일상화 해보는 일이다.
이를 『법구경』에서는 ‘원한은 오직 용서로서만 원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고 깨우치고 있다.
싸우는 비구 부처님도 외면
부처님 당시 꼬삼비 지역에 안거하고 있던 두 비구 사이에 사소한 시비가 벌어졌다. 공동체생활에서 지켜야할 지침을 한쪽 비구가 지키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처음은 두 비구가 서로 허물을 지적하고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제자들 사이에서 상대방 스승의 허물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런가했더니 어느새 재가의 신도들까지 패가 나누어져서 서로를 헐뜯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꼬삼비 비구들에게 싸움을 그치고 화합하라고 여러 차례 타이르셔도 결국은 화합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계속 싸움을 이어가는 꼬삼비 비구들을 뒤로하고 홀로 숲속에서 3개월을 보내셨다. 어리석은 비구들이 싸우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홀로 계시는 여래의 모습은 참으로 맑고 향기로웠다. 숲속에서 지혜로운 코끼리의 시봉을 받고 재치 있는 원숭이의 공양을 받으면서 혼자 명상에 잠겨서 지내신 이야기는 꼬삼비 비구들의 싸움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 원망과 분노를 떨쳐버린 참으로 고요하고 아름다운 성자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꼬삼비 비구들은 재가신자들에게 공양을 거절당하는 경책을 받고서야 비로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서로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이 꼬삼비 비구들의 사건을 통하여 어리석은 자와 벗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남기신다. 홀로 소요(逍遙)하는 코끼리처럼 차라리 혼자 거닐지언정 서로 이해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이들과는 벗하지 말라는 교훈인 것이다. 이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행위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의 목숨조차도 언젠가는 끝남이 있다는 진실을 망각하고 끈질기게 집착하고 싸움을 이어가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헛된 싸움을 그치고 모두를 용서한다. 꼬삼비 비구들의 싸움의 한가운데서 이 싸움을 피하여 부처님이 향하신 곳에 숲과 동물이 등장하고 조화로운 일상이 펼쳐지는 것은 우리가 실천하는 용서와 화해의 파장은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우주적인 시야를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자연과 동물에게까지 미칠 수 있는 모든 생명을 평화롭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부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932호 [200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