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개종해서 죄송합니다”

淸潭 2008. 6. 3. 14:37

“개종해서 죄송합니다”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사찰에 찾아와 스님 앞에서 말했다. “스님, 평생 불자로 살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개종해야 합니다. 다 늙은 몸, 죽을 날이 머지않았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이 개종을 하라는군요. 거절할 도리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노인의 사연은 이렇다. 맞벌이 부부인 아들 며느리가 개신교 신자인데다, 얼마 전부터 맞이한 호스피스 역시 성경책을 읽어주고 주기도문을 외는 등 개신교 일색이라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다는 이야기다. 급기야 아들은 개종을 강권했고, 힘없고 나약한 이 노인은 어차피 사후(死後)에 자신의 영정 앞에 찬송가가 울리지 않겠느냐면서,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군포 법해사 주지 영경스님은 이 같은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노인이 한둘이 아니라고 귀띔했다. 스님은 그렇잖아도 쇠약해진 몸과 마음에 강제적 개종을 통한 혼란까지 겹치다보니 없는 병까지 생길 정도로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했다.

몇 해 전 군포시가 개설한 호스피스 교육프로그램에 동참했던 스님은 교육 첫날부터 깜짝 놀랐다. 개신교 교리에 입각한 호스피스 이론과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애매모호한 생사관을 교육하고 있었다. 충격이 컸던 스님은 그 길로 나와 사찰에서 ‘불교 호스피스 자원봉사단’을 결성, 자체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불교의 생사관이나 사상으로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호스피스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도록 초중급 커리큘럼으로 나눠서 교육했다. 그럼에도 이웃종교가 시행하고 있는 호스피스나 노인케어의 규모와 시스템은 불교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개신교 성직자가 되려면 1종 운전면허와 사회복지사 자격은 필수라는 말이 돌 정도로 이웃종교의 복지포교는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불자임을 포기해야 하는 이들을, 불교계는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불교신문 2431호/ 6월4일자]

2008-05-31 오전 10:28:35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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