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께서 복조(福祚)를 열어 천의에 응하고 민의에 순하니 이때에 문무충훈의 신하들의 실로명세(세상에서 뛰어나)의 위인이 아니면 그 어찌 능히 용의 비늘과 봉의 날개를 거린(擧鱗)하였겠는가! 저 계림군 김공의 역사에 실린 사업은 비록 적료하나 산하에 맹시한 철권과 기린각에 모신 도상은 가히 무궁토록 빛날 것이다.
어찌 주나라의 십란(주 무왕을 보좌한 열 사람의 신하, 난의 치의 뜻)이라고 해서 모두가 서술한 전기가 있겠는가! 공의 체백지장(體魄之藏)은 광주오포태현 간좌원에 있으니,예전에 그 곳이 실전되었다가 후손 상국이신 사이 이 고을 유수로 있을 때에 고로들에게 수소문하여(찾았으나) 오직 인사라는 것은 궁한 연후에 통한다고 하더니,이는 자못 공의 성대한 훈업이 능히 신인의 도움을 얻었다고 하겠다.
예전에 주제의 묘소가 타인의 소유가 된 적이 있으니, 대저회옹(주자)이 손자가 되었음에도 오히려 이러하였으니, 그 수호하는 정성이 진실로 또한 어렵다 고 하겠다. 마침내 흙을 쌓아 봉분을 다졌다. 그 뒤에 현각을 세우지 못하고 공의 사손 참봉 정택이 그 아들 인시을 시켜 나에게 신도비문을 청하니 내 끝내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그 보록을 살펴 서술한다.
공의 휘는 균이니 그 선대는 신라 경순왕에서 나왔다. 휘 순웅은 고려에 벼슬하여 장군이 되었으니 이로부터 대대로 대관이 나왔다. 증조의 휘는 수(粹)이니 예빈경이오 조의 휘는 기연(起淵)이니 판서요 고의 휘는 지윤(智允)이니 증 찬화공신 참지문하부사이다. 공은 날 때부터 특이한 자질을 갖추시어 엄연하고 굳세며 기국(器局)이 깊고 문사(文詞)가 뛰어나니, 제배들이 감히 바라볼 수도 없었다. 공양왕초에 밀직부사가 되고 신미년 가을에 왕이 수창궁에서 잔치를 베푸는데 공이 취흥을 타서 시 한 수를 읊었더니 헌사(憲司)의 탄핵을 받게 되었다. 안중서로생(安中 書魯生) 정복제총(鄭復齊摠)이 모두 시를 지어 위문하였다. 흥무 임신년에 익안대군 방의 등 39인과 더불어 성주를 추재하여 이미 수훈을 세우시니 봉호를 내려 주었다. 예로부터 제왕이 일어날 시에 비록 천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또한 충직하고 지혜스러운 사람이 나서서 앞 뒤로(주서해 준) 뒤에야 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늘과 사람이 같이 응하는 이치가 또한 속일 수 없다고 하겠다.
건원릉과 헌릉의 신도비의 음사에 모두 공과 배공 극렴(1325~1392) 여러 공신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벼슬은 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이르고 시호는 재숙공이오 사당은 백세불천지묘로 되었다. 생년은 고증할 수 없고 무인 8월 10일에 돌아가셨다. 공은 전후배(前後配)가 있으니 묘소에 합부하였다. 배 안동권씨는 판서 현의 딸로 1남을 두셨으니 맹성(孟誠)이라 판서 희경공이오, 1녀는 신한에게 출가 하였으니 장령이다. 배 무송윤씨는 지평 식녀로 2남을 두었으니 중성(仲誠)은 판봉상사사로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계성(季誠)은 산원대경으로 판서에 추증되었다. 장방은 무후하여 차방이 공의 제사를 주관하였다. 안민(安民)은 판사재감사요 신민(新民)은 집현전부제학이오, 인민(仁民)은 (한성)판윤이오 사정 신서와 사정 박경지는 두 여서이다.계방에 종순(從舜)은 한성부윤이오 정랑 권격은 여서이다.증현손이하는 모두 기록하지 못하니 자손이 번역하고 관작이 빛나니 명공신경이 대대로 끊어지지 않았다. 생각건대 공이 쌓은 음덕의 소치라 하겠다. 그 뒤로 가장 뛰어난 분은 대사헌 승경, 판결사 춘경, 목사 태경, 판의금 하경, 전한 전, 좌찬성 당, 참판 시, 직제학 천령, 판서 인손, 대사헌 만균, 절도사 경원, 좌의정 경림부원군 명원, 참의 위, 찰방 성지, 판서 남중, 목사 원립, 부제학 경여, 참판 시진, 현감 진수, 감사 몽신, 영돈령 경은, 부원군 주신, 참판 재현, 참의 후연, 참봉 성호, 군수 정운, 판서 성운, 판서 효대, 판서 기대, 감사 여, 좌의정 사복, 참판 영작, 집의 성갑, 판서 정집, 좌상 홍집, 승지 철원, 참판 승집, 판서 창희, 부윤 철희, 참의 춘희, 유림 교헌 공으로부터 여기까지가 18대손이니 과거로써 미래를 점쳐 볼 때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한문공이 일찍 이르되 "누가 그 냇물을 풍성하다 하였는고! 그 근원은 생각지 않는가" 하였으니, 나는 공에게 또 이렇게 말하겠다. 명왈 이 광릉의 언덕은 훈덕을 갈무린 바라. 산이 무너지지 않고 물이 마르지 않을 지니, 바라건대 그 이름 길이 빛나리라.
시 문충공 연제 송병준 근찬 18대손 가선대부 중추원의장 송당 김정목 근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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