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신정아 씨 가짜학위를 계기로 사찰의 각종 횡령과 비리 의혹 등 불교계 문제가 언론과 검찰의 표적대상으로 떠오른 가운데 동국대 이사장 영배 스님과 총무원 집행부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러한 결의와 관련해 순수성 결여된 계파 간의 정치적인 타협일 뿐 이라는 비판도 함께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4일 174차 중앙종회 결의로 구성된 종단현안문제대책위원회(이하 현안대책위)는 9월 29일 오전 11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제2차 회의를 열고 ‘책임론’에 대해 뜻을 모았다.
종회의장 자승 스님을 비롯해 종회의원 장적, 성직, 영담, 지홍, 상운, 원담, 태연, 덕문, 수현, 운달 스님과 총무원 기획실장 승원 스님 등 15명의 위원 중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사장은 현하의 사안에 대하여 도의적 책임을 져야한다 △집행부는 종단 내외의 사안에 능동적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장윤 스님은 이후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한다 △종단은 언론, 정당, 검찰의 불교음해에 대하여 힘을 모아 강력하게 대처해야한다고 결의하고 이를 당사자 및 집행부에 촉구키로 했다.
이번 현안대책위의 결의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누구하나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종헌기구에서 결의한 이번 책임론과 쇄신론은 향후 종단 흐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책임론’은 명분이고 속내는 이번 사태를 무마하려는 각 계파간의 정치적인 타협일 뿐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에 앞서 현안대책위가 구성될 때부터 동국대 사태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영담 스님이 포함돼 있는데다가 일부 종회의원 스님이 재가 단체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이를 묵살함에 따라 여론 회피용 대책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이번 결의문에서 동국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영배, 장윤 스님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현안대책위원인 영담 스님도 이번 ‘책임론’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실제 영담 스님은 영배 스님과 함께 개인 횡령 의혹을 포함, 부설병원 의약품 납품비리, 교직원 채용비리, 중앙대 필동병원 매입과 관련된 리베이트 수수의혹 등이 수사대상에 올라 있으며, 특히 영담 스님이 주지로 있는 부천 석왕사가 지은 지 30년 안 돼 ‘전통 사찰’로 지정되고 이를 근거로 지난해에 1억2000만원을 지원받았던 점 등이 일간지들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조계종 한 종회의원 스님은 “총무원이 능동적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은 추상적이지만 특정 위원에 대한 부정비리 의혹은 구체적이고 밝혀져야 할 부분으로 상황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하고 “특정인은 배제한 채 영배, 장윤 스님과 집행부만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은 대책위의 한계와 이해타산의 정치적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가단체 한 실무자도 “대책위가 개혁과 자정을 요구하는 재가자의 참여를 배제하고 첫 모임을 호텔에서 비밀스럽게 열 때부터 이 모임이 자성이나 개혁의 의지가 없는 것임을 알았다”며 “최근 터지고 있는 문제들 배경에 검찰과 언론의 특정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승려 개인의 비리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히 규명할 때 조계종은 대중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919호 [2007-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