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조계종

당대 최고 학승의 고뇌

淸潭 2007. 9. 13. 08:33

당대 최고 학승의 고뇌

 


[중앙일보 백성호]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智冠.75.사진) 스님은 당대 최고의 학승(學僧)이다. 금석학 분야에 있어선 국내 1인자로 꼽힌다. 학계에선 '국보급'이라고 평할 정도로 학문적 성취도 높다. 동국대에서 불교학을 전공,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중에는 동국대 총장까지 역임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 내놓은 연구 성과도 무척 크다. 2005년에는 만해대상(학술부문)도 받았다.

그런 지관 스님이 '고뇌'에 빠졌다. 한국 사회가 '학력 위조 파문'으로 떠들썩하기 때문이다. 그의 학문적 삶에는 미묘한 이면이 있다. "학력 위조 파문과 지관 스님이 무슨 상관이 있나" 싶겠지만 '고민'이 있다. 지관 스님에겐 '졸업장'이 없다.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중.고교 졸업장이 없다. 그래서 대학 편입에도 사연이 있다.

지관 스님은 15세 때 합천 해인사로 동진 출가(어린 나이에 출가)했다. 출가해 사미계(1947년)를 받은 지 3년 만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혼란한 와중에 승려 생활에선 학교 공부는 생각도 못할 처지였다. 대신 그는 해인사 강원(講院.승려 교육기관으로 요즘의 승가대학)에 들어가 불교 공부를 했다. 그리고 24세 때 강원을 졸업, 6년간 해인사 강원의 강주(학장에 해당)를 역임했다.

그러다 해인사 관계자들이 세운 4년제 단과대학인 마산대(47년 설립 당시는 국민대학이었다가 해인대-마산대-경남대로 명칭 변경)에 편입학했다. 그게 61년이었다. 지관 스님과 비슷한 연배인 한 스님은 "당시 해인사에서 '인재를 키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강원과 율원(律院)에서 머리 좋은 젊은 강사를 뽑았다. 바깥세상처럼 근대적인 대학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했다. 일제시대에도 '인재'를 키우려고 불교계는 젊은 스님들을 대거 일본에 유학을 보냈다. 그러나 스님들의 상당수가 환속하면서 불교계에선 "바깥세상 공부를 시키지 말라"는 게 오랫동안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다 60년대에 다시 '젊은 승려를 뽑아 근대교육을 시키자'는 의견이 대두된 것이다.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졸업장'이 문제였다. 일제시대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는 혼란의 시기에 제대로 학교를 나온 스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관 스님은 "마산대에 편입학할 때 해인사 불교전문강원 이수와 강의 경력 서류를 제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마산대에서 특별사정을 통해 3학년 편입학을 허용한다는 통지를 받아 학교에 등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경남대에 보관된 지관 스님 학적부에는 '진주 농림중학교 졸업(6년제 중.고등 과정)' '건국대 국문학과 입학'이라고 적혀 있다. 편입학 근거가 없어 그렇게 기재한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지관 스님은 마산대 종교학과 3학년에 편입학, 63년에 졸업했다.

그래서 지관 스님이 '고뇌' 에 빠졌다. 속세의 학력을 속여 '종단 최고의 학승'이 된 것도 아니다. 그런 학력을 이용해 지금의 자리에 이른 것도 아니다. 주위에선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었다" "불가에서 일반인에게 통용되는 학력이 무슨 소용이 있나. 있던 학력도 꺼내지 않는 게 불가의 풍토가 아니냐"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지관 스님은 숨김 없이 밝히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13일 오전 11시 서울 조계사 내 총무원 국제회의장에서 직접 '자초지종'을 털어놓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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