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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잊으랴 6.25戰爭
1950.11 인해전술로 공격하는 중공군 40군단
1950년 12월 3일 평양, 파괴된 대동강 철교에서 피란민들이 남하하고 있다.
(1953년도 푸리쳐상 수상 작품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1950. 12. 23.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피난민들.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
1950. 12. 26. 전차도 후퇴대열에. 흥남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하고 있다
1951. 1. 5. 1.4 후퇴 피난민 행렬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951. 1. 9. 강릉, 1. 4 후퇴로 눈길에 다시 피난을 떠나고 있다.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
1951. 1. 16.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교육을 받고 있다
포로수용소 전경
1951. 3. 4. 한강 부근 마을에서 아이들이
박격포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
1951. 4. 4. 춘천, 북한강 유역
1951. 5. 10. 미군들이 중공군 포로들에게
DDT를 살포하고 있다
1951. 5. 29. 13세인 중공군 소년병.
1951. 7. 6. 서울, 폐허의 잿더미 속에 시장은 열리다.
1951. 7. 11. 서울, 서울시민들이 덕수궁에서
정전회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51. 7. 27. 문산, 정전회담 유엔군 측 한국인 옵서버들
(왼쪽부터 변영태, 손원일, 김정렬, 유재홍, 백선엽)
1951. 11. 27. 판문점 정전회담장에서 북한 측 장춘산 대표와
유엔군 측 머레이 대표가 지도를 펴고
휴전선 획정을 협의하고 있다.
1952. 12. 4.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에 앞서
한국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뒤에 탄 사람이 클라크 주한 유엔사령관.
1953. 7. 26.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전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1953. 5. 8. 정전회담 북한 측 남일 대표가
회담장을 떠나고 있다.
1953. 6. 11. 부산, 학생들이
정전회담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1953, 7. 27休 戰 協 定
1953, 7. 27 休 戰 協 定
953. 7. 29. 미 해병대 병사들이 정전협정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1954년 2월16일 판문점에서 귀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와
설전을 벌이고 있는 북한측 대표.
가슴에 태극기와 양 팔뚝에 멸공,애국 이라는
글씨를 새긴 반공 포로
破壞된 서울驛
승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
破壞된 光化門
破壞된 서울거리
破壞된 中央廳 일대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전쟁후의 피참한 생활
전쟁후의 피참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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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動亂 參戰 犧牲者
美國軍은
전사자 33,665명
비전투 희생자 3,275을 포함하여
총 36,940명의 젊은 목岵?바쳤다.
또한 103,284건의 작전에서 92,134 명의 전상자를 냈으며
총 1,789,000명의 미군이 1950.6.25일부터
1953.7.27일까지 한국전쟁에 참전 했으며
아직도 8,176명의 실종자를 남기고 있다.
韓國軍은
전사자 415,004명을 포함하여
총 1,312,836 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U.N 軍은
전사자 3.094명을 포함 총 16,532명이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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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 爭 紀 念 館
2005 .6 .10 興南 撤收 紀念碑 除幕 (巨濟島)
안익태 - 코리아 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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