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사랑을 싣고…“울 언니, 내 동생” 40년 만에 만난 까닭은?
■ 40년 만에 껴안은 언니와 동생…"잘 지냈어?"
자주 걷던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집니다. 달뜬 걸음 끝에 도착한 곳은 전북 전주의 한 비빔밥집인데요, 김광옥 씨는 오늘 이곳에서 40년 만에 혈육을 만납니다.
의자 끝에 걸터앉은 광옥 씨. 눈으로는 출입문을 쫓고 손가락은 연신 손등을 주무릅니다. "가족을 만나기 1초 전이 이렇게 두근거릴 수 있을까요? 어쩐지 목도 바싹 타는데요." 진짜 애타는 건 마음입니다.
40년 만에 언니를 만나기 1초 전. 광옥 씨는 초조한지 손을 연신 주무릅니다.
드디어 김 씨는 넷째 언니를 만났습니다. 1970년, 간호사로 독일에 갔다 소식이 끊긴 광숙 언니입니다.
40년 만에 비로소 만져보는 언니의 얼굴. 자매는 서로의 등을 껴안고 어깨를 다독입니다.
궁금하고 그리웠던 마음이 쏟아져 내리면서 눈시울도 붉어집니다.
"울 언니, 내 동생" 이처럼 극적인 친자매 상봉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걸까요?
■ "뉴스보다 깜짝"…뜻밖에 이뤄진 자매의 해후
지난 9월 광옥 씨는 늘 그렇듯 하루를 마치고 KBS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TV에 나온 파독 간호사가 언니 광숙 씨였기 때문입니다.
광숙 씨는 독일의 한 시골 마을 정신병동에서 30년 넘게 일했습니다. 외화벌이로 독일에 왔다 여러 사연으로 이제는 베를린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파독 노동자를 취재하던 KBS 취재진과 현지에서 만났습니다. 베를린한인회가 전북도와 연 동포 한마당 행사에서 인터뷰를 하게 됐고, 그 방송을 동생 광옥 씨가 전주에서 본 겁니다.
KBS 뉴스를 통해 다시 소식을 주고받게 된 자매는 그렇게 40년 만에 고향에서 마주했습니다. 흘러가는 세월이 천륜을 영영 끊지는 못했습니다.
KBS 가요무대 방청 중 패티김의 ‘이별’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파독 노동자.
■ 광숙 씨 "고향 그립지만…." 못 간 이유 있다
김광숙/파독 간호사
"우리 부모도 다 돌아가셨잖아요, 이제는. 그러면 형제들한테 손 벌릴 수도 없는 거고 우리 자신이 또 몸이 건강하다면 별 문제 안 되는데 좀 아프고 그러니까 남한테 짐 되기 싫어서…."
파독 61주년.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외국 땅에서 광부로, 간호사로 일하며 번 돈의 대부분은 고향의 가족에게 부쳤습니다. 그들은 이제 일흔을 넘긴 고령이 됐습니다.
당시 정부가 파견한 파독 노동자는 만 9천여 명으로 집계됩니다. 지역별로 몇 명의 광부와 간호사가 파견됐는지 정확한 실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다만 파독 노동자 가운데 7천여 명이 독일에 남았고 현재는 2천여 명이 정착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고국이 그립지만 고령의 몸으로 떠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남은 가족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이제는 부담이지 않을까 걱정부터 앞섭니다.
광옥 씨가 광숙 씨를 뉴스에서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재회는 더 늦어졌을 겁니다.
■ 내 나라 대한민국, 내 고향, 내 가족…애달픈 짝사랑
파독 노동자들은 고향 집의 천장과 벽지 무늬를 선명히 기억합니다. 젊은 시절 힘든 외국 생활을 견디게 해준 건 고향과 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국은 정작 노인이 된 파독 노동자들에게 활짝 열려있지 않습니다.
3년 전 파독 노동자를 지원하는 법이 시행됐습니다. 전북 등 일부 지역에서는 지원 조례를 운영합니다. 그런데 법과 조례 모두 기념 사업 발굴 초기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지원이 아직 없다는 말입니다.
1965년부터 10년 동안 파독 노동자들이 국내로 송금한 외화는 1억 백 53만 달러.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틀을 닦는 밑거름이 됐지만 그들의 노고를 기리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60년 넘도록 가족과 고향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이 애달픈 짝사랑. 이제는 조금이나마 보답해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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