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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덕 감독의 추락, 독(毒)이 된 가을야구

淸潭 2020. 6. 12. 14:56

한용덕 감독의 추락, 독(毒)이 된 가을야구

케이비리포트(KBReport.com)

입력 2020.06.12. 13:49 수정 2020.06.12. 13:51

 

[KBO리그] '구세주에서 불명예 퇴진까지' 한용덕 감독의 3년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이 결국 자진 사퇴했다. 지난 7일 대전 NC 다이노스전에서 2-8로 한화가 완패한 직후 한용덕 감독의 퇴진이 발표되었다. 7일 패배로 14연패에 빠진 한화는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 신기록을 세웠다. (6월 11일 기준 17연패로 역대 공동 2위 기록) 한용덕 감독은 연패를 끊지 못하고 불명예 신기록의 장본인이 된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지난 7일 14연패 후 자진 사퇴한 한화 한용덕 감독 (사진=OSEN)

케이비리포트는 지난 3년 간 한용덕 감독 체제 하의 한화를 돌이켜 본다.

부임 첫해 긴 암흑기를 끝내고 11년 만의 가을야구를 이끈 ‘구세주’라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제2의 암흑기’의 시발점을 제공했다는 한용덕 감독의 명과 암을 조명한다.

1. ‘이글스 레전드’ 한용덕 감독 선임

2017시즌 종료 뒤 한화는 한용덕 감독을 선임했다. 2017년 임기 마지막 시즌을 치르던 김성근 감독이 5월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한 뒤 한화는 이상군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친 터였다.

한국시리즈가 종료된 직후 두산 베어스 한용덕 수석 코치의 한화 감독 선임이 발표되었다. 오랜 기간 감독이 공석이었던 한화는 포스트시즌이 마무리될 때까지 감독 선임을 미루고 있었다.

당시 KIA 타이거즈와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두산을 배려한 조치였지만 그로 인해 누구라도 한용덕 코치의 친정팀 감독 선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빙그레 이글스 시절의 한용덕 (사진=한화 이글스)

현재의 육성 선수에 해당하는 연습생 신분으로 한화의 전신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 한용덕은 1988년 1군에 데뷔한 이래 통산 120승 118패 24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3.54를 기록했다. 1991년에는 17승 6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23으로 커리어하이를 작성했다.

빙그레 창단 초기 원투펀치 이상군과 한희민의 뒤를 잇는 에이스였으며 이글스 구단 역사상 유일한 우승이었던 1999년의 우승 멤버였다.

2. 11년만의 가을야구 감격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지만 초보 사령탑이었던 한용덕 감독이 이끄는 2018년 한화에 대한 전망은 결코 밝지 않았다. 전년도 8위에 그친 가운데 김성근 감독의 혹사로 인해 주축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렸다.

신임 사령탑에 주어지는 구단 측의 ‘FA 선물’도 없었다. 특별한 전력 보강이 없이 리빌딩이 시급한 한화가 11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해 KBO리그 역사상 최장 기간 가을야구 좌절 불명예 신기록을 수립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다.

* 한화 한용덕 감독 임기 3년 성적

 

한화 한용덕 감독 임기 3년 성적 ⓒ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하지만 한화는 비관적 전망을 뒤엎고 시즌 초반부터 중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며 기대 이상의 페이스를 선보였다. 한화는 77승 67패 승률 0.535로 정규 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하며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비록 준플레이오프에서 큰 경기 경험 부족을 노출하며 넥센 히어로즈에 1승 3패로 밀려 탈락했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찬사를 얻었다. 마침내 한화가 패배 의식으로 가득했던 암흑기를 청산했다는 평가였다.

3. 리그 최강의 불펜

당시 한화의 최대 장점은 불펜에 있었다. 2018년은 타고투저 추세가 극에 달해 KBO(한국야구위원회)의 공인구 반발력 저하 직전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하지만 한화 불펜은 평균자책점 4.28, 피OPS(피출루율 + 피장타율) 0.749로 모두 1위였다. ‘전원 필승조’를 자랑한 한화는 리그의 추세에 역행한 ‘나 홀로 투고타저’였다.

 

2018년 35세이브로 세이브왕을 차지한 한화 정우람 (사진=OSEN)

한화 불펜의 정점은 마무리 투수 정우람이었다. 그는 5승 3패 35세이브 평균자책점 3.40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케이비리포트 기준) 1.38로 세이브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한화의 뒷문을 단단히 잠갔다.

정우람의 앞은 다양한 유형 및 연령대의 불펜 셋업맨들이 지켰다. 송은범, 이태양, 박상원, 김범수, 서균 등이었다.

* 한용덕 감독 임기 3년 투수진 중요 기록

 

한용덕 감독 임기 3년 투수진 중요 기록 ⓒ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특히 ‘SK 와이번스 왕조’의 일원이었으나 KIA와 한화를 거치며 기량 하락을 숨기지 못했던 베테랑 송은범의 반등은 놀라웠다.

2018년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한 송은범은 68경기에 등판해 7승 4패 1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2.50 WAR 1.1을 기록하며 부활했다. 그가 두 자릿수 홀드를 기록한 것은 2003년 프로 데뷔 후 처음이었다.

4. ‘효자 외인’ 호잉, 20-20 가입

한화 타선은 새롭게 영입된 외국인 타자 호잉이 이끌었다. 호잉은 타율 0.306 30홈런 110타점 OPS(출루율 + 장타율) 0.942 WAR 3.64로 맹활약했다.

23도루로 호타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클럽에도 가입했다. 한화의 고질적 약점이었던 외야 수비까지 안정적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2018년 20-20클럽에 가입한 한화 호잉 (사진=OSEN)

베테랑 타자들의 활약도 한화의 팀 성적 상승에 기여했다. 이성열은 타율 0.295 34홈런 102타점 OPS 0.900 WAR 1.86으로 홈런 및 타점 커리어하이를 세웠다. 송광민도 타율 0.297 18홈런 79타점 OPS 0.805 WAR 1.16으로 홈런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

호잉, 이성열, 송광민의 방망이를 앞세워 초중반까지 리드를 잡으면 강력한 불펜이 후반을 틀어막는 것이 한화의 승리 공식이었다.

또 한 가지 반가운 것은 신인 내야수 정은원의 깜짝 등장이었다. 인천고를 졸업하고 2차 3라운드 24순위로 한화의 지명을 받은 정은원은 5월 8일 고척 넥센전에서 조상우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2000년대 생 KBO리그 첫 홈런의 주인공으로도 기록되었다.

* 한용덕 감독 임기 3년 타선 중요 기록

 

한용덕 감독 임기 3년 타선 중요 기록 ⓒ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정은원은 수비에서 에이징 커브를 노출한 베테랑 정근우를 밀어내고 주전 2루수를 꿰찼다. 타율 0.249 4홈런 20타점 OPS 0.687 WAR 0.04를 기록한 정은원은 ‘대전 아이돌’로 각광받았다.

타 팀에 비해 유난히 야수 세대교체가 더뎌 베테랑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화에서 정은원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5. 추락의 시발점- 이용규 항명 파문

2019시즌을 앞두고 한화 팬들의 기대는 부풀어 올랐다. 전년도 3위를 차지한 만큼 새 시즌에는 1999년에 이은 두 번째 우승 도전도 가능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11년만의 가을 야구라는 성과에 도취되어 한화의 실제 전력을 과대 평가한 판단 착오였다.

18시즌 이후 스토브리그에서도 한화는 특별한 전력 보강이 없었다. 팀 전력을 단박에 바꿀 수 있는 리그 최고의 공수 겸장 포수 양의지가 FA 시장에 나왔지만 한화는 움직이지 않았다. 기존 포수 최재훈과 지성준을 믿는다는 판단이었다.

 

'항명 파동'으로 2019년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한 한화 이용규 (사진=OSEN)

대신 한화는 내부 FA 송광민, 이용규, 최진행을 모두 잔류시켰다.

송광민은 언론에 FA 잔류 계약 과정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지만 한화는 보듬어 안았다. 모기업 특유의 ‘의리’가 반영된 잔류 계약(2년 최대 16억)이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잔류 계약을 맺은 이용규(2+1년 최대 26억)는 포지션 변경 문제를 놓고 한용덕 감독 및 구단과 갈등을 벌인 끝에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베테랑 권혁이 한화에 방출을 요청한 뒤 두산으로 이적하자 이용규가 자극을 받았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하지만 FA 잔류 계약 후 시즌 개막 직전에 트레이드를 요청한 이용규에 대해 한화 구단은 ‘무기한 참가활동 정지’의 징계를 내려 전력에서 제외했다.

2019년 이용규는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이용규 항명 파문’은 가뜩이나 취약한 한화의 외야 및 타선 등 전력 약화를 초래한 것은 물론 팀 분위기까지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전력 보강은 없이 내부 전력마저 이탈하는 최악의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6. ‘믿는 도끼에 발등’ 불펜 붕괴

한 시즌의 실질적인 시발점인 스토브리그에서 전력 보강은커녕 자중지란으로 팀 분위기가 떨어진 한화의 2019시즌은 ‘추락’으로 집약된다.

한화는 58승 86패 승률 0.403으로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8년과 2019년을 비교할 때 6계단 순위가 내려앉아 10개 구단 중 가장 큰 폭의 하락을 노출한 것이다.

 

2019년 부진 끝에 LG로 트레이드된 송은범 (사진=OSEN)

전년도 팀을 가을로 이끌었던 불펜이 무너졌다. 불펜 평균자책점 4.74로 10위, 피OPS 0.768로 9위였다. 대부분의 팀들이 공인구 반발력 저하로 2018년보다 2019년의 지표가 좋아졌지만 한화는 정반대였다.

2018년 35세이브로 세이브왕을 차지했던 정우람은 2019년 4승 3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1.54 WAR 0.63으로 세이브가 9개가 감소했다. 양호한 평균자책점에서 드러나듯 정우람이 부진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등판할 수 있는 세이브 기회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정우람의 앞을 지키던 셋업맨 송은범과 이태양은 나란히 각각 79.1이닝을 소화한 여파 때문인지 2019년 동반 부진에 빠졌다.

송은범은 37경기에서 승리 없이 3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5.14 피OPS 0.803에 그친 끝에 7월 말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태양도 1승 6패 10홀드 평균자책점 5.81로 부진했다.

불펜 필승조 투수는 다년 간 꾸준하게 호조를 이어가기 가장 힘겨운 보직이다. 그렇다면 한화는 송은범과 이태양 외에 새로운 얼굴이 준비되어야 했다.

하지만 한화 불펜에는 정우람을 제외하면 2점대 이하의 평균자책점 투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2018년의 성공에 도취되어 현상 유지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7. 타선의 노쇠화와 집단 침묵

전력 이상의 성적표를 받은 2018년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한화에 궁극적으로 독이 되었다는 냉정한 분석마저 제기되었다. 30대 베테랑으로 가득한 주전 야수진의 에이징 커브가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가을야구 한 번으로 인해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세대교체를 좌고우면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2019년 한화의 주전 야수 라인업은 만 19세 시즌을 치른 정은원을 제외하면 전원이 30대였다. 20대 주전의 씨가 마른 것이다.

한화의 팀 타율은 0.256으로 8위, 홈런은 88개로 8위, OPS는 0.686으로 9위였다. 불펜이 버티지 못하니 타자들이 시원스레 점수 차를 벌려 상쇄시켜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2019년 에이징 커브를 숨기지 못한 한화 김태균 (사진=OSEN)

한화의 규정 타석 3할 타율 타자는 0.305의 김태균이 유일했다. 하지만 그는 6홈런 62타점 OPS 0.777 WAR 1.7로 장타력 저하를 숨기지 못했다. 거포의 면모가 사라진 ‘똑딱이’ 김태균은 상대투수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2018년 ‘효자 외인’, ‘복덩이’로 일컬어진 호잉은 2년차 시즌에 공인구 반발력 저하의 직격탄을 맞았다. 타율 0.284 18홈런 73타점 OPS 0.800 WAR 2.7로 전년도에 비해 중요 지표가 모두 하락했다.

FA 잔류 계약 과정에서 논란의 주인공이 되었던 송광민은 계약 직후 첫 시즌이 실망스러웠다. 타율 0.264 7홈런 51타점 OPS 0.655 WAR 0.3에 그쳤다. 수비 실책도 16개로 공수에서 모두 부진했다.

정은원의 2년차는 혹독했다. 타율 0.262 8홈런 57타점 OPS 0.691 WAR 1.6으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주전 유격수 하주석이 시즌 초반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어 정은원은 유격수 오선진과 키스톤 호흡을 맞췄지만 한화의 키스톤은 공수에 걸쳐 리그에서 경쟁력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2018년 시즌 도중 2루수에서 1루수로 전환된 정근우는 2019시즌을 앞두고 외야수로 다시 전환되었다. 타구의 변화가 심한 코너 외야수 대신 상대적으로 변화가 덜한 중견수를 맡긴다는 복안이었다. 이용규마저 구단 징계로 이탈해 외야 약점이 더욱 도드라진 한화에서 정근우가 외야수로 안착한다면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근우 타구 판단 실패를 되풀이하며 중견수 수비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햄스트링 부상까지 겹친 그는 8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8 3홈런 30타점 OPS 0.688 WAR 0.47에 그쳤다.

시즌 종료 뒤 그는 2차 드래프트로 LG로 이적했다. 한화가 40인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정근우를 제외하며 ‘전력 외 판정’을 내린 것이다.

8. ‘존재감 희미’ 정민철 단장

2019년 정규 시즌이 종료된 뒤 한화는 박종훈 단장의 후임으로 정민철 단장을 선임했다.

2016년 11월 박종훈 단장의 선임은 애당초 김성근 감독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인사라는 시각이 있었다. 결국 김성근 감독은 박종훈 단장 선임으로부터 6개월 뒤인 2017년 5월 자진 사퇴했다. ‘강성’으로 널리 알려진 박종훈 단장은 FA 잔류 계약 과정 등에서 베테랑과의 마찰이 잦았다.

 

한화의 영구 결번 레전드이자 코치, 그리고 방송 해설 위원을 거친 신임 정민철 단장은 큰 기대를 모았다. 한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물론 한동안 한화를 떠나있어 객관적 시각을 바탕으로 전력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었다. 또 다른 한화 레전드이자 선배인 한용덕 감독과의 호흡도 원만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하지만 정민철 단장은 한용덕 감독의 3년 임기의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외부 FA 영입에 나서지 않았다. 취약한 내외야를 보강할 수 있는 FA 야수들이 시장에 나온 가운데 과거에 비해 거액을 투자하지 않고도 영입이 가능했다. 한용덕 감독이 2루-유격수 모두 가능한 김선빈 영입을 구단에 요청했다는 후일담도 나왔다.

하지만 정민철 단장은 외부 FA 영입에 끝내 나서지 않았다. 트레이드와 2차 드래프트, 그리고 방출 선수 영입으로 전력 보강을 도모했으나 극적인 전력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정민철 단장의 존재감은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 타 구단 신임 단장에 비해 희미했다. 결국 한용덕 감독은 전임 감독들과 달리 임기 내내 ‘FA 선물’을 한 명도 받지 못한 ‘빈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9. ‘이용규 주장-호잉 재계약’ 한화의 이상한 스토브리그

2020시즌을 앞둔 한화의 스토브리그는 또 다른 ‘촌극’으로 화제가 되었다.

2019년 9월 구단의 자체 징계가 해제된 이용규가 새 시즌을 앞두고 선수단 투표로 주장으로 선임된 것이다. 이용규의 징계 시점에 “(이)용규가 누구죠?”라고 발언했던 한용덕 감독에 대해 선수단이 반감을 표시한 것이라는 해석마저 있었다.

 

외야수 전환에 실패한 뒤 LG로 이적한 정근우 (사진=OSEN)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또 다른 베테랑 정근우의 아이러니였다. 구단의 포지션 변경에 순응해 중견수로 변신까지 시도했던 정근우는 40인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한화를 떠나야 했다.

반면 구단과 코칭스태프에 항명했던 이용규는 팀에 남아 주장이 된 것이다. 신상필벌이 어긋난 한화 구단에 대한 비판이 뒤따랐다.

9위로 추락하고도 외국인 선수 3인과 전원 재계약한 한화의 무사안일한 방침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투수 동반 10승에 달성한 서폴드와 채드벨의 재계약은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2년차 시즌에 부진을 면치 못한 호잉의 재계약은 우려를 샀다. 한화는 "이만한 선수가 없다"며 그를 재신임했지만 이미 그의 약점은 타 팀에 모두 노출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호잉의 재계약은 한화 구단 특유의 보수주의적 문화의 상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10. 악몽의 구단 최다 연패

전력 보강 요소가 사실상 전무한 한화는 코로나19로 늦춰진 2020 KBO리그 정규 시즌 개막 3연전에서 SK 와이번스에 2승 1패 위닝 시리즈에 성공해 출발이 산뜻했다.

16경기를 치른 시점에는 7승 9패 승률 0.438로 승패 마진 -2였다. 5할 승률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은 듯했다. 시즌 초반 선발진이 기대 이상의 깜짝 호투를 이어간 덕분이었다.

하지만 5월 23일 창원 NC 다이노스전 0-3 무득점 패배를 기점으로 한화는 끝없는 연패 수렁에 빠져들었다. 한용덕 감독이 마지막으로 지휘한 6월 7일 대전 NC전까지 14연패에 빠졌다. (최원호 감독 대행 체제 이후 3연패 추가)

한화의 추락 요인은 타선에 있었다. 한용덕 감독 퇴진 시점에 팀 타율 0.236, 홈런 19개, OPS 0.631로 모두 리그 최하위였다. 경기 당 평균 득점도 3.33으로 리그 최소였다.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규정 타석 3할 타율 타자도 없었다. 타고투저 현상이 2년 만에 되살아나는 경향 속에서 한화만 수혜를 누리지 못했다.

베테랑 타자들의 집단 침묵 속에서 호잉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호잉은 6월 7일까지 타율 0.209 3홈런 12타점 OPS 0.602에 그쳤다. 그의 홈런 숫자는 키움 히어로즈로부터 퇴출된 모터를 제외한 9개 구단의 현역 외국인 타자 중 최소였다. 재계약 시점부터 제기된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등판 기회를 잃은 한화 마무리 정우람 (출처: KBO 야매카툰)

마운드도 선발과 불펜을 통틀어 장점을 찾을 수 없었다. 시즌 초반 한때 반짝했던 선발진은 평균자책점 5.17 피OPS 0.833으로 모두 리그 10위로 추락했다.

불펜은 평균자책점 6.47로 8위, 피OPS 0.905로 10위였다. 정우람은 등판 기회를 잡지 못해 ‘귀족 마무리’로 전락한 가운데 나머지 불펜 투수들은 필승조와 추격조의 구분 없이 마구 혼용되었다. 벤치의 조급증이 체감되는 대목이었다.

수비 역시 마운드를 돕지 못했다. 유격수 요원 하주석과 오선진이 부상으로 동반 이탈한 가운데 25개의 실책으로 리그 최다였다.

11. ‘전조’ 뚜렷했던 한용덕 감독 퇴진

한용덕 감독 퇴진은 외형적으로는 ‘자진 사퇴’이지만 구단의 ‘경질’에 무게가 실린다. 그의 경질은 자진 사퇴 발표 며칠 전부터 ‘전조’가 뚜렷했다.

퇴진 이틀 전인 6월 5일 대전 NC전을 앞두고 한용덕 감독은 타자들에 배팅 볼을 직접 던져줬다. 팔꿈치가 좋지 않아 배팅 볼을 거의 던지지 않는 한용덕 감독의 이례적 행동은 선수단에 대한 최후의 배려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5일 NC전을 앞두고 대전구장을 관중석에서 굽어본 한용덕 감독 (사진=OSEN)

경기를 앞두고 한용덕 감독은 대전구장의 관중석의 높은 곳에 올라가 구장을 내려다봤다. 홈구장에 대한 마지막 인사이자 이글스 맨으로서의 행보를 정리하는 수순이었다.

6일에는 구단과 한용덕 감독의 갈등이 외부로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다. 장종훈 수석코치, 정민태 투수코치, 김성래 타격 메인 코치, 정현석 타격 보조 코치가 대전 NC전 경기 직전에 갑자기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것이다. 이날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새로운 코치의 등록은 없었다.

 

6일 대전 NC전을 앞두고 1군 코치들이 대거 엔트리 말소된 한화 (출처: KBO 야매카툰)

성적이 부진한 팀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1군과 2군 코치진의 보직 변경에 나서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경기 직전에 1군 코치가 대거 엔트리에서 말소되어 귀가한 가운데 새로운 코치의 등록 없이 경기를 치르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결국 6일 경기에는 한용덕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를 교체하다 경기 후반에는 차일목 배터리 코리가 마운드에 올라가는 촌극이 벌어졌다.

5일과 6일의 일련의 움직임으로 인해 한용덕 감독의 퇴진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었다. 결국 7일 경기가 한화의 완패로 종료된 직후 한용덕 감독의 자진 사퇴가 발표되었다. 한화 구단의 보도 자료는 ‘경기 종료 후 한용덕 감독이 사퇴 의사를 밝혔고 구단이 이를 수용했다’는 내용이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12. 한화의 추락, 한용덕 감독만 책임?

한용덕 감독은 3년 동안 318경기에서 142승 176패 승률 0.447을 기록했다. 해당 기간 9위에 해당하는 승률이었다.

한용덕 감독은 3위 → 9위 → 10위로 해가 갈수록 팀 성적이 하락했다. 그가 이끄는 동안의 팀 성적이 역순으로 되었다면 비극적인 중도 퇴진은 없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시선도 있다. 행운이 겹친 부임 1년차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장기적으로는 독이 되고 말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용덕 감독의 재임 기간 중 한화의 추락은 어느 한 쪽에만 책임을 지우기 어려운 복합적 문제가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용덕 감독은 베테랑 장악에 실패한 채 갈등을 숨기지 못했다.

 

정은원 외 야수 발굴에 실패한 한용덕 감독 (출처: KBO 야매카툰)

그렇다고 젊은 선수들 육성에 성공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야수의 경우 그의 임기 동안 주전으로 성장한 선수는 정은원이 유일했다. 한용덕 감독은 레전드 투수 출신이지만 한화의 투수 중에도 선발과 불펜을 통틀어 그의 임기 동안 1군 투수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젊은 피’는 없었다.

최근 KBO리그의 감독 중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합리적 운영을 앞세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용덕 감독은 데이터 친화적인 지도자와는 거리가 있었다.

한화 구단 측은 한용덕 감독의 3년 임기 동안 단 한 명의 외부 FA도 영입하지 않고 지원에 인색했다. 전임 김응룡, 김성근 감독에 ‘FA 대어 선물’을 안긴 것과는 달랐다. 송광민의 FA 잔류 계약 과정에서 드러나듯 구단과 베테랑의 갈등은 한용덕 감독에 또 다른 부담을 안긴 것이 사실이었다.

자진 사퇴 하루 전날 1군 코치 4인 대거 말소에서 드러나듯 한화는 한용덕 감독에 대한 사퇴 압박을 노골화했다. 한용덕 감독의 실질적인 ‘경질’은 구단 프런트가 아닌 팀 성적 추락에 실망한 모기업 윗선의 뜻이라는 설명이 힘을 얻었다.

 

 

7일 자진 사퇴를 발표한 뒤 대전구장을 떠난 한용덕 감독 (사진=OSEN)

하지만 ‘의리’를 중시하는 그룹 이미지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은 채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30년 이글스맨’ 한용덕의 퇴장은 너무도 굴욕적이었다.

11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의 감격과 이후의 추락으로 한용덕 감독의 임기는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게 교차했다.

13. ‘새 감독’보다 더욱 시급한 과제는?

한화는 한용덕 감독의 퇴진 후 최원호 감독 대행 체제로 잔여 시즌을 치른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최원호 감독 대행의 선임과 함께 한화는 베테랑 송광민, 이성열 등 10명의 1군 선수를 엔트리에서 한꺼번에 말소해 강도 높은 리빌딩을 예고했다.

 

급격한 변화를 택한 최원호 감독대행 (출처: KBO 야매카툰)

9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부터 지휘봉을 잡은 최원호 감독 대행은 2군에서 올린 젊은 선수들을 선발 출전시키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정식 감독이 아닌 ‘대행’에 불과한 최원호 감독에게는 태생적 한계가 내재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원호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처음으로 치른 사직 원정 3연전에서 한화는 모두 패하며 17연패에 빠졌다.

 

9일부터 한화의 지휘봉을 잡은 최원호 감독 대행 (사진=OSEN)

시즌 종료 뒤 한화는 새로운 감독 선임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우승 경험을 갖춘 베테랑 감독도, 이글스 레전드 출신 감독도 모두 실패한 만큼 파격적인 감독 선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아무런 선입견이 선수단을 운영할 수 있는 이글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 선임의 필요성이 벌써부터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화에 중요한 것은 감독 선임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학연, 지연을 중시하는 구단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한화가 암흑기에서 탈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다.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한용덕 감독의 퇴진이 기점이 되어 한화가 보수적인 구단 운영에서 탈피해 혁신할 수 있는 계기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록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KBO 기록실,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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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이용선 칼럼니스트/ 감수 및 편집: 민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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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야구이야기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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