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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訓民正音)

淸潭 2020. 4. 23. 13:56

임하필기 제18권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훈민정음(訓民正音)

             
세종은, 각 나라가 각기 문자(文字)를 만들어 그 나라의 방언(方言)을 기록하는데 우리나라에만 없다고 여기고, 마침내 자음(子音)과 모음(母音) 28자를 만들어 ‘언문(諺文)’이라 이름하고 금중(禁中)에 국(局)을 열어 정인지(鄭麟趾),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찬정(撰定)하도록 하였다. 대개 고전(古篆)을 본떠서 초성(初聲), 중성(中聲), 종성(終聲)으로 나누었다. 글자가 간단하고 쉬운데도 이리저리 쓰는 것이 무궁하여 모든 말과 소리 가운데 문자로 기록하지 못하던 것이 모두 통하여 막힘이 없었다. 중국의 한림학사(翰林學士) 황찬(黃瓚)이 이때 요동(遼東)에 유배되어 있었는데, 성삼문 등에게 명하여 황찬을 만나 음운(音韻)을 질문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요동에 13회나 왕래하고서 완성되었다.
숙종이 지은 훈민정음후서(訓民正音後序)에, “삼가 우리 세종대왕께서는 타고난 성스러운 자질이 요순보다도 높아 예악과 문물이 찬란히 구비되었는데도 우리나라의 말과 소리가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이 뜻을 펴지 못함을 우려하셨다. 그리하여 정사를 돌보시는 여가에 새로 28자를 만들어 밝게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으니, 대개 쉽게 배워 날로 쓰는 데 편리하게 해 주시려는 것이었다. 형상을 본떠 만들었는데도 고저(高低)가 음(音)에 맞으며, 글자가 간략한데도 이리저리 쓸 수 있는 범위가 광대하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 할 것 없이 큰일이나 작은 일 할 것 없이 문자로 형용할 수 없었던 것이 모두 이를 통하여 바른 소리로 풀리게 되었다. 조화(造化)의 묘리를 극진히 하고 만물(萬物)의 정을 통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진실로 대성인(大聖人)이 하시는 바는 그렇게 만들려고 기필하지 않아도 지극한 도리에 합치되는 것이다. 아, 아름답도다. 아, 훌륭하시도다.” 하였다.
성현(成俔)이 이르기를, “언문은 5음(音)으로 나누어 구별되니, 아(牙), 설(舌), 순(脣), 치(齒), 후(喉)이다. 순성(脣聲)은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고 설성(舌聲)은 정반(正反)의 구별이 있다. 글자에도 전청(全淸), 차청(次淸), 전탁(全濁), 불탁(不濁), 불청(不淸)의 차이가 있다. 비록 무지한 부인이라도 분명하게 알지 못할 것이 없다.” 하였다. 이수광(李睟光)은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언서(諺書)는 전적으로 범자(梵字)를 모방한 것이다. 세종조에 국을 설치하여 찬출한 데서 시작되었는데, 제자(制字) 원리의 정교함은 실로 세종의 고안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였다. 언서가 나오면서 만방의 말과 소리 가운데 통하지 못할 것이 없어졌으니, 이른바 성인(聖人)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