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법문--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절에 사는 우리 승려들이 목탁치고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 명과 복을 빌어주 는 이것이 불공이 아니며,
남을 도와주는 것만이 참 불공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실천할 때,그때 비로소 우리 불교에도 새싹이 돋아날 것입니다.
남의 종교와 비교, 비판할 것은 아니지만,
예수교와 불교를 비교해 봅시다.
진리적으로 볼 때 예수교와 불교는 상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 학자들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볼 때에도 예수교에서 보면 불교가 아무것도 아니고,
불교 측에서 보면 예수교가 별 것 아닐 것입니다.
서양의 유명한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도
"예수교와 불교가 서로 싸운다 하면 예수교가 불교를 공격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은 극단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보면 그러하지만 실천면에서 보면
거꾸로 되어 있는 게 현실입니다.
예수교인들은 참으로 종교인다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불교인은 예수교인 못 따라갑니다.
불교의 자비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남에게 베푸는 것인데,
참으로 자비심으로 승려 노릇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남 돕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자비'란,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승려 가 봉사 정신이 가장 약할 것입니다.
예수교인들은 진실로 봉사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갈멜 수도원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월 초하룻날 모여서 무슨 제비를 뽑는다고 합니다.
그 속에는 양로원, 고아원, 교도소 등 어려움을 겪는
각계각층이 들어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양로원'제비를 뽑으면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자나 깨나 양로원 분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고아원'에 해당되면 내내 고아원만을,
'교도소'면 교도소 사람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 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기도 안 합니다.조금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남을 위한 기도의 근본정신인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인입니다.그들은 먹고 사는 것은 어떻게 해결하는가.
양계와 과자를 만들어 내다 팔아서 해결한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 것은 자기들 노력으로 처리하고,
기도는 전부 남을 위해서만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어찌 하는가?
불교에서도 소승이니, 대승이니 하는데
소승은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승은 남만 위해 사는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은 대승이지 소승이 아닙니다.
원리는 이러한데 실천을 그렇지 않습니다.
저 쪽 사람들은 내 밥 먹고 남만 위하는데,
우리 불교에서는 이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예수교를 본받아서가 아니라,
불교는 "자비"가 근본이므로 남을 돕는 것이 근본인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불공이란 남을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활 기준을 남을 돕는 데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백련암에 찾아온 한 여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절을 했느냐?"
"스님, 저는 저를 위해 절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절했습니다."
"왜 빙빙 돌기만 하느냐?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지 말고
직접 일체 중생 이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하고 절해야지.
이것은 '모든 중생이 행복하게 해 달라고 비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오'하는
거와는 다르지."
아무 생각 없이 절을 하지 말고,
절하는 것부터가 남을 위해 절해야 된단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 이 더 깊은 사람이면 남을 위해 아침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내게 항상 다니는 사람에게는 의무적으로 절을 시킵니다.
백팔 배 절을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면
날마다 아침에 백팔 배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나도 새벽으로 꼭 백팔 배를 합니다.
그 목적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발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하옴은
제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에 남을 구함이 아니요
모든 중생이 함께 같이 무상보리 얻어지이다.
我今發心 不爲自求 人天福報
願與法界衆生 一時同得 阿욕多羅三 三菩提
그리고 끝에 가서는,
중생들과 보리도에 회향합니다.
廻向衆生及佛道
일체 중생을 위해, 남을 위해 참회하고 기도했으니
기도한 공덕이 많습니다.
이것이 모두 일체 중생에게 가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원합노니 수승하온 이 공덕으로
위없는 진법계에 회향하오며
願將以此勝功德
廻向無上眞法界
그래도 혹 남은 것.
빠진 것이 있어서 나한테로 올까봐 온갖 것이 무상진법계로,
온 법계로 돌아가고 나한테는 오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인도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신라,
고려에 전해 내려온 참회법입니다.
중국도 중 공 적화 이전에는 총림에서만이 아니고
모든 절에서 다 '참회' 해 온 것입니다.
일체 중생을 위해 서, 일체 중생을 대신해서 모든 죄를 참회하고,
일체 중생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불교 믿는 사람을 근본자세이며,
사명이며 분분입니다.
우주의 근본 윈리인 인과법칙 그런데 또 문제가 있습니다.
"스님도 참 답답하시네.내가 배가 고픈데 자꾸 남의 입에만
밥 떠 넣으라니 나는 굶으라는 말 인가?"
인과법칙이란 불교뿐만 아니라 우주의 근본원리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이
선인선과(善因善果),악인악과(惡因惡果)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오고,
악한 일을 하면 나쁜 과보가 오는 것입니다.
병이 났다든지,
생활이 가난하여 어렵다든지 하는 것이 악한 과보입니다.
선인선과라, 이번에는 착한 일을 자꾸 행합니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남을 자꾸 돕고, 남을 위해 자꾸 기도하면,
결국에는 그 선과가 자기에게로 모두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기도가 되며 남을 해치면 결국 나를 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도우면 아무리 안 받으려 해도
또 다시 내게로 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고 생활하면 남을 내가 도우니
그 사람이 행복하게 되고,또 인과법칙에 의해
그 행복이 내게로 전부 다 오는 것입니다.
생물 생태학에서도 그렇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남을 해치면 자기가 먼저 손해를 보게 되고,
농사를 짓는 이치도 그와 같다 하겠습니다.
곡식을 돌보지 않으면 자기부터 배고플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배고파 굶어 죽을까 걱정하지 말고
부처님 말씀같이 불공을 잘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불공할 줄 모르고 죄를 많이 지어서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지옥 문 앞에 서서 보니 지옥 속에서 고(苦) 받는
중생들 모습이 하도 고통스럽게 보여서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개 그 모습을 보면 "아이고, 무서워라. 나도 저 속에 들어가면
저렇게 될 텐데 어떻게 하면 벗어날까..."
이런 생각이 들 텐데 이 사람은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저렇게 고생하는 많은 사람을 고를 잠깐 동안이라도
나 혼자 대신 받고 저 사람들을 쉬게 해줄 수 없을까?
편하게 해줄 수 없을까?' 하는 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을 하고 보니 지옥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 순간 천상에 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착한 생각을 내면 자기부터 먼저 천상에 가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회에서도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 스님들은 산중에 살면서 이런 활동에는 많이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오직 부탁하고 싶은 것은 부처님 말씀에 따르는 불공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예불하면서 꼭 한 가지 축원을 합니다.
간단합니다.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일체 중생이 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세 번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해 보면,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좋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절을 한 번 하든, 두 번 하든 일체 중생을 위해 절하고,
일체 중생을 위해 기도하고,
일체 중생 을 위해 돕는 사람,
일체 중생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어야만 앞머리에서 말한
부처님을 팔아서 사는 '도적놈' 속에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서로 힘써 불공을 잘해서
도적놈 속에 들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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