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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계기환(借鷄騎還) 의 우정

淸潭 2017. 1. 29. 10:01

차계기환(借鷄騎還)

               

조선조 성종(成宗) 때의 문신(文臣)

서거정(徐巨正)이 펴낸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김생(金生)이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친구는 오랜만에 찾아온 김생을

반기며 술과 안주를 차려왔는데, 안주라고는

달랑 채소만 몇 가지뿐이었다.


  친구가 먼저 안주가 변변치 못함을

사과하며 말했다.


「집안 형편도 어렵지만 시장마저 멀다 보니

내놓을 것이라고는 담백한 채소밖에 없네.

이거 오랜만에 왔는데 대접이 너무 소홀해서

미안하네.」


  김생도 친구의 살림이 넉넉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했다.

그런데 김생이 무심코 뜰을 내려다보니 여러

마리의 살찐 닭들이 어지러이 모이를 찾아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괘씸한 생각이 든 김생이 한마디 했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친구를 위해 어찌

천금(千金)을 아끼겠는가? 내가 타고 온

말을 잡아서 술안주로 하세.」


  친구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한 마리밖에 없는 말을 잡아먹으면

무엇을 타고 간단 말인가?」


  김생(金生)이 대답했다.


「그야 자네 집에 있는 닭을 빌려 타고가면

되지 않겠나?〔借鷄騎還〕」


  그러자 김생의 말뜻을 알아차린 친구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닭 한 마리를 잡아서 대접했다.


  김생의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우스갯소리가

옛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