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가외(唯民可畏)
[요약] (唯: 오직 유. 民: 백성 민. 可: 옳을 가. 畏: 두려워할 외)
오직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백성뿐이라는 뜻. 천재지변보다도 백성의 마음을 가장 두렵게 생각하여야 한다는 의미.
[출전] 《허균(許筠)의 호민론(豪民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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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허균(許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11권 호민론(豪民論)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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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天下之所可畏者。唯民而已。民之可畏。).
홍수나 화재, 호랑이, 표범보다도 훨씬 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항상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먹음은 도대체 어떤 이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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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이루어진 것만을 함께 즐거워하느라,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그냥 따라서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란 항민(恒民)이다. 항민이란 두렵지 않다.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이란 원민(怨民)이다. 원민도 결코 두렵지 않다.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천지간(天地間)을 흘겨보다가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다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란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이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다(潛蹤屠販之中。陰蓄異心。僻倪天地間。幸時之有故。欲售其願者。豪民也。夫豪民者。大可畏也。).
호민은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세가 편승할 만한가를 노리다가, 팔을 휘두르며 밭두렁 위에서 한 차례 소리 지르면, 저들 원민이란 자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고도 함께 외쳐대기 마련이다. 저들 항민이란 자들도 역시 살아갈 길을 찾느라 호미⦁고무래⦁창 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쳐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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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나라의 멸망은 진승(陳勝)⦁오광(吳廣) 때문이었고, 한(漢) 나라가 어지러워진 것도 역시 황건적(黃巾賊)이 원인이었다. 당(唐) 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王仙芝)와 황소(黃巢)가 틈을 타고 일어섰는데, 마침내 그것 때문에 인민과 나라가 멸망하고야 말았다. 이런 것은 모두 백성을 괴롭혀서 자기 배만 채우던 죄과이며, 호민들이 그러한 틈을 편승할 수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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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하늘이 사목(司牧 임금)을 세운 것은 양민(養民)하기 위함이고, 한 사람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메워도 차지 않는 구렁 같은 욕심을 채우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夫天之立司牧。爲養民也。非欲使一人恣睢於上。以逞溪壑之慾矣。). 그러므로 저들 진(秦)ㆍ한(漢) 이래의 화란은 당연한 결과이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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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땅이 좁고 험준하여 인민도 적고, 백성은 또 나약하고 좀 착하여 기절(奇節)이나 협기(俠氣)가 없다. 그런 까닭에 평상시에도 큰 인물이나 뛰어나게 재능 있는 사람이 나와서 세상에 쓰여지는 수도 없었지만, 난리를 당해도 호민⦁한졸(悍卒)들이 창란(倡亂)하여, 앞장서서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게 하던 자들도 역시 없었으니 그런 것은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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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시대는 고려 때와는 같지 않다. 고려 시대는 백성에게 부세(賦稅)하는 것이 한정되어 있었고,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에서 나오는 이익도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가졌다. 상업은 자유롭게 통행되었고, 공인(工人)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하였다. 또 수입을 헤아려 지출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나라에는 여분을 저축해 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큰 병화(兵禍)와 상사(喪事)가 있더라도 그 부세(賦稅)를 증가하지 않았었다. 고려는 말기에 와서까지도 삼공(三空= 흉년이 들어 제사를 궐하고, 서당에 학도들이 오지 않고, 뜰에 개가 없음을 비유한 가난을 상징하는 말임)을 오히려 걱정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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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조선)는 그렇지 않아, 변변치 못한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써 귀신을 섬기고 윗사람을 받드는 범절만은 중국과 동등하게 하고 있다. 백성들이 내는 세금이 5푼(分)이라면 공가(公家 관청)로 돌아오는 이익은 겨우 1푼(分)이고 그 나머지는 간사스러운 사인(私人)에게 어지럽게 흩어져버린다.
또 고을의 관청에는 남은 저축이 없어 일만 있으면 1년에 더러는 두 번 부과하고, 수령(守令)들은 그것을 빙자하여 마구 거두어들임은 또한 극도에 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백성들의 시름과 원망은 고려 말엽보다 훨씬 심하다. 그러나 위에 있는 사람은 태평스러운 듯 두려워할 줄을 모르니 우리나라에는 호민(豪民)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스럽게 견훤(甄萱)⦁궁예(弓裔) 같은 사람이 나와서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시름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이 가서 따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하며, 기주(蘄州)⦁양주(梁州)⦁6합(合)의 변란(황소의 난)은 발을 제겨 딛고서 기다릴 수 있으리라. 백성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두려워할 만한 형세를 명확히 알아서 전철(前轍)을 고친다면 그런 대로 유지할 수 있으리라.(爲民牧者。灼知可畏之形。與更其弦轍。則猶可及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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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 유민가외(唯民可畏)의 글.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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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명종(明宗) 때 강징(康澄)이 시사(時事)로 상소하여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일이 다섯 가지요, 깊이 두려워할 만한 일이 여섯 가지입니다. 해와 달과 별의 운행이 질서를 잃고, 천상(天象)에 변화가 생기며, 소인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산이 무너지고 하천이 마르며, 홍수와 가뭄이나 병충해 같은 다섯 가지의 일은 두려워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어진 선비가 몸을 감추어 숨고, 염치가 무너지고 도리가 사라지며, 상하가 서로 사적인 이익만 따르고, 비방과 칭찬이 진실을 어지럽히며, 바른말을 해도 듣지 않는 여섯 가지의 일만은 깊이 두려워할 만합니다(爲國家者, 有不足懼者五, 深可畏者六. 三辰失行, 不足懼. 天象變見, 不足懼. 小人訛言, 不足懼. 山崩川渴, 不足懼. 水旱蟲蝗, 不足懼. 賢士藏匿, 深可畏. 廉恥道喪, 深可畏. 上下相徇, 深可畏. 毁譽亂眞, 深可畏. 直言不聞, 深可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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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것은 천재지변이나 기상재해가 아니다. 뜻 높은 지식인이 세상을 등지고, 염치와 도덕이 무너져 못 하는 짓이 없으며, 위에서 이익에 눈이 멀자 아래에서 덩달아 설쳐대고, 소인을 군자라고 천거하고 군자를 소인이라 내치게 만드는 상황, 보다 못해 직언을 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말 두려운 일이다. 소인의 와언(訛言)쯤은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하지만 여기에 임금의 독선과 무능이 얹히면 나라를 말아먹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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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許筠)의 ‘호민론(豪民論)’은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을 두려워할 만함이 물이나 불, 범이나 표범보다 더하건만, 윗자리에 있는 자는 함부로 눌러 길들여서 포학하게 부려먹으려고만 드니 어찌 된 셈인가(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民之可畏, 甚於水火虎豹, 上者方且狎馴而虐使之, 抑獨何哉)”로 시작된다.
또 “하늘이 그를 임금으로 세운 것은 백성을 기르기 위함이지, 한 사람이 위에서 제멋대로 눈을 부라리며 계곡을 메울 만한 욕심을 채우라고 한 것이 아니다. 저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의 재앙은 당연한 것이지 불행이 아니다”라고 썼다. 여섯 가지 두려워할 만한 일이 겹치면 백성이 일어난다. 두려워해야 할 것을 우습게 본 결과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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