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유럽여행

폼페이

淸潭 2015. 9. 7. 14:37

 

 

폼페이 가는날.. 폼페이는 영화로도 보았고 많은 방송 메체에서 보았던 곳이다.

방송에서 볼때 폼페이 유적지가 어쩌구 저쩌구 해봐야 실감도 않나고 그저 그런 유적지

다른 곳과 별차이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이번 여행코스에 폼페이가 포함된 곳을 골라서 오면서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렇게 떠드나 한번 가보자 싶어서 이곳을 택했다.

세상 살이가 모두 그렇다. 그순간의 선택이 최선 이엇다고 생각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게 아닌 경우도 많지만

요즘은 인터넷 검색등을 통해 정보도 얻고 공부도 하고 선택했기에 그런일이 많이 줄었을 걸로 알고.

이른 아침 기상하여 창밖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로마에서 3일째 일정을 시작한다.

이곳은 섬머 타임을 실시하니 우리 시간보다 1시간 늦으니 오전 6시30분 쯤 되어 태양이 솓아오른다.

 

 

 

 

로마에서 고속 도로를 3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폼페이다.

 

 

 

 

 

폼페이 입구 이다. 키큰 나무를 경계로 좌측은 before 이고 우측은 after이다.

그러니까 유적지 발굴 전의 모습은 좌측의 언덕 형태 이지만 언덕의 지표를 걷어내고 나면

그아래 발굴지는 우측의 파괴된 도시가 나타난다.

 

 

 

 

 

 

 

 

 

 

완벽한 폐허 라고 한다. 완벽한 폐허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2000년전의 역동적인 도시의 모습을 간직할수가 없었다.

 

 

 

 

 

저뒤에 보이는 산이 베수비오 산이다. 베수비오 산은 1천년도 넘은 시기에 폭발한적이 없는

도시를 푸근히 품고있는 엄마의 품과 같은 산일 뿐이었다.

 

 

 

 

 

서기79년 8월24일 운명의 그날도 폼페이의 시민들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폼페이는 철저한 계획 도시이며 나폴리 항을 끼고있는 해상 무역이 왕성하게 이루어 지는

로마의 대표적인 상업 도시였다. 멀리 중국과 일본의 상인 들까지 왕래를 했다고 한다.

로마시대 대표적인 무역항을 끼고있는 도시이다 보니 그어느 곳보다 부가 넘치는 도시였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베수비오 산이 폭발한다. 화산 폭발이다. 바람또한 베수비오 산에서

폼페이 방향으로 불고잇엇다. 순식간에 수백만톤의 화산 폭발 잔해물이 도시위로 쏟아진다.

하지만 폼페이 시민들은 도시 전체가 이렇게 완벽한 폐허로 될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화산재가 4M이상 덮여버린 폼페이는 그날이후 역사속으로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이 흐른 어느날 베수비오 산기슭의

밭을 갈던 농부의 농기구에 걸려나온 쇠붙이 하나에 의해 1700여년의 긴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초기의 발굴은 지하에 파뭍혀 있는 금은 보화를 캐어내기 위한 발굴 이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무분별한 발굴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1861년 이탈리아 고고학자인 추세페 피오렐리 교수는 폼페이의 발굴 현장에서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수끼에 파뭍히게 되엇다.

발굴 현장에서는 집안에 식탁위의 음식을 담아놓던 그릇,수저, 컵 까지 발굴이 되는 데

사람이 없는것에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발굴현장의 지하엔 알수없는 작은 공간이 무수히 발견 되었는데 그것은 쥐나 들짐승들의

땅굴로만 여기고 있엇다고 한다. 추세페 피오렐리 교수는 그구멍에 석고를 개어 부어넣고 굳기를 기다렸다

파내어 보면서 2000년전의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고. 화석이 아닌 석고상으로 만나는 폼페이시민.

추녀부분에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한 것으로보아 이곳은 아마 유명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은 아니었을까

 

 

 

 

 

2000년전 폼페이의 시민들은 이렇게 대중 사우나 시설을 지어놓고 이용하고 있었다.

 

 

 

 

 

사우나 시설의  천정의 화려한 조각장식이 그날의 폼페이의 화려했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리석을 이용한 사우나엔

 

 

 

 

 

사우나를 즐기다 갈증이 나면 시원한 냉수를 마실수 있는 시설도 설치를 하고

 

 

 

 

 

천정에 수증기가 맽혀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이 찬물방울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천정에 세로줄 무늬를 주어 찬물방울이 떨어지는 걸 방지했다.

 

 

 

 

 

바닥은 이렇게 작은 돌을 이용한 모자이크를 했다.

 

 

 

 

 

폼페이 시내의 중앙 도로엔 지금의 패스트 푸드점 같은 즉석 음식점에선 다량의 화구를둔 조리대가 있어

이곳에서 스파게티도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조리해주고 많은 시민들이 그음식을 먹느랴 시끌벅적 했을것이다.

 

 

 

 

 

중앙도로엔 인도와 차도가 확실히 구분되어있고 지금의 횡단보도엔 디딤돌을 놓아 보행자가 건널수있게 만들었다.

그횡단 보도앞에선 많은 짐을 실은 마차들이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바닥엔 이렇게 깊게 파인 흔적이 남아있다.

이정도의 흔적이 남으려면 얼마나 많은 마차가 다니고 급정거를 많이했어야 되었을까???

 

 

 

 

 

골목에서 중앙도로인 큰길로 나올때는 좌,우 회전을 확실하게 해주는 돌이다.

 

 

 

 

 

 

 

 

 

 

 

공동 우물이다. 공동우물이 폼페이 시내엔 40여개가 있었는데 각 행정구역마다 1개씩 있었다고 한다.

그우물엔 동물을 새겨놓아 글을 모르는 하인들이 주인의 심부름으로 찾아다닐수 있게 하였다고

토끼 우물에서 왼쪽으로 네번째집... 이렇게 말이다.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파뭍혀 버린 폼페이엔 오늘도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그옛사람들의 발자취를 생각하며 옛거리를 누비고 있다.

 

 

 

 

빵집이다. 부잦집엔 화덕이 있어 자체적으로 빵을 구워주식으로 먹었지만 화덕이 없는 서민들을

위한 빵집에선 빵을 구워 나오는 시간이 되면 줄을 서서 빵을 사간다. 지금도 구수한 빵냄새가 나는걸 느낀디.

 

 

 

 

빵집의 마당엔 맷돌이있다 . 맷돌위에 밀은 부어놓고 중간의 구멍에 지렜대를 끼워넣어

하인들이 돌리거나 아님 가축을 이용해서 밀을 갈아 빵을 만드는 빵집이다.

이렇게 맷돌을 4개씩 설치한 빵집 이었으니 구워내는 양도 무척 많았을 것이다.

 

 

 

 

 

 

 

 

 

 

 

 

 

 

 

 

 

 

 

 

 

이집은 귀족집이다. 바닥에 알랙산더 대왕의 원정 모습을 모자이크 해놓은 것이라고....

 

 

 

 

 

빈부의 격차가 심하여 부잦집은 이런 화려한 정원도 만들어 놓고 살았다고 한다.

폼페이는 우리가 생각 하는것보다더 심한 빈부의 격차가 있었지만 굶어서 죽거나 병든 사람들은

없었다고 한다. 부자즐이 주변에 굶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지급하였다고 한다.

 

 

 

 

이번여행의 로마 가이드인 안광영 교수와 폼페이 로컬 가이드이다.

음악가이자 가이드를 겸직하고 있는 분인데 해박한 지식과 해설에 많은걸 배울수 있었던 분이다..

성악가인 안광영 교수는테너 가수로서 네이버 검색창에 조회를 하면 화려한 이력을 알수있다.

 

 

 

 

 

 

 

 

 

 

 

 

 

 

 

 

 

 

 

 

 

 

폼페이는 그당시에도 농경사회인 자급자족의 도시가 아닌 모든 물자가 매매를 통해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 지는

 상업이 발달한 도시로서 중앙 도로변에서 약400여개의 점포가 발굴 되었다고 한다.

 

 

 

 

그당시의 병원건물도 잇었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의 대리석엔 미끌림 방지를 위해 요철을 주기도 했다.

 

 

 

 

 

도시엔 화려만 있는게 아니었다. 오늘 우리팀이 가보지못한 곳엔 폼페이의 아주 추악한 현장인

로마 정부에서 합법적으로 인가를 해서 남자들이 창녀를 찾는게 아니고 지금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변태 성욕자들이나

아주 은밀하게 하는 남창을 즐겼다는 곳도 있고 해변엔 무역상들을 위한 창녀들이 있는 유각도 번성 했었다고 한다.

 

 

 

 

그날도 무척더웠고 생각을 그렇게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발자욱 뗄때마다 먼지가 일어나 이게

폼페이의 베수비오 화산 먼지다 라는 농담도 하고 다녔다.

 

 

 

 

 

 

 

 

 

 

 

 

 

 

 

 

사람의 석고상들은 따로 박물관에 보관을 하는데 이렇게 유물을 보관하는 곳에도 있다.

이사람은 화산재의 공포로 부터 벚어나기 위해 움추리고 앉아서 입과 코를 막고 있는 자세로 죽어갔다.

 

 

 

 

어린아이는 잠을 자다 죽었는지 누어있는 형태다.

 

 

 

 

 

덥거나 말거나 관광객은 무척 많이 찾는 폼페이 였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였는데 또다시 어느곳에서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제2의 폼페이가 탄생 되지않을까?

 

 

 

 

 

 

 

 

 

 

 

또다른 2000년전의 만남을 기다리는 손끝에 정성이 깃드려있다. 지금은 더이상의 대규모 발굴을

진행 하지않고 부분적인 발굴과 시설물 설치를 위한 발굴만을 실시한다고 한다.

2000년전의 도시. 우리 나라엔 배추도사 무도사가 구름을 타고 다니고

역사는 초기 삼국 시대인데 우리의 고구려 건국이 기원전 20여년전 이었으니 고구려 건국후 100년 이지난 시대에

우리는 건국 신화가 존재하던 시대에 이런 도시를 운영 하였던 로마 제국.

그화려했던 역사의 현장을 둘러본 소감은 한마디로 놀람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가져온 곳 : 
카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
글쓴이 : 경주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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