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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 등산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공양은 단순히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복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사진은 의왕 청계사에서 공양을 받고 있는 등산객들의 모습. |
비빔밥, 국수 등
등산객들에게 무료 제공
불교 이미지 제고 비롯해
불교와 인연 맺는 계기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가난 구제하던 구휼처서 유래
산불 방지, 환경 보호 등
산림 보존에도 기여
가을을 맞아 단풍과 산의 정취를 즐기려는 등산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건강을 이유로, 산의 경치를 즐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산에 오르며 등산을 즐기는 이들의 수는 매년 100만 명 이상 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에 오르는 누적등산인구도 156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등산은 현대인들에게 주요한 여가활동을 자리 잡았다. 등산객들이면 누구나 한 번쯤 등산로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사찰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불자이던,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던,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이던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산행을 마치고 가족, 동료들과 함께 사찰에서 소박하게 점심 공양을 하며 불교와 인연을 맺기도 한다. 사찰에서도 이들을 위해 무료로 공양을 제공하거나 간단한 보시 비용을 받기도 한다. 무료로 제공하는 점심이지만 메뉴도 대중적인 비빔밥이나 국수에서부터 영양을 갖춘 식단까지 다양하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 삼천사(주지 성운스님)는 삼천사 계곡을 비롯한 수려한 경관을 갖고 있는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특히 1968년 1.21사태로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이었지만 1996년 비봉과 북한산성으로 통하는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삼천사를 찾는 이들도 크게 증가했다. 이에 삼천사에서는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며 이곳을 찾는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다. 삼천사에서 제공하고 있는 점심은 등산객들이 흔히 생각하는 비빔밥이 아니다. 잘 짜인 식단에 맞춰 밥과 국, 김치를 포함한 4가지 반찬으로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식단은 영양의 균형을 생각해서 일주일 단위로 작성하고, 식단에 따라 등산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식단에 맞추지 않고 예외적으로 비빔밤을 제공하는 날도 있다. 10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몰리는 매년 부처님오신날이나 백중기도 때에는 특별히 비빔밥을 제공한다.
“중생을 돌보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사회복지와 종교는 둘이 아니다”는 신념을 갖고 복지에 앞장서고 있는 성운스님의 지론에 따라 복지와 포교 실천의 차원에서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산 등산을 왔다가 삼천사에서 공양을 하고 신도로 등록한 이들도 있고, 무료 점심 공양의 인연으로 49재를 삼천사에서 봉행하게 된 이들도 제법 된다. 무료 공양에 대한 답례로 등산객들이 공양미를 보시하면서 사찰 내 독특한 문화도 생겼다. 삼천사 내 각 전각마다 불단에 공양미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련된 공양미는 등산객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규모가 커지게 됐고, 다시 복지 불사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등산객들도 복지 사업을 위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서울 근교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청계산에 위치한 청계사에서도 무료 사찰 공양을 접할 수 있다. 의왕 청계사(주지 성행스님)는 주말마다 소박한 비빔밥을 등산객들에게 제공한다. 특히 청계산이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지면서 청계사를 찾는 등산객의 수도 상당수다. 주말에는 보통 500명 이상이, 봄이나 가을과 같은 등산 시즌에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을 위해 청계사에서 제공하는 메뉴는 나물로 맛을 낸 비빔밥이다. 소박하지만 산행을 마치고 사찰을 찾은 등산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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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 사찰에서 먹는 점심은 더욱 ‘꿀맛’이다. 사진은 점심 공양을 하는 등산객들의 모습. |
관악산 연주암(주지 탄무스님)에서도 비빔밥을 제공한다. 365일 낮12시부터 오후2시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4명의 공양주가 구슬땀을 흘리며 매일 점심을 준비한다. 전액 사찰에서 부담하고 있다. 서울 승가사(주지 정호스님)는 김치와 맛깔스러운 반찬으로 차려진 식사를 뷔페식으로 무료 공양을 제공한다. 등산객들이 알맞게 덜어서 먹을 수 있도록 해 음식물 쓰레기의 양도 줄이고 있다. 등산 시즌을 맞아 사찰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때는 국수를 제공하기도 한다.
다양한 코스로 구성된 남한산성 둘레길이 인기를 끌면서 경기도 광주 장경사(주지 경우스님)를 찾는 등산객들도 늘고 있다. 등산로와 인접해 있어 장경사는 등산객들에게 땀을 식히고 쉬어가는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장경사에서도 이들을 위해 국수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경우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등산객들에게 무료로 점심공양으로 국수를 제공해왔지만 남한산성 입구에 위치한 많은 식당에서 이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면서 식당의 매출이 감소했다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장경사에서는 탄력적으로 국수를 제공하고 있다. 식당에서 민원을 제기하면서 장경사가 등산객들에게 무료로 국수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장경사를 찾는 이들까지 외면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등산객들이 점심시간에 맞춰 장경사를 방문한다면 사찰에서 제공하는 국수를 먹을 수 있다.
주지 경우스님은 “식당에서 제기한 민원으로 적극적으로 등산객들에게 무료 공양 사실을 알리지는 않고 있다”며 “하지만 공양을 위해 장경사를 찾은 이들은 막지 않고 국수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구에게나 한 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의 영험으로 유명한 팔공산 선본사(주지 덕문스님)에서도 무료 공양을 만날 수 있다. 선본사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불공을 드리는 불자들뿐만 아니라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다. 주말에는 1만 명 이상이 갓바위 부처님을 찾고 있으며, 연인원도 약 7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선본사에서 제공하는 점심 공양 메뉴는 국, 콩나물, 오이, 무채 등이 들어 간 비빔밥이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비빔밥이지만 공양간은 항상 기도객과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다. 갓바위 부처님의 영험으로 소박한 공양이 더욱 특별하게도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밖에도 장국에 말아 낸 담백한 국수를 제공하는 인제 영시암을 비롯해 밥과 국, 오이와 김치로 소박한 맛을 낸 설악산 봉정암, 등산객과 내방객을 대상으로 국수를 광주 무등산 약사사 등 전국 많은 사찰에서 사찰을 찾는 이들을 위해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한 달 평균적으로 100만원에서 200만원 가량 등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 무료 공양을 위해 쓰이고 있다. 공양을 준비하는 이들도 사찰마다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10여 명 정도.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전액 사찰에서 부담하고 있다. 사찰 무료 공양은 단순히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무료로 공양을 제공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자체로 자비를 실천하는 일이자 훌륭한 복지 사업이기 때문이다.
‘사찰에 가면 무료로 밥을 먹을 있다’는 인식은 그동안 꾸준하게 무료 공양을 제공하며 자비를 실천해 온 불교계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무료로 제공하지만 사찰에서 점심을 먹은 이들은 자율적으로 밥값을 보시한다.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등산객들의 공양 보시금은 복지 사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 해마다 사찰에서 운영을 지원하는 복지시설에 전해져 다양한 복지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등산객들이 나눔에 동참할 수 있는 간접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 사찰에서 제공하는 무료 공양은 가난으로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며 가난을 구제하는 구휼처의 역할을 하면서 이뤄지게 됐다. 사찰로 들어온 공양물을 사찰에서 모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함께 나누며 보시를 실천하는 공공복지의 성격이 강했다. 그 자체로 자비를 실천하는 일이자 훌륭한 복지 사업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불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제공하고 종교와 관계없이 불교와의 인연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불교를 알리는 포교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 산림 보호, 환경 보존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또 다른 효과다. 국립공원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지역에서 취사, 음식물 쓰레기 투기 등을 예방해 산불이나 환경 훼손으로부터 산림을 보호하는 데도 사찰이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계사 주지 성행스님은 “사찰에서 무료로 공양을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불교와 인연을 맺는 씨앗이 된다. 등산객들이 사찰에서 공양을 함으로써 종교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며 “뿐만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며 청정한 산림과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신문2951호/2013년10월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