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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부업체 직원의 고백

淸潭 2013. 8. 12. 10:46

어느 대부업체 직원의 고백


★... 〈신청부터 승인까지 11초면 됩니다〉, 〈누구나 쉽고 빠른 대출〉. 텔레비전만 켜면 쏟아지는 대부업체 광고문구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대부업체는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기준으로 돈을 빌려줄까.

“대출 심사 3년차, 탐정 수준이 됐다”

수소문 끝에 대부업체 근무경력 3년차 A씨와 2년차 B씨를 만날 수 있었다. 두 명 모두 ‘대부업계 빅5’에 속한 대형업체에서 근무 중이다. 대부업계 빅5로는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웰컴크레디라인(웰컴론), 바로크레디트, 리드코프가 꼽힌다. 텔레비전 광고를 하는 업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A씨와 B씨는 수도권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두세 군데의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옮겨다니다 대부업체에 입사했다. 대부업의 이미지 때문에 입사를 주저했지만, 정규직으로 바로 입사가 가능하다는 점과 전 직장보다 연봉이 높다는 점 때문에 눌러앉게 됐다. 이들이 일하는 회사의 초봉은 대졸 사원 기준 각각 2천만원대 중반과 초반이다. 대부업체 직원들의 이직률은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이들은 입을 모아 “함께 입사했던 동료들 중 상당수가 벌써 그만뒀다”고 했다.

A씨는 대부업체 본사에서 대출 심사를 맡고 있다. 신규 대출 기준으로 하루에 검토하는 서류는 대략 40건 가량이다. 이 중 대출 승인을 해주는 것은 평균 6건이다. 15%가량 통과시키는 셈이다. “생각보다 하루에 처리하는 건수가 적다”고 묻자 A씨는 “서류만 보고 돈을 내어주는 게 아니라 일일이 전화로 확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광고에서처럼 10초 만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건 소액 신용대출이에요. 제가 심사하는 건 그보다 큰 금액의 신용대출이에요. 대부분 1천만원 미만의 대출이죠. 고객에게 직접 전화해서 서류에 기재한 내용이 맞는지, 돈이 왜 필요한지, 일은 하고 있는지 등등을 물어봅니다. ‘200만원 빌려주면서 이런 것도 물어봐요?’ 되묻는 고객들도 있어요.”

군 미필자는 자동 탈락

대출 가능 여부와 가능 금액은 기본적으로 신용등급과 현재 소득, 기존 채무를 고려해 정한다고 한다.

러시앤캐시 등의 일부 대형업체는 자체적인 시스템(CSS)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고객의 정보를 입력하면 대출 가능 금액이 자동으로 계산되어 나온다.

중소 대부업체에 문의해보니 “기존 고객 정보가 많은 대형업체에서나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대부업체는 기본적인 재무 정보에 심사 직원이 추가로 알아낸 정보를 결합해 대출 금액을 정한다. 소유하고 있는 주택의 시세나 동거인 여부까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심사 직원의 ‘순발력’과 ‘감’이 꽤 중요한 셈이다.

A씨는 “대출 심사를 하다 보니 이제는 거의 탐정 수준이 됐다”고 했다.

“대부업체에서도 기피 고객이 있어요. 군미필자가 대표적이에요. 군대를 갔다오지 않고, 부모와 떨어져 아르바이트하며 혼자 사는 미혼 남성은 100% 대출이 안 된다고 보면 돼요. 군대에 가버리면 돈을 어디서 받아요. 군 제대자 검색하는 사이트에서 군필 여부를 필히 확인합니다. 무직자도 기피하지만 모두 거절하는 건 아니에요. 부모와 함께 살면 승인 가능성이 높아요. 대부분 부모가 대신 갚아주거든요. 2백만원가량은 빌려줘요. 그런데 부모와 정말 함께 사는지 확인해야 되잖아요. 집에 전화를 걸어요. 부모로 추정되는 사람이 받으면, 물어봐요. ‘취업정보싸이트 XXX입니다. 좋은 구인 정보가 있는데 누구누구씨 취직하셨나요? 같이 살고 계시죠?’ 이런 식으로요. 거의 탐정 수준이죠. ”

대부업체는 받은 사람이 되걸면 계속 통화중으로 나오는 발신 전용 전화번호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확인 작업에 사용되는 번호다.

대출 기피층에는 ‘조폭’도 포함된다.

“유흥업 종사자와 조폭은 안 빌려줘요. 예전에 연 69%씩 높은 이자를 받을 때는 빌려줬다고 하더라고요. 요즘엔 일절 거절해요. 몇마디 나눠보면 쉽게 가려낼 수 있어요.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업장 관리하는데, 이제 휴대폰 매장 내려고요’ 이런 식으로 답해요. 그러면 전산상에 ‘나이트클럽 종사자’라고 기록해요. 이 사람은 적어도 저희 회사에서는 앞으로 영영 대출 못 받는다고 보면 돼요. 전과자도 안 돼요. 가끔 보면 개인신용정보의 주소지 중 하나가 파출소로 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요. ‘아 전과자구나’ 직감적으로 판단하죠.”

노인과 외국인도 기피 대상이다.

“연령 제한도 있어요. 여자는 65세까지, 남자는 61세까지만 빌려줘요. 요즘 자식들은 부모님 빚 안 갚아주잖아요. 조선족과 화교도 안 돼요. 귀화했어도 안 돼요. 뿌리가 없어서라고 할까, 대신 갚아줄 가족이 없잖아요. 국적을 떠나서 순전히 돈을 잘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잣대로 판단해요.”

“여성은 숨만 쉬어도 기본 100만원 대출 가능”

무조건 환영하는 성별이나 직종도 있을까. A씨는 ‘여성은 무조건 환영’이라고 했다.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해요. 여자는 숨만 쉬어도 기본 100만원은 대출해준다고요. 여성 고객의 연체율이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낮아요. 전업 주부들도 대출 많이 받아요. 배우자의 소득과 직장을 보고 빌려줘요.”

대출을 받는 주부 중 99%가 ‘우리 남편에게는 꼭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고 한다.

“배우자를 보고 대출을 해주는 거잖아요. 정말 배우자가 그 직장에 다니는지, 함께 사는 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비밀은 지켜줘야 되니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요. 일단 배우자의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요. 미발신번호로 걸죠.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정보 확인을 해요. ‘누구누구님 맞으십니까, 여기는 XX우체국인데요, 건강보험 XX지사에서 등기물이 있습니다. 해당 지역의 집배원이 바빠서 오늘 안으로 등기우편 배달이 안 될 것 같아서요, 다른 주소로 발송해드릴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의심을 안 해요. 건강보험은 다 가입되어 있잖아요. 그런 다음 다시 물어요. ‘아내분 것도 있는데 함께 보내드릴까요?’ 이때 대답이 중요해요. 이혼을 했거나 별거 중인 경우에는 백발백중 ‘아 저한테 보내지 마세요’라고 답해요.”

주부들이 돈을 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드 대금이나 현금서비스 대금을 갚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친정에 긴급 지원을 해주기 위해서 빌리기도 하고요. 이런 경우는 있었어요. 주부 고객이랑 통화를 하는데 옆에서 남자가 ‘얼마 대출해달라고 해라’라는 식으로 계속 지시를 하는 거예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요. 그래서 물었어요. ‘고객님, 옆에서 남자 분이 계속 말씀하시는데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그랬더니, ‘아, 아는 지인이에요’라고 답하더라고요. 미심쩍어서 최근 3개월치 통장 내역을 찬찬히 살펴봤어요. 대출 신청받을 때 필수적으로 받아놓거든요. 모텔 등 불륜으로 의심되는 내역이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대출은 해줘요. 어차피 불륜과 상환능력은 크게 상관이 없잖아요. 많이는 안 내줘요. 이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가장 환영하는 직종은 ‘공무원’이다.

“공무원은 대환영이에요. 그렇지만 그다지 신청 건수가 없어요. 직업군인은 종종 있어요. 하사관은 대환영이에요. 적어도 3~4년간은 소득이 확실하잖아요. 대출 상환 만기일자를 제대일 내로 정해줘요. 연체하면 부대로 전화하면 되니까요.”

이번엔 B씨를 만나봤다. B씨는 대형 대부업체의 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자회사에서 돈을 빌려주는 고객 중엔 신용등급이 낮거나 개인회생 이력이 있는 고객이 높다. B씨는 “개인회생 이력이 있는 사람의 연체율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높지 않다”고 했다.

“대부업체 고객 중에 돈을 안 갚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신용등급이 낮다고 돈을 안 갚는 게 아니에요. 채무의 패턴이 중요해요. 고객의 통장내역과 채무내역을 보면서 전화통화를 하면 그 고객이 왜 돈을 빌리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머릿속에 그려져요. 조금씩 빌리고 갚고, 또 조금씩 빌리는 고객이 있어요. 가족관계 보니까 아이가 세 명인데 월셋집에 살아요. 통화를 해보면 전화기 너머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요. 이런 사람은 대개 생활비를 위해 빌리는 거예요. 이런 경우엔 등급이 낮아도 소액이나마 대출을 해주려고 해요. 지점장 권한으로 일정 금액은 조정이 가능하거든요. 소액씩 생활비를 빌리는 사람의 연체율은 높지 않아요.”

B씨는 일하다가 종종 죄책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가끔 이렇게 돈을 벌어야 하나 싶을 때가 있어요. 대부업체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많이 빌려주려고 해요. 대부잔액이 올라가면 보통 대손율이 떨어지거든요. 실적 압박이 있을 때는 기존에 대출을 한번이라도 이용했다가 갚은 사람들에게 제가 먼저 연락해요. 또 빌려가라고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이 순순히 빌려가요. 그런 식으로 빚을 지는 습관이 몸에 배는 거죠.”

큰 충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고객이 사망하면 더 이상 추심을 안 해요. 제 동료가 사망자 채권 목록을 보다가 본인이 통화했던 고객의 이름을 발견한 거예요. 기록을 찾아 보니 추가 대출 신청을 거절했던 고객이었대요. 젊은 나이였으니 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낮고… 동료가 그날 몇 번을 묻더라고요. ‘내가 추가 대출 승인했으면 안 죽었을까? 나 때문에 자살한 건가?’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게 그런 사람들은 개인회생 제도나 햇살론처럼 기댈 데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죽어요. 그저 벌어서 갚아보려고 하다가 감당이 안 되니까 절망하고 자살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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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