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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潭 2013. 5. 27. 14:54

박정희·김대중 기념관 사업 권노갑·이정현 '상생 품앗이'

[중앙일보] 입력 2013.05.27 03:00 / 수정 2013.05.27 08:15

권, 2009년 박정희기념관 부회장
이, DJ기념 재단 발기인으로 참여
이 수석, 권 고문 부탁 흔쾌히 수락


권노갑(83)과 이정현(55). 한 명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동교동계의 좌장이다. 또 한 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소통맨’. 두 사람이 전직 대통령 기념관으로 서로 통했다. 다음 달 15일 전남 목포 삼학도에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개관한다.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재단의 명예이사장은 권노갑 민주당 고문이다. 이 법인의 발기인에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참여했다.

 14년 전인 1999년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그해 7월 창립한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엔 당시 현직 대통령인 DJ가 명예회장을 맡고 권 고문이 부회장으로 참여했다.

 DJ와 그의 최측근인 권 고문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부 예산 200억원을 지원하면서 돕자 이번엔 박 대통령의 측근인 이 수석이 ‘보은의 품앗이’에 나선 셈이다.

 권 고문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가 만들어질 당시 DJ가 내게 ‘자네와 내가 피해를 많이 받았지만 용서와 화합의 차원에서 기념사업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권유했다”며 “이번에 DJ노벨평화상기념관도 (이사진 구성을) 인색하게 해선 안 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믿을 만한 분을 참여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계획에 따라 권 고문이 기념관에 참여할 여권 인사를 물색하던 중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이 수석을 발기인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이 수석을 천거해 참여를 부탁하게 됐다. 이 수석은 제안을 받고는 “제가 오히려 황송하다. 이렇게 역할을 주니 감사하고 고맙다.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응하겠다”고 답했다고 여러 동교동계 인사들이 전했다.

 이 수석은 중앙일보에 “내가 참여한 것에 대해 (용서와 화합 등의)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면 오히려 정치적으로 퇴색된다. 그냥 기념관에 참여했다고만 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수석으로 상징되는 여권 핵심 인사의 참여에 동교동계 인사들은 반색하고 있다. 권 고문은 중앙일보에 “기념관의 건립 취지엔 용서와 화해도 포함된다”며 “이미 DJ가 대통령 시절에 동서 화합을 주창하지 않았느냐.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대로 풀어서 공생하는 게 옳다”고 밝혔다. 기념관 건립 실무를 주도하는 정종득 목포시장은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도 기념관 이사로 나서기로 약속했고,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권 고문과 이 수석은 각각 DJ와 박 대통령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고락을 같이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DJ의 목포상고 4년 후배인 권 고문은 61년 DJ가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부터 2009년 서거할 때까지 내내 그의 분신이었다. 지난해 대선 때 동교동계가 분화하며 한화갑·김경재 전 의원 등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진영으로 이탈할 때도 그는 야권을 지켰다. “이희호 여사가 계시지 않느냐. 어떻게 DJ가 만든 민주당을 떠날 수 있느냐”는 이유에서였다.

 전남 곡성 출신인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부터 휴대전화를 10여 개 지니고 다니며 박 대통령의 ‘입’을 맡았다. 경선 패배 후 이명박 후보 측에서 선대위 고위직을 제안했으나 고사했다. “ 박근혜 사람으로 남겠다”는 취지였다.

 호남 출신에 ‘의리형’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둘의 교집합이 또 하나 있다.

 두 사람은 동국대 선후배 출신이다. 이 수석은 고교 졸업 후 육사에 지원했다 시력 때문에 낙방한 뒤 동국대 정외과에 진학했다. 정계 입문을 꿈꾸던 터라 권 고문을 비롯해 김동영·최형우 전 의원 등 정치인을 많이 배출한 대학을 찾아서 지원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이 수석은 권 고문에 대해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 직접 교류한 일은 드물었지만 학교 다닐 때나 정치를 시작할 때 학교 선배로서 큰 정치인이었던 권 고문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채병건·강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