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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XX야’에서 ‘손선생님’으로…

淸潭 2012. 6. 12. 09:06


고객감동이야기 - ‘이XX야’에서 ‘손선생님’으로…




후두두두. 처마 끝으로 장대 같은 비가 한참 쏟아지는 어느 장마철이었다. 이틀 뒤 대출만기가 되는 고객이 있는데 계속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았다. 만기상환을 한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연장을 한다면 만기 연장 기간이 하루만 지나도 등급과 조건이 확 바뀌어서 금리가 많게는 10%이상 오르고, 연대보증인도 세워야 하기 때문에 고객의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복잡한 상황이 된다.

전화가 되지 않아서 음성까지 남기고 고객의 전화를 기다렸다. 잠시 후 전화가 울렸다. 그 고객이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제가 전화를 드렸던 만기연장 담당자 손OO 입니다.”
이런 반가운 나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날벼락이 쏟아졌다.
“야, 이 XX야, 바쁘고 아파 죽겠는데 뭔 놈의 전화를 이렇게 많이 해대고 지랄이야? 너 뭐야? 돈 꼬박꼬박 다 냈는데 뭐 어쩌라고 지랄들이여?”

서운한 마음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만기연장을 기간 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차분히 설명을 했다.
“야, 이 XX야, 뭐가 그리 복잡해? 내가 차 할부할 때 낸 서류 있잖어, 그걸로 해서 원금 다 연장해, 이자만 낼거고, 원금은 조만간 갚을 테니 당장 연장 처리해, 됐지?”

헉! 큰일이다. 이 고객은 이자만 내는 방법으로는 연장이 안되고, 원금 일부를 갚아야 연장이 되는 고객인데 도무지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만기연장에 대한 설명을 했다.
“야, 나 바쁘니깐 그냥 해. 알아서 연장해 놔. 알았어? 이XX, 귀찮게 하지말고 당장 해놔!”

- 뚝 -
전화기 끊기는 소리가 너무도 야속하게 들렸다. 이상태로 전산메모를 달아 미처리 건으로 등록하면 그만이지만 연장처리가 안돼 채권센터로 넘어가면 문제가 될 것이 뻔했다. 고객이 갑자기 목돈을 마련하려면 고생할 것 같다도 걱정이 들었다.
다시 용기를 내 수화기를 들었다.

“야, 이XX. 또 전화질이여? 너 거기 사무실 어디여? 내가 찾아가 요절을 낼랑께!”
막무가내였다. 일단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지점위치를 가르쳐주었다. 고객은 한시간 안에 방문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객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떨리고 무섭던지.. 그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야XX, 나 아무개여, 지금 지점 앞에 주차했는데 난 절대로 못 올라가니까 빨리 나와!”
어이가 없었고 화도 났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만 타면 사무실인데 밖으로 나오라니.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해 하면서도 워낙 불만이 많았던 고객이라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오고 있어서 한 손에는 우산까지 받쳐 쓴 상태였다.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이 열리더니 신경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길거리까지 내려오라고 해놓고 욕을 해대는 고객이 너무 밉고 야속했지만, 일단 고객에게 정확하게 연장안내 설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창피함도 잊었다.

한 손으로 우산을 받쳐들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어 고객 눈높이에 맞추고 무릎 위에 프린트한 종이를 놓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막무가내로 화를 내던 고객이 잠잠해지더니 어느새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가씨, 일어나, 이그, 유니폼이 다 젖었구먼, 내가 올라가고 싶었는데, 봐봐. 내 다리가 온전치가 않아, 멀쩡한 날에도 목발 짚고 댕기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비 오는 날엔 우산 들고 목발을 짚을 수가 없어. 이것도 장애인 차고. 처음엔 화가 많이 났는데 아가씨가 이렇게 비를 다 맞고 무릎까지 꿇고 설명해주니깐 화난 마음이 좀 괜찮아지네..”

그제야 자동차 창문 너머 고객의 다리가 보였다. 잠시나마 고객을 미워하고 욕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갑자기 가슴이 찡해지면서 어떻게든 꼭 도와드리고 싶었다.

얼마 후 또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사무실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목발 때문에 우산도 쓰지 못해 온몸이 다 젖으신 그 고객님께서 검정색 봉지를 들고 내 앞에 힘든 발걸음을 옮기고 계셨다.
“어머, 고객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손선생님! 내 언제 한번 오고 싶었어. 이그, 봉지가 다 젖어서 어쩔까잉? 이거 별 것은 아닌디. 손선생한테 꼭 주고파서 왔어.”

빗물에 다 젖은 손으로 검정 비닐 봉지를 꼭 쥐어 주며 환하게 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정말 알 수 없는 짠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객님을 우산을 쓰고 모셔다 드린 후, 자리에 와서 비에 젖은 검정봉지를 조심스럽게 열어 봤다. 그 안에는 피로회복제 다섯 병이 들어있었다. 진한 감동이 온몸으로 들어왔다. 무엇보다 소중한 고객님의 마음을 알기에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