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조선 대장부의 속내
임유경 엮음, 역사의아침 288쪽, 1만2000원 조선 시대 한문 편지 68편을 묶고 해설한 책의 제목이 역설적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대장부란 '뜻을 세우고 그 뜻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그들의 삶은 치열했겠지만 책에 실린 글은 뜻이 크거나 고매하지만은 않다. 친구나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글이라 근엄한 모습이 사라져서다. 인간적 고민과 가정적 모습 등, 우리가 아는 위인. 선비의 풍모와는 사뭇 다르지만 속 깊은 일면이 보인다. "제게 늙은 어머니가 계신데, 올해 나이 여든하나입니다…제가 본래 용렬하오나 무거운 소임을 맡아 허술하게 처리할 수 없는 책임이 있고, 몸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처지입니다. 부질없이 높은 산에 올라가 어머니가 계신 곳을 바라보며 그리워하고 있습니다…어머니의 편지를 본 뒤로는 마음이 산란하여 다른 일에 정신을 쏟을 수가 없습니다…이 겨울에 어머님을 찾아뵙고 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이순신이 이원익 대감에게 전쟁이 잠시 소강 상태니 어머니의 얼굴만이라도 보고 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 일종의 청탁글이다.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에게서 어머니를 염려하는 효심 지극한 아들을 만날 수 있다. "아침에 햇빛을 받은 쪽은 저녁에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핀 꽃은 먼저 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운명의 수레는 재빨리 구르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 점을 기억하고 세상에 뜻이 있다면 잠시의 재난을 이기지 못해 청운의 뜻까지 꺾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대장부는 언제나 가을 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상을 가슴에 품고 있어 천지가 좁아 보이고 우주도 내 손에 있는 듯 가벼이 여겨야 한다." 간곡하다. 귀양살이를 하던 다산 정약용이 먼 길을 찾아왔다 돌아가는 둘째 아들에게 노잣돈 대신 쥐어준 편지다. 장성해서 만난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오죽 많았을까만 다산은 조선의 큰 학자답게 자식 훈계도 남다르다. 장남 노릇이 힘들다거나 때로는 남자도 울고 싶다는 신음이 나올 만큼 대한민국의 아버지 노릇, 남편 구실하기는 만만치 않다. 귀한 명문이라거나 담긴 뜻이 맑고 높다는 식의 이야기는 젖혀 놓자. 읽으면 위로를 얻고 권하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책이다. 김성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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