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조계종승가대학원장 혜남 스님은 지난 2월 16일 강남 봉은사 법왕루에서 열린 선지식초청법회에서 5백여명의 불자들에게 “말하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다”며 실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법문을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중국 선지식 중 도림선사는 지금까지도 선가에서 회자되는 뛰어난 스님이었습니다. 당시 중국 최고의 문장가요 시인이었던 백락천 즉 백거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백거이가 하루는 도림선사를 찾아가 “평생 좌우명을 삼을 만한 말씀 한 마디를 듣고 싶다”며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이에 도림 스님은 그에게 “나쁜 일 하지 말고 좋은 일 해라.(諸惡莫作 衆善奉行)”했는데 백거이가 “그 정도 얘기는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말”이라며 귀담아 듣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도림 선사는 “세 살 먹은 아이도 말하기는 쉽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에 백거이는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륜패륜 범죄사건은 너무도 많아 일일이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당사자도 어떤 것이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행하지를 못하니 범죄자가 되고 패륜아가 되는 것입니다.
봉은사 오는 길에 택시를 이용했는데 그 운전기사는 영업한지 7년이 지났지만 사고 한 번 내지 않았다 합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참으로 걸작입니다. ‘나 혼자 운전 잘해서 사고가 없던 게 아니라 좋은 인연을 만났기에 사고가 없었다’는 겁니다. 자기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옆 차가 불현듯이 들이 박으면 방어운전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것이니 자기는 악연을 안 만났기에 무사고가 가능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인연을 만나기를 발원하며 업장을 소멸해가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저도 선방에서 처음 참선할 때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내가 속세에서 지은 업이 두텁구나’하는 생각이 나기에 적멸보궁과 관음도량을 순례하면서 3년 동안 기도 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한 몸이요 만물이 나와 일체라는 일진법계도리를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 분수 넘치는 욕심을 내다보니 세상일이 마음대로 안돼 화를 냅니다. 그래도 뜻대로 안되니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입에서 나오는 그대로 말을 내뱉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도 하고, 꾸며대는 말도 하고, 악담도 하고, 이간질도 합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주먹이 날아가고 사람의 생명을 죽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악업이요 업장입니다.
여러분 천수경 독경하면서 10악참회 하지요? 지금까지 자기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참회하면 새사람이 되는 겁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원력에 빌어 참회하는데 아주 오랜 세월, 100겁에 지은 죄업도 한 생각에 모두 없어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백겁생 동안 지은 죄업 한 생각에 없어져라.(百劫積集罪 一念頓蕩盡) 마른 풀이 불에 타듯 일체 남김없이 없어져라.(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 죄의 종자 본래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마음 한 번 없어지면 죄도 따라 없어진다.(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是罪亦亡) 죄도 없고 마음 없어 그 자리가 비었으니 비운 마음 그 자리가 진정한 참회라.(罪亡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하지 않습니까? 법당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절해서 업장을 녹이는 것을 사참이라 하고 본래 죄의 성품이 없는 걸 알아 죄를 소멸하는 것을 이참이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참사참 구분 없이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사생육도법계유정이 지은 악업도 우리 자신이 풀어줘야 합니다. 내 업장만 녹이면 되지 다른 사람 업장까지 왜 없애야 하느냐 반문하겠지만 이 법계가 전부 하나의 몸뚱이라는 것을 알면 그런 좁은 사견은 버려야 할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의상 스님의 법성게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티끌 가운데 시방세계 담겨있고(一微塵中含十方) 일체 티끌마다 시방세계 들어있네.(一切塵中亦如是)’ 풀 한포기라도 보세요. 풀은 자기가 붙이고 있을 땅이 있어야 합니다. 그 뿐입니까? 적당한 일조량과 온도, 통풍, 습기가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티끌하나에도 지수화풍이 다 있을 뿐 아니라 이 세계의 모든 것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창공에 나는 한 마리 새의 날개짓이 기상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호수에 머리카락 하나만 떨어져도 물의 수위가 달라집니다. 저 소나무는 수 십 년을 살아왔지만 만약 그 씨앗이 억세풀 속에 떨어졌다면 3척 이상 크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나쁜 인연을 만나면 좋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칡은 땅으로 스며드는 것이 본성이지만 만약 소나무에 걸치면 소나무를 따라 계속 위로 올라가며 커갑니다. 본성이 모자라도 주위환경이 좋으면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업장을 소멸할 때도 나 뿐만 아니라 알로 나고 태로 나는 모든 중생들, 더 나아가 온 우주 법계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지은 업까지도 내가 소멸하겠다는 발원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를 다 참회하고 그 인연으로 모든 업장이 소멸됨과 동시에 세세생생 보살도 닦기를 발원해야 합니다.
업장을 소멸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캄캄한 동굴에서도 전기 불 한번 딱 켜면 한꺼번에 확 밝아지듯이 업장을 녹인 만큼 지혜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일상에서의 삶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이런 도리를 알지 못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업장이 두터워지는 일을 짓고 삽니다. 그 한 예로 5계 중 두 번째 ‘훔치지 말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훔치지 말라 하는 것은 주지 않는 것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주는 것만 ‘감사합니다’하고 받아 가야지 티끌 한 점이라도 주지 않은 것을 가져간다면 훔치는 것입니다. 훔치는 것은 꼭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 이르지 않습니다. 서류 조작해서 남에게 불리함과 유리함을 주는 것도 훔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물건 훔치는 것 보다 더 무섭습니다. 훔치면 내 복덕 종자를 끊는 것입니다. 한 세상 살면서 복덕을 지어야지 왜 끊습니까? 절 짓는데 시주 한다거나 법회에서 대중공양을 낸다거나 하는 것도 다 복덕을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훔치지 않는 것도 복덕종자를 키워가는 것입니다. 음흉하지 않음으로써 청렴종자를 키워가고, 거짓말 안함으로써 진실종자를 키워가는 것입니다. 맑고 밝고 향기롭게 살자고 하지 않습니까? 향기로운 게 달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향이라 했습니다. 선근복덕을 지어가는 불자님이 되시기를 발원합니다.
정리= 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혜남 스님은혜남(慧南) 스님은 1963년 창녕 관용사에서 득도, 1967년 부산 대각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1970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1977년 대흥사 강원에서 운기 스님을 강사로 전강 받은 뒤 198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학과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세간의 잣대로 말하면 화려한 학력의 소지자다. 또 스님이 다닌 강원 만해도 서너 곳이 넘을 정도다.
이후 스님은 해인사 승가대학 강주(1991년), 법주사 승가대학 강주(1993년)를 역임하는 등 강주로서의 소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으며 2000년 12월, 승가대학원장 제 2대 원장스님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