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한곳에 머물지 말고
새 마음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라
얼마전 현대 그룹 정몽헌 회장이 높은 빌딩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정몽헌 회장같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왜 죽었을까요. 그의 자살을 통해 인간이 중도(中道), 자기 안에 일어나는 지혜의 길을 놓쳤을 때 얼마나 위험한 지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 전 그의 아버지 정주영 씨가 전두환 정권이 끝난 뒤에 5공 청문회에 나온 것을 봤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장세동 씨한테 빌려준 돈 6억을 다시 받았습니까?” 묻자 “안받았습니다. 저는 제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더 이상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합디다. 그리고는 “그 돈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대신 다른 데서 60억을 벌 생각을 합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것이 바로 불교적인 생각입니다. 좬금강경좭에서는 “마음을 한 곳에 머물지 말고 새 마음을 내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도 새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정주영씨가 실천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보니 사업의 중용을 알고 나아가고 물러갈 데를 알아 그 길을 헤쳐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착하게 생겼더니만 앞으로만 나가다가 뒤로 못가고 길이 막혀 죽었어요. 자신은 최선을 다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사회구조가 자신의 몸과 마음과 의식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거에요. 이 양반이 불교의 이치를 알았더라면 그런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좋은 능력과 재산으로 여러 사람에게 이익되게 했을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찢어지게 못살아서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할 때는 안죽던 사람들이 요즘에 와서 왜 그렇게 죽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생의 방향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골든게이트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인들 중에서 아무데서도 답을 찾지 못해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박사학위가 두 개나 되고 미국 최고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이 가장 높은 것, 최고로 즐거운 것만 생각하다 몸과 마음이 망가져서 찾아옵니다. 그것이 물질문명의 결과입니다.
불교에서 육도 중에 아귀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아귀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눈에 좋고 보기에 좋은 것은 무조건 먹는 것. 그것이 바로 문명사회의 모습이요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특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몸이 비대해져 균형을 잃어가다 보면 자연히 마음도 혼탁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헛것인지 모르고 자꾸 욕심을 내면 그게 바로 업이 됩니다. 업이 쌓이면 어리석음에 갇히고 자기 안의 지혜를 등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안의 부처를 무시하게 되고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은 더욱 낮은 사람이 되는 반면 내 속에 부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남에게 존경받는 부처가 됩니다.
번뇌와 고통은 자아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내 지식을 보물단지처럼 꽉 붙들고 있으면 진리의 넓은 바다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잊어버려야할 불교를 왜 배워야 하느냐. 우리가 깨닫는 사람의 그림자라도 배워서 흉내라도 내다보면 내 안의 생각이 정제됩니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다보면 상식과 지식이 쉬워지면서 내 속에서 부처님의 싹이 나오게 됩니다. 그 경험이 바로 믿음이에요.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믿음으로 변하게 되면서 신심도 생기고 부처님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들에 상을 내지 말고 항상 자신의 마음을 정제시키십시오. 108배, 1000배도 하고 불교대학에서 공부도 하시고, 주력도 열심히 하십시오. 열심히 기도하다 보면 내 마음이 정제되는 순간을 딱 만나게 됩니다. 정제라는 것은 영어로는 silence, 우리말로는 고요하다고 하는데, 그것을 고상하게 말하면 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부처님 마음이 내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 속의 세포가 깨어나고 내 안의 부처가 마음대로 작용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을 모르고 공부하면 어리석음만 늘어난다”는 서산 스님의 말씀을 숙지하시고, 꼭 내 안에서 부처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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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문은 8월 9일 전북불교대학에서 열린 현웅 스님의 ‘불교와 현대문명사회’ 강연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스님은 지난 7월 중순부터 8월까지 첫 저서 『묻지 않는 질문』의 출판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했으며, 부산·전주 등 전국 지방 도시에서 순회강연을 가졌다.
정리=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