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명법문 명강의

깨침의 길 있기에 불교는 위대합니다

淸潭 2007. 3. 4. 18:46
깨침의 길 있기에 불교는 위대합니다
 
춘천 현지사 회주 만현 스님
 
 
비었어라 비었어라
삼천대천 세계가 비었어라
먼지 하나 티끌 하나 없는
공(空)의 세계
맑고 깨끗한 청정자체
환희 환희
환희 그 자체인 것을

-만현 스님 ‘대적정삼매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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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불교는 스스로의 해탈, 즉 열반을 구하는 종교다. 만현 스님은 깨달음을 구하기 위한 수행의 첫 단계로 참회를 강조했다.

■ 현지사 만현 스님은

춘천 현지사 회주 만현 스님의 세수는 69세이다. 춘천댐이 자리한 강원도 춘천시에 위치한 현지사는 스님들 몇 분이 수행하는 아담한 절로 2001년에 새로 지은 현대식 사찰이다. 현지사 회주 만현 스님은 1960년 부산 선암사에서 석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만현 스님은 최근 불교방송에서 법문을 설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만현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포교, 교무, 재무 부장 등을 지녔으며 해동불교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또 동산반야회 법주인 무진장 스님과 함께 공부한 만현 스님은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오늘은 종교의 가르침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불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그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에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19세기 인도에 ‘라마크리슈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유태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의 궁극적 경지를 두루 체험한 사람으로 신비체험·사마디(三昧) 깨달음을 얻기까지 했던 천재적인 수행자이자 뛰어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수행을 거친 뒤 “모든 종교는 그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고 선언했습니다.

또 유교의 즉물궁리(卽物窮理), 힌두교의 요가수행, 이슬람교의 수피즘, 유태교의 카발리즘 등으로 초인(超人)·도인의 경지를 이룬 분들은 “모든 존재 속에는 생명의 빛 곧 진리, 신성(神聖)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또 “자기존재의 빛·곧 ‘나’는 완전무한절대라는 것이 참된 명상을 통해 드러난다”고 합니다. 초인들은 500년에서 천년, 아니 그 이상을 장생하고 하늘을 날기도 하며 생사(生死)까지도 스스로 조절하면서 영생(永生)과 해탈을 성취했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불자들이 다른 종교의 정체성을 간과한다면 우물안 개구리가 될 것입니다. 남방불교 쪽의 위파사나 수행법, 북방대승 불교권의 여러 종파의 관법수행, 선불교의 간화수행법을 비롯해 밀교의 명상·탄트라수행 또한 깨달음과 더불어 신통까지 일어나기도 합니다.


“종교의 근본은 모두 같다?”

그러나 불교는 완벽한 생사(生死)의 해탈(解脫), 곧 대열반(大涅槃)을 구하는 종교입니다. 혹 어리석은 자는 앞에 소개한 종교들도 우리가 그동안 공부했던 불교와 다를 게 없는 것 같고 큰 신통까지 얻는 종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큰 신통을 얻을 수 있는 대단한 매력을 지닌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모든 종교가 선(善)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법문 처음에 이야기한 ‘라마크리슈나’라는 종교인 역시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지향점이 같다고 말합니다.


영겁이 지나도 멸하지 않아

그러나 붓다의 실체(實體), 불신(佛身)의 정체를, 곧 부처님의 위대한 진면목을 잘 아는 불자라면 저들 종교와 불교를 같은 차원에 놓고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구조상 생멸(生滅)이 다한 본원(本源)에도 증인(證人), 해탈까지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아라한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앞에 소개한 여러 종교수행으로도 아라한 급의 열반·신통까지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사부대중 여러분, 불교의 위대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기·무아사상이기 때문입니까. 힌두교에서도 연기사상과 유사한 사상이 존재하고 그들이 드는 삼매(三昧)에서도 무아(無我)와 유사 것들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대승 불전(佛典)들 때문입니까. 시방삼세(十方三世)를 관통하는 굉원(宏遠), 심오한 교리 때문입니까. 물론 완벽한 교리와 불전들 때문에 훌륭한 종교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불교는 다른 어떤 종교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위대한 점이 있습니다. 분명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저는 불교에서만이 ‘보살’이란 거룩한 성자가 나오고 성자 중의 성자인 법왕(法王) ‘붓다’가 나온다는 사실을 들어 위대한 종교, 불교의 위대한 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불교에는 ‘보다 잘 살 수 있는 길’이 설해져 있습니다. 또 영겁을 다하도록 멸도할 수 없는 길(道)이 있어서 또한 위대합니다.

붓다 만이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불신(佛身)을 지니십니다. 그래서 붓다는 변조광명이기도 합니다. 그 빛은 백 천만겁의 화신(化身)을 낼 수 있는 능력, 지혜를 지닙니다.

붓다는 청정이요, 자비요, 해탈이요, 대 열반입니다. 그리고 붓다는 항상 최고의 삼매(三昧) , 삼매 중의 삼매 ‘대적광삼매’에 들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붓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붓다는 허공에도 땅 속에도 별나라에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안에도 밖도 아닙니다. 붓다는 무아(無我)속 절대계에 여여(如如)히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살,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요. ‘나는 여자인 걸’ , ‘내 나이가 6, 70이나 먹었는데 무슨 수행을 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실 것입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 버리고 사람 몸으로 태어났을 때 발심, 분발해서 마음 공부해야 합니다.


모든 수행은 참회로 부터

고통이 떠난 자리가 곧 극락이요, 번뇌망상에 시달리면 거기가 바로 지옥이라고들 합니다. 온갖 근심 걱정 불안 속에 사시는 사부대중 여러분! 금생도 내생도 복되게 살려면 지금 먼저 전생에 지은 업을 참회해야합니다. 『금강경『을 독송하고 ‘석가모니불’ 염송하십시오. 또 시간을 조금 더 내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읽고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칭명하시기를 권합니다. 물론 부처님의 청정계율을 반드시 지키면서 말입니다.


사진·정리=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