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우석 사태' 취재기 펴낸 MBC 한학수 PD
요즘 MBC 한학수(사진·37) PD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황우석 지지자들의 시위나 협박이 아니다. 황우석 사건의 제보자 K씨와 B씨가 사태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PD는 "한국 과학계가 이 두 사람을 얼마나 끌어안느냐가 한국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줄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보자 K와 B가 없었다면…쓰라린 부메랑을 맞았을 것"
지난 6일 드디어 세상에 나온 황우석 사태 취재기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사회평론 펴냄) 곳곳에도 제보자에 대한 '빚'을 발견할 수 있다. 한 PD는 "그들이 없었더라면, 황 교수가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진 몇 년 뒤에, 우리는 세계로부터 쓰라린 부메랑을 맞게 될 운명이었다"며 "대한민국은 제보자 K 부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MBC 한학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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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놈 제1호 | |
지난해 이맘때 오보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론학자라는 사람은 제보자를 밝히고 처벌하라는 주장까지 내놨고, 끝내 사람들은 제보자의 신원을 파악해냈다. 한 PD는 "팀은 한번도 이를 확인해 준 적이 없지만 이들이 정상적으로 생업에 복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큰 부담을 안고 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보자의 공헌을 드러내는 것은 한 PD가 이 책을 내게 된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 PD는 감사원 내부 비리를 고발했던 이문옥 전 감사관,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던 윤석양 이병, 군 부재자 부정투표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 등을 예로 들며 "수많은 제보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황우석 사태는 한국사회 시상화석…앞으로 10년은 곱씹어야"
한 PD가 황우석 사태 취재기를 정리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부분은 이 책이 후일담 정도로 치부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사건의 범죄적 측면을 드러내기보다 '왜'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나게 됐는지, '어떻게' 진실이 우세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담백하게 드러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 PD는 "줄기세포가 있느냐, 없느냐는 결과보다 이 사건이 극복되어 가는 과정에 진실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이 "21세기 대한민국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투쟁의 기록"으로 읽히기를 희망했다.
"황우석 사태는 2005년 한국사회 단면을 보여주는 한 시대의 시상화석이다. 2005년에 벌어진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10년 동안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과제다. "
"아직도 말하지 못한 것들……상처가 아물면 얘기할 수 있을 것"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한 PD는 아직도 말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고 했다. 사건 당시 MBC 조직 각 층위로 가해진 외압이 그 중 하나다. 책에는 한 사례가 소개되는데 자신을 '청와대 대리인 자격은 아니다'라고 전제한 참여정부 전직 장관의 협박성 최후통첩이 그것이다.
한 PD는 책에서 "진보입네 개혁입네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을 때, 그가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황우석 관련 방송을 전후로 한 PD뿐만 아니라 최승호 팀장에게, 최진용 시사교양국장에게, 최문순 사장에게 가해졌을 외압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한 PD는 "각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모두 따로 있을 것"이라며 "나의 경우 이 책에서도 말하지 못한 내용은 세월이 지나 상처가 아물면 그때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정은경 기자 ( pensidre@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