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집 제1권 / 시(詩)
눈을 읊다〔詠雪〕
계축년(1553) 섣달 그믐날 밤에 / 歲在癸丑十二月晦夜
찬 구름 깊게 끼고 바람이 몰아치네 / 寒雲深閉風觱發
손 만하게 큰 흰 눈이 펄펄 날려서 / 白雪飄飄大如手
온 마을과 골짜기가 은세계가 되었네 / 千村萬壑瓊瑤滑
새벽 창 반쯤 여니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광경 / 曉窓半啓忽滿眼
강 하늘에 어지러이 떨어지며 오래 그치지 않네 / 亂落江天久不絶
살염과 비서로 비유했으니 얼마나 교묘한가 / 撒鹽飛絮比何巧
학이 춤추는지 옥을 부수는지 구별을 못하겠네 / 舞鶴碎玉眞未別
잠깐 사이 땅에 쌓여 한 자 쯤이나 되니 / 俄頃積地深尺許
새 못 날고 인적 끊어져 남북을 알 수 없네 / 鳥絶蹤滅迷南北
은색 기와에 분칠한 대궐이 밝게 서로 비추고 / 銀瓦粉闕皛相映
구슬 같은 숲과 나무가 곳곳마다 늘어섰네 / 珠林瑤樹隨處列
나귀 타고 어깨를 들썩인 자 누구인가 / 騎驢聳肩者誰子
금낭에 시를 넣으며 쉬지 않고 읊었네 / 錦囊收詩吟不歇
남관을 가로막아 길가는 말 나아가지 못하고 / 征馬不前擁藍關
남월에 비추니 개가 짓는 것이 당연하구나 / 吠犬應驚照南越
백성들은 뼈 시린 것도 괴롭게 여기지 않으니 / 吾民莫苦冷澈骨
삼백이 풍년 조짐이라는 옛말이 있기 때문이네 / 三白豐祥古有說
오늘 아침 많은 광경 뿐이겠는가 / 今朝豈但光景賸
올봄 별다른 상서를 살펴야 하리 / 來春奇瑞當可察
송구영신하는 흥취 또한 흡족하고 / 送舊迎新興又足
봄바람 부는 계절이 온 것을 문득 깨닫네 / 斗覺時序東風節
일찍 핀 정원의 매화를 마주해 앉아 / 坐對園梅趁早開
새해 술 석 잔을 혼자서 마시네 / 歲酒三杯聊自歠
가을 밭에 대풍 들기를 반드시 기약하고 / 秋田大熟必有期
조정에서 성상 보필 잘하도록 하례하네 / 仰賀朝端輔聖哲
서생 또한 촌에 사는 장부이기에 / 書生亦是田野夫
홀로 찬 처마에 기대어 노래 한 곡 부르네 / 獨倚寒簷歌一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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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1] 살염(撒鹽)과 비서(飛絮)로 비유했으니 : 눈〔雪〕이 날리는 모습을 소금을 뿌린 것과 버들개지가 바람에 날리는 것에 비유한 표현이다.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눈 내리는 광경을 비유해 보라고 했을 때, 조카 사랑(謝朗)이 “공중에다 소금을 흩뿌려 놓은 것 같다.”라고 하자, 질녀인 사도온(謝道韞)이 “그것보다는 버들개지가 바람에 날린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未若柳絮因風起〕”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世說新語 言語》
[주-D002] 새 …… 끊어져 :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오언 절구 〈강설(江雪)〉에 “일천 산에는 새들의 날갯짓 끊어지고, 일만 길에는 사람의 발자취 사라졌네.〔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라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주-D003] 나귀 …… 자 : 당(唐)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을 가리키는 말이다. 맹호연이 눈 오는 날 파교(灞橋)에서 노새를 타고 어깨를 들썩이며 시를 읊었던 고사가 있다.
[주-D004] 금낭(錦囊) : 시 원고를 넣는 주머니를 말한다. 당(唐)나라 때의 시인(詩人) 이하(李賀)가 명승지를 구경하면서 시를 짓는 족족 써서 해노(奚奴)를 시켜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
[주-D005] 남관(藍關)을 …… 못하고 : 남관은 남전관(藍田關)의 준말이다.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조주(潮州)로 좌천되어 내려가다가 남관에 이르러서 지은 〈좌천되어 남관에 이르러서 질손 상에게 보여주다〔左遷至藍關示姪孫湘〕〉에서 “구름이 진령을 가로질렀는데 집은 어디인가? 눈이 남관을 가로막아 말이 나아가지 못하네.〔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주-D006] 남월(南越)에 …… 당연하구나 : 중국 남월 지방은 더운 곳이어서 개가 눈〔雪〕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눈이 오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여겨 짖는다고 한다. 유종원(柳宗元)의 〈위중립이 사도를 논한 편지에 답하다〔答韋中立論師道書〕〉에서 “내가 남쪽에 갔을 때 마침 큰 눈이 내렸는데, 남월 지방 몇 주의 개들이 모두 놀라 짖어 대면서 미친 듯이 날뛰기를 며칠 동안이나 하였다.”라고 하였다.
[주-D007] 삼백(三白) : 《본초(本草)》 납설(臘雪)에 “동지(冬至) 지난 뒤 세 번째 술일(戌日)이 납(臘)인데 납 이전에 세 차례 눈이 오면 보리농사에 아주 좋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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