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역사의기록

하여가와 단심가

淸潭 2018. 11. 10. 12:44

하여가와 단심가

하여가와 단심가

*이성계는 정몽주를 없애지 않고는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이성계의 생각을 읽은 사람이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었어요.

*이방원은 정몽주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정몽주를 설득하여 이성계 편으로 끌어오기 위한 속셈이었지요. 몇 차례 술잔이 오간 뒤, 이방원은 말했어요. “제가 시를 한 수 읊을 테니 답가를 해 주시겠습니까?”

*정몽주는 흔쾌히 말했지요. “그러지요.”


*이방원은 낮은 목소리로 시를 읊었어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이 시를 ‘하여가’라고 해요. 다 썩어 가는 고려를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력과 힘을 합쳐 칡넝쿨처럼 얽혀 살아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그러자 정몽주는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시를 읊어 답을 했지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죽어서도 고려 임금을 섬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 시는 ‘단심가’라고 불리지요.


*이방원은 정몽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부하 조영규를 불렀어요. “오늘 밤 정몽주를 없애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조영규는 쇠뭉치를 들고 선죽교 밑에 숨어 정몽주가 지나가기를 기다렸어요. 한참을 기다리자 드디어 정몽주가 나타났어요. 정몽주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주막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 오는 길이었어요.

*“휴우, 이방원이 드디어 나를 없앨 모양이니 그만 가봐야겠구나!”

*정몽주는 기울어 가는 고려와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며 긴 한숨을 내쉬고는 시종에게 말을 가져오게 했어요. 정몽주는 말에 거꾸로 올라탔어요.

*“대감 마님, 말을 거꾸로 타셨습니다.” 시종은 정몽주가 술에 취해 실수를 한 줄 알고 웃으며 말했어요.

*“알고 있다. 맑은 정신으로 죽을 수 없어 술을 마셨고, 흉기가 얼굴을 덮칠 것이 끔찍해 말을 거꾸로 탔느니라.”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정몽주는 결국 조영규가 휘두른 쇠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선죽교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어요.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가 죽은 후 이성계는 정도전을 비롯하여 귀양 갔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였어요. 이렇게 해서 고려의 권력을 잡게 된 세력은 공양왕을 물러나게 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받들었어요.

*이성계는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정하여 새로운 나라를 열었어요. 이로써 고려 왕조는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운 지 474년 만에 공양왕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어요.

선죽교의 원래 이름‘선지교’예요. 정몽주가 죽던 날 밤 다리 옆에 대나무가 났기 때문에 선죽교로 바뀌었다고 해요.

*단호하다 : 딱 끊은 듯이 매우 엄격하다

잠깐 퀴즈

이방원이 정몽주를 설득하기 위해 읊은 시조의 제목은 무엇인가요?

정답 : 하여가

정몽주가 이방원의 시에 대한 답가로 지어 부른 시는 무엇인가요?

정답 : 단심가

되짚어보기

조선의 건국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세력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들은 정몽주와 같은 반대 세력을 죽이거나 몰아 낸 뒤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웠습니다.

ⓒ (주)천재교육 | BY-NC-ND

이성계는 어떤 세력과 손을 잡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나요?

신진 사대부

조선 건국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여 정몽주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방원

정몽주가 이성계를 따랐다면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높은 벼슬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정몽주는 죽음을 각오하고 고려를 지키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지요. 내가 정몽주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정몽주 역시 이성계처럼 고려를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어요. 다만 왕을 몰아 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굳이 고려를 멸망시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또한 유학자인 정몽주에게 충효 사상은 가장 중요한 신념이었어요. 나라와 임금에게 충성하 는 것이 학자의 본분이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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