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그대로 내 모습의 나툼입니다.
삶의 어떤 경계가 닥쳐왔을 때 그것이 좋은 경계이든, 싫은 경계이든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나툼인 것입니다.
내가 있으니 경계가 있고, 내가 있으니 좋고 싫은 것이 있지 내가 본래 공하였음을 안다면 역경이든 순경이든 다 꿈 속의 허상임을 알 것입니다.
내가 없어져야 할 것인데 나를 붙잡고 나를 실체화 하려 하고 나를 좀 더 가꾸고 높이고 확장하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온갖 경계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내가 ‘나’라고 관념지어 놓은 그것이 그대로 경계로 나투는 것입니다. 그러니 경계와 나는 둘이 아니며, 온 우주 법계와 나 또한 둘이 아닌 것입니다.
본래 ‘나’도 없고 내 앞에 펼쳐지는 온갖 ‘경계’ 또한 없는 것을 한생각 일으켜 나도 만들어 내고 경계도 만들어 내고 그래 놓고는 경계에 휘둘려 괴롭다고 죽겠다고 야단입니다.
삶 속에서 어떤 두려운 경계가 온다고 하더라도 혹은 수행 중에 어떤 마장이 생길지라도 하나도 놀랄 것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고, 좋아할 것도 없으며, 버릴 것도 없고 잡을 것도 없는 것입니다.
결코 마음에 작은 미동도 일으킬 것이 없습니다. 다만 나의 다른 모습일 뿐임을 온전히 믿고 맡길 수 있으면 됩니다.
경계 앞에서 여여해 지세요. 여유를 가지고 당당해 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를 헤치지 못하듯 경계도 나를 헤칠 수 없고, 마장도 나를 헤칠 수 없습니다. 경계도 마장도 그대로 나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경계가 오더라도 다만 비춰볼 뿐 좋고 싫은 분별을 짓지 않으면 통연히 깨달아 명백해 질 것입니다.
살다보면 힘겨운 일도 생기고, 즐거운 일도 생기고, 좋은 경계 싫은 경계 끊임없이 나타나지만 경계 따라 내 마음까지 휘둘릴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환상이며 그것이 다 나의 다른 모습이며 그것이 다 부처님의 모습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경계도 환상이고, 나도 환상이고 부처도 환상일 뿐입니다. 부처라는 실체를 찾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부처 또한 환상임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아(無我)를 보면 진아(眞我)를 본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 없음을 깨달아야 참나를 볼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없어져야 그 자리에 본래부처가 빛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계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거침 없이 삶을 휘적휘적 내딛으시기 바랍니다.
- 길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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