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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밤나무다” 하고 소리를 쳤다

淸潭 2016. 11. 7. 14:37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8 : 강원도

율곡의 태몽을 안은 마을

 

봉평시 진입로 국도변 평촌리 동편 산기슭에 위치한 봉산서재에 율곡 이이의 출생에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는 아내 신사임당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 그가 수운판관이라는 벼슬살이를 하던 조선 중종 때의 일이다.

사임당 신씨와 결혼한 후 벼슬을 하기 위해 처가인 강릉에서 과거를 보러 서울을 오르내리게 되었는데, 오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신사임당은 과거 길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 거처를 정하고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다.

그 후 이원수가 인천에서 수운판관을 지내던 무렵에도 신사임당을 비롯해 그의 식구들은 산수가 아름다운 봉평의 판관대에 머물고 있었다.

 

오랜만에 휴가를 얻은 이원수가 가족이 사는 봉평으로 오던 중이었다. 그는 평창군 대화면의 한 주막에서 여장을 풀게 되었는데, 주막 여주인은 전날 밤 용이 가슴에 가득 안겨오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하늘이 점지한 뛰어난 인물을 낳을 예사롭지 않은 꿈임을 짐작한 주모는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이원수가 주막에 들었는데, 마침 그날 손님은 이원수뿐이었다. 주모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이원수와 하룻밤을 지내려고 했으나 그가 완강하게 거절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 무렵 친정 강릉에 가 있던 신사임당도 똑같이 용이 품안에 안기는 꿈을 꾸고는 언니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140리 길을 걸어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주모의 청을 거절한 이원수가 그날 밤 집에 도착하여 부부간에 회포를 풀었는데, 이날 바로 신사임당이 율곡을 잉태한 것이다.

 

며칠 동안 신사임당과 지낸 이원수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막의 여주인이 생각나서 찾아가

이제 주모의 청을 들어주겠다.”라고 하자 주모가 이를 거절하며 말하기를

손님을 그날 밤 모시고자 했던 것은 신이 점지한 영특한 아들을 얻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이번 길에 손님은 귀한 아들을 얻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후환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이원수가

그 화를 막을 방도가 있는가?” 하고 묻자 주모는 다음과 같은 방도를 알려주었다. “밤나무 1000그루를 심으면 괜찮을 것입니다.”

 

이원수는 주모가 시키는 대로 밤나무 1000그루를 심었고 그 후 몇 해가 흘렀다. 어느 날 험상궂게 생긴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면서 아이를 보자고 하였다. 이원수는 주모의 예언이 생각나서 거절하였다. 그러자 중은 밤나무 1000그루를 시주하면 아이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원수는 쾌히 승낙하고 뒷산에 심어놓은 밤나무를 모두 시주하였다.

그러나 그중 썩은 밤나무가 있어 한 그루가 모자랐다. 깜짝 놀란 이원수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데, 숲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나도 밤나무다하고 소리를 쳤다. 그 소리를 들은 스님은 호랑이로 변해서 도망쳤다.

그때부터 나도밤나무라는 재미있는 나무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현재는 서재 경내의 재실에 율곡 이이와 화서(華西) 이항로의 존영을 모시고 이 고장의 유림과 주민들이 가을에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택리지에는 북쪽은 회양에서, 남쪽은 정선에 이르기까지 모두 험한 산과 깊은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고, 물은 모두 서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간다. 화전을 많이 경작하고 논은 매우 적다. 기후가 차고 땅은 메마르며 백성은 어리석다. 비록 시내와 산의 기이한 경치가 있지만, 한때 난리를 피하기에는 좋은 곳이나 오래 대를 이어가며 살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오가는 길마저 험하고 산과 산이 맞부딪칠 것 같은 산골짜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삶이 고단했을까? 강희맹의 시만 읽어도 그 고충을 알 것만 같다.

 

 

어제 일찍이 큰 고개를 넘어왔더니

회오리 바람에 의지하여 만 리를 양각(羊角, 회오리바람) 속에 돌아서 온 것 같구나

매단 것 같은 벼랑에 끊어진 돌계단은 돌기가 겁이 나고

고목(古木)과 창등(倉藤)은 지척이 아득하네

다리 밑에 이젠 이미 평탄한 길을 찾을 것을 알건만

꿈속에서는 아직도 파란 절벽을 기어오르는 꿈을 꾼다

백 가지 시름을 노성의 봄이 흩어버리니

술 마시며 높은 소리로 담소하여 즐거워하네

 

평창군 봉평면 덕거리 북쪽에 있는 보랫골은 진한(辰韓)의 태기왕이 신라의 침입을 받아 태기산으로 갈 때 보물을 가지고 왔다는 곳이고, 덕거리 서쪽에 있는 이방동은 강릉 지역 이방이 나라에 죄를 짓고 도망하여 살았던 곳이라 한다. 봉평면 면온리는 태기왕이 이곳에서 신라군에게 멸망했으므로 멸온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에 면온으로 바뀌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율곡의 태몽을 안은 마을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8 : 강원도, 2012. 10. 5., 다음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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