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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른

淸潭 2016. 11. 8. 11:28

 

 

                      아이 어른

 

옛날 어느 시골 농촌에서의 일이다.

삼대가 한집안에 사는데, 네 땅도 좀 있고, 남의 논도 좀 부치고 하건만 언제나 살림이 옹색하여 어른들 이마에 내천(川)자 주름살이 가실 날 없이 노상 찡그리고 산다.

어느 날 밤 역시 살림살이 어려운 걱정을 하고 있으려니까, 열 살쯤 먹어 보이는 손자 놈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

우리 집엔 어른이 없어서 이 모양이여! 한다. 옆에서 듣다 못한 아버지가 나무란다.

이놈아! 할아버지가 계신데 그 따위 소리를 해?

할아버진 어른 자격 없어!

듣다 못한 할아버지가 야! 이놈아 아버지가 있는데도 그러냐?

아버지도 어른 자격 없어요!

그럼 누가 어른 자격이 잇단 말이냐?

나나 할 만할까요, 다른 사람은 못할 거예요 한다,

그럼 네가 어른 노릇 해 보거라!

흥! 그렇게 밥알을 물고 애새끼 부르듯 해서야 어른 노릇을 할 수 있나요? 제대로 시켜야지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시키는 거냐?

어른이란 말발이 서야 하는 건데, 온 집안 식구며 동네가 다 그렇게 알아야 할 거니까, 사당 고유(가정이나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 사당이나 신명(神明)에게 고하는 일)를 하고 제대로 절차를 밟으세요,

그리하여 할아버지가 책력을 보고 길일을 가리어 사당을 열고 고유(告由)를 한다.

모년(某年) 모월(某月) 아무삭(朔) 모일(某日) 간지(干支) 효(孝)현손(玄孫) 모관(某官) 아무개는 삼가, 사대 영전에 고(告)하나이다……. 요컨대 ,가도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러한 형편으로 지내다가 조상 제사마저 궐(厥)할 지경이라 이제부터 손자 아무개로 어른을 대행시키게 하였사오니, 조상 영혼들께서는 굽어 살 피사 음으로나마 많이 도와 주십시오!, 운운(云云)……. 재배하고 물러나니, 손자가 새 옷을 갈아입고 나와 분향하고는,

어린 제가 집안 어른으로 의 중책을 맡았아옴은, 이 몸의 무능함을 돌보지 않고 전력을 투구하여 오직 이 집안을 중흥시켜 보려는 한갓 단성(丹誠)<참된 정성>에서 나온 것이오니, 조상영령은 가운(家運)의 장래를 생각하여,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십시오!

고유(告由)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온 가족 수십 명을 서열 따라 늘어서게 하고, 가훈(家訓)을 선언 하니 왈가위지(曰可謂之)<말하자면>혁명공약이요 약법삼장(約法三章) < 한고조가 진시황의 악법을 폐하고 새로 만든 법 三章 >을 말함 이다.

그러면서

첫째 , 조석은 때에 먹는다. 만약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은 그 끼니를 굶는다.

둘째 , 언제고 밖에 나갔다 집에 올 때는 빈손으로 대문 문지방을 넘어서는 안 된다.

셋째 , 날마다 잘 때는 이 집안 흥륭(興隆)을 위하여 자신이 얼마나 기여하였나를 스스로 반성하라.

이것뿐이니 모두 잘 준수해 주기 바란다는 간곡한 부탁으로 식을 마쳤다.

뭐 대단한 것이나 있나 했더니 기껏 요것뿐이라 싱거운 것 같았으나 막상 해보니 수월 하지 않다.

타성이란 무서운 거라 ,처음 얼마동안은 식구 가운데 몇몇 사람이 가끔 끼니를 굶었다.

그러나 그것도 습관이 되니 여인네들이 식사를 차려놓으면 온 가족이 일시에 화닥닥 먹어치우고 하여, 전 같으면 하루 종일 부엌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여자들이 시간아 남아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마을 갔다 돌아 오다 가도 “하마터면 잊을 뻔 했구나…….”하고는, 그 근처에서 돌멩이든 하다못해 지푸라기 하나라도 집어 들고 집엘 들어섰다.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폴락거리고 드나들며 노는 개구쟁이들도 신바람이 나서 아무거나 마구 주어 들였다.

그러는 중에 이왕이면 이렇게 아무거나 집어들일게 아니라 ,소용이 될 것을 ……. 하는 식으로 차츰 그야말로 목적의식이 분명하여 갔다.

그래서 두엄자리에는 거름 더미가 생기고, “아스시라고” 해도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개똥을 주어들이고,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잔 돌멩이를 주어다 비에 패인데를 메꾸고 , 어른들은 큰 돌멩이를 주어 들여 산더미 같아지니 그해 가을에는 울타리를 뜯고 돌 각담을 쌓았다. 이렇게 하여 온 집안이 씩씩하고 청신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약속한 일 년이 찼다. 가족들은 그 동안의 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만장일치로 어른의 중임(重任)을 요청하게 되었다. 꼬마어른도 과히 사양치 않고 이를 받아 들였다.

그러나 새로운 시책은 따로 없었다. 먼젓번 삼개 항을 더욱 힘써 실천하자는 그것뿐이다.

다시 또 그 해가 지나고 보니, 이젠 제법 집안 살림의 틀이 잡혔다.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며 하는 말이, 할아버진 늙어 셨고, 이제 아버지께서 어른 노릇 하세요 , 그동안 보아서 많이 배우셨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