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舍廊房

명당 2

淸潭 2014. 11. 10. 18:31

두임금이 날자리; [二代天子之地]

 

덕산 가야산 아래에大 명당이 두개 있는데 첫째는 萬代 영화의 자리요?둘째는 2代에 걸처 皇帝가 날자리인대 대감께 권고하는것은 첫번째 입니다".

鄭萬人 도사의 충정어린 제안에 흥선군은 거절하면서"지금 우리가 찾는것은 국권을 마음데로 농락하는 외척의 발호를 물리치고 왕정체제로 돌아가게 하는것이 유일한 목표가 아닙니까?

萬代에 영화를 누리는것도 좋지만은 반세기를 넘어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삼감마마가 허수아비가 된지 오래되지 않습니까?"

피를 토할듯한 흥선군의 설득이 계속되었으나,정도사의 생각은 그와는 멀었으니 "이나라는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갈등으로 멀잖아 망국의 슬픔을 겪게 될탠데,.......정도사는 國運을 예언하면서 임금이 날자리보다 만대 榮華자리를 권고하는것이다.

그러나 흥선군의 신념은 확고하였고,"한달을 하더라도 반드시 왕이 날자리를 점지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論爭속에 십수년을 찾든 명당자리를 찾아가는데 어찌 가슴이 안뛰겠는가?"

"저기 보이는 저 산봉우리가 명당이 있다는 가야산인데 골짜기 안쪽에 있습니다".정만인의 說明을 들으면서 골짜기 입구의 수구를 살펴본즉 양쪽에 솟아있는 두 봉우리가 자웅으로 되어있어 逆水砂를 이루어 수구를 거두어 주고 있잖은가?

그는 十年을 명당을 찾으면서 산서를 탐독하여 풍수에 관한 상식이 풍부했다.

골짜기를 올라가는 계곡에 청룡과 백호의 머리가 팔장을 끼듯 相接하고 있지를 않은가?산세가 이렇게 생겼으면 필히 대명당이 응결되 있다는 학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계속더올라가니 드디어 임금이 병풍을 두르고 정좌하고 있는 산세가 시선을 끌었다.

"저 자리가 우리가 찾는 자리이지요?기세가 참 대단합니다."

그러나 명당자리 앞쪽에 절이 있으니 이일을 어쩌지요?"이러한 흥선군의 질문에 정도사는 고개만 끄덕일뿐이다.

발길은 더욱 빨라져 중앙에 있는 나즈막한 봉우리인데,이곳에서 보니 主龍 양편에 天乙,太乙등의 貴峰이 솟고,三吉.六秀.四神.八將이 저마다 정기를 뿜어 혈처를 비추고 있었다."

흥선군 대감!!이자리가 양대에 걸처 임금이 날자리입니다.그러나 穴處 앞에 옛절이 있으니,저 사찰을 없애지 않고는 이 명당이 발복이 되질않습니다."

이렇게 정도사는 위쪽에 있는 만대 영화자리에 묘를 쓰는것이 상책이라고 주장하나 끝내 고집을 굽히지 않고 여기에 묘를 써서 그발복으로 왕정을 회복하는것이 유일한 소망이였다.

이 앞에 고찰이 방해가 된다면 절을 없애 버리더라도 아버님의 체백을 모실것이오니 도사님께서 저를 도와 주십시요?

흥선군의 결심은 비장하였고 신라때 창건한 가야사인데 대웅전 바로뒤에 대 명당이 응결되어 영검한 사찰로 소문이 나있었다.드디어 절을 없애기로 결심한 흥선군은 노스님 주지와 친교를 맺을 요량으로 접근하는데 거사를위한 1단계 작업이였다.

사교술 또한 뛰어나 노주지스님과 의형제맺기에 이르렀고,맏아들을 대리고 와 큰아버님께  큰절을 시키니 수도에만 정진하든 노스님은 기분이 좋아 벽장속에 음식들을 새로 맞은 조카에게 다넘겨주니 흥선군의 거사가 진척되고 있었다.

목적은 십여명이 있는 절에 불을 질러야 하는데 어떻게 절을 비우게 한담?......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생각을 하든끝에 가야사 옆 수덕사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하는 [齋]유치하도록 갖은 수단을 강구했다.

王家에서 올리는 재이고 경비가 삼천양이나 든다니 음식들이 얼마나 풍족하겠는가?드디어 노주지 스님은 모두 동원하여 수덕사로 향하게 되니,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것이다.

가야사에 방화를 위한 음모가 아니였든가?서울 중형 [最應]과 다른 형제들도 오도록 했는데,흥선군 일에는 원래 반대하든 이 최응 은 절을 불태우고 선친의 묘를 모신다는 발상자체를 용납하지 않았다.

"법당을 창건하기위해 재물을 시주해도 묘를 쓰려고 불당에 방화를 한다는 소리는 들은즉이 없내."법당안에서 침만 밷어도 신장님의 벌을 받는다는데 대웅전에 방화를 하고 살아남기를 바라는가?"

그러나 흥선군의 集念은 흔들림이 없었고 비장하기만 했다.나 혼자 잘되려고 도모하는것이 이니라 한 나라의 운명을 바로 잡으려는 기도가 이일이라고 역설하였다.

절이 텅빈것을 확인하자 형님과 法堂안으로 들어갔는데,그의 손에는 솜방망이에 기름이 묻어있었다.   

가져온 곳 : 
카페 >한문방(漢文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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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碧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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