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舍廊房

명당 1

淸潭 2014. 11. 10. 18:28

李 昰應의 集念

 

흥선 대원군의 이름이다.李 昰應 이라는 본명보다는 흥선 대원군을 이름처름 아는데 조선 왕조에는 네분의 대원군이 있다.

선조의 아버지 덕흥 대원군 ,인조의 아버지 정원 대원군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 이중 유일하게 흥선 대원군만이 살아서 집권했는분인데,

부지기수의 역사적 인물이 많지만 이 하응 만큼 집념이 강한 인물도 유일무이하리라?

그는 아버지[南延君]묘를 명당에 모시기위해 大寺刹을 불을 질렀고 또 살인을 서슴치 않았다.

안동 김씨 60년의 세도에 맞대응한 장본인으로서 결국 2代天子之地에 매장한 발복으로 2대 황제가 탄생되었고,

안동 김씨의 세도에 몸부림은 얼마나 처절했든가?

영특하고 쓸만한 왕손은 어떤구실 명분을 세워 도륙을 감행하든때이니,

 살아남기 위한 그의 파락호 생활과 더불어 그의 본체를 속이는 위장처세술은 가히 혀를 내두르고도 남을것이고 손자병법 인간처세술 [難得糊塗]를 실행한 귀재가 아니엿든가?

여기 파란만장한 그의 일대기를 기술하여 조선조 후기의 역사적 드라마를 짚어 보는것도 많은 역사지식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대원군이란 왕이 後嗣없이 죽어 종친 가운데 왕위를 계승되는경우 새로운 왕의 生父를 말한다.

李 昰應 은 고종의 아버지로서 흥선 대원군이였다.

이름은 이 하응,자는 時伯,호는 石坡   대원위 대감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영조의 현손 남연군 구[球]이며,아들이 조선 26대왕 고종이다.

안동 김씨의 세도하에서 그들의 주목을피하기 위해 시정의 무뢰한들과 난행을 일삼았으며,

철종의 유고시에 대비 조대비와 가까이 지냈고 철종이 죽자 둘째아들[命福;고종의 아명]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흥선대원군으로 진봉하여,

 조대비의 섭정의 대권을 위임받아 庶政을 총괄하게되었다.

그는 서화에 능하여 난초의 그림은 불세출의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풍수관은 인간욕심의 한계를 넘어선 不可思矣 그 자체였다.

자기 아버지 묘 명당 이장을 위하여 절에 불을 질렀고 증거인멸을 위해 살인까지 감행했으니 말이다.또한 그의 위장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도가문의 잔치집에서 걸식도 마다하지않았고,식은 전 조각에 침을뱉아 내던지면 도포자락에 닦아 앙천대소하며 개걸스럽게먹었고,

 시정잡배 무뢰한들과 어울려 그의 본체를 귀신같이 위장술을 이용했든것이다.

이 모든것은 안동 김씨의 세도를 탈환하기위한 몸부림이였는데,

[鄭萬人]이라는 풍수사를 십 수년만에 공을들여 자미원국이라는 천하제일명당에 이장하여,

2대천자지지의 명당의 발복으로 2대에 걸처 皇帝를 탄생시켜 안동 김씨 세도의 종지부를 찍는 興味盡盡한 역사적 주인공의 실화다.

경기도 연천군 남송정에 있든 아버지 [남연군]묘를 당시 名風水 정만인의 2대왕지지 란 명당판정을 받고,

 遷葬한지 7년만에 후일 고종이되는 둘째아들 命福을 낳았고 손자 순종까지 2대에 걸처 황제를 탄생시켰으니 제대로 봤는 風水가아닌가? 本 敍述文은 이 하응의 정치歷程은 배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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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碧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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