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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일

淸潭 2014. 7. 25. 09:31

☞ 세월호 참사 100일


▲... ①20명 모인 곳 대피안내 의무화하자 노래방 구석에 대피도 1장… 불나면 우왕좌왕 불보듯 ②안전안내, 기계 아닌 사람이 하자 녹음된 음성, 지루함 유발… 육성은 각성효과 가져와 ③안전 관련 종사자 제복 입게하자 승객 생명 지킨다는 책무… 일상적으로 느낄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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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일보


☞ 아직 바닷속에 10명이…가족들 ‘100년 같은 100일’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침몰사고 100일을 이틀 앞둔 22일 저녁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0명의 이름이 적힌 노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인 24일 저녁 7시 서울지역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광장에서는 추모 문화제가 열린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 [세월호 참사 100일 팽목항 르포]

아침마다 밥 차리는 지현이 엄마 “딸이 배고파 못 나오나…”

급성폐렴 온 현철이 아빠는 “쓰러지더라도 아이 건지고…”

단원고 교사 남편 기다리는 아내, 링거로 버텨 팔에 멍투성이

부모는 먼저 아이를 찾아 체육관을 떠난 이들의 자리로 매트를 옮기고, 다시 옮겼다. 그 자리가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엄마가 바지선을 타면 아이를 찾는다는 말에도 귀가 솔깃했다. 링거를 맞던 몸으로 아빠 대신 출렁이는 바지선에 올랐다. 그래도 착한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상한 남편도, 어머니도 돌아오지 않았다.

24일, 세월호 침몰 사고 100일을 맞았다. 진도 팽목항에는 바다를 향해 ‘이제는 집에 가자’며 달래는 목소리만 가득하다. 남은 실종자 10명, 그 가족들의 애끊는 이야기다.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황지현(17)양의 어머니 신명섭(49)씨는 매일 아침 7시30분이면 지현이에게 아침밥을 주기 위해 어김없이 팽목항으로 간다. 벌써 열흘이 넘었다. “김하고 계란프라이를 했어요. 딸이 안 나오니까 별짓 다 하는 거죠. 배가 고파서 못 나오는가 해서요.” 엄마가 지어준 아침밥 먹고 기운 차린 딸이 차가운 바닷물과 뻘을 헤치고 어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현이는 결혼 7년 만에 낳은 외둥이다. 지현이는 신씨 부부에게 17년의 행복을 주고 떠났다.

허흥환(50)씨에게 딸 허다윤(17)양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이었던 딸”이었다. “성격이 내성적이었어요. 제주도 수학여행도 안 가려고 했죠. 안 가겠다고 버티는 애한테 가서 친구들도 좀더 사귀고 스트레스도 풀고 오라고 했어요. 마지못해 간 건데….” 입만 열면 감동이었던 딸은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

단원고 교사 양승진(57)씨의 아내 유백형(53)씨는 지난 22일 숟가락을 두 번 정도 들고는 아침식사를 마쳤다. “먹을 수가 없어요.” 100일 동안 안산 집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진도체육관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유씨는 남편의 캐리커처 액자를 늘 머리맡에 두고 잔다. 진도 주민이자 화가인 김영주씨가 그려준 그림이다. “남편이 뱃멀미를 많이 하는데, 그래도 배로는 제주도에 처음 간다며 아이들처럼 좋아했어요. 떠나기 전날 옷이랑 세면도구며 다 챙겨 줬는데. 수업 끝나고 인천에 배 타러 간다고 오후 4시30분에 전화 온 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요.”

기다리는 가족들은 마음도 몸도 많이 상했다. 유씨는 조금만 걸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지럽다. 평생 남의 일만 같았던 우울증도 생겼다고 했다. 날이 더워지며 탈진한 유씨는 링거를 10여차례 맞았다. “하도 많이 맞아서 혈관 자리를 찾을 수가 없대요. 팔뚝 전체가 멍 천지네요.”

동생 권재근(52)씨와 조카 권혁규(6)군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권오복(59)씨도 불면증을 호소한다. “새벽 1시에도 잠을 못 자요. 그러고는 새벽 5시에 눈을 떠요. 온몸이 축 처지고 늘 피곤하죠.” 그나마 베트남에서 온 제수씨 장례는 최근에 치렀다. 아직 찾지 못한 동생과 조카 혁규도 걱정이지만 세월호를 탔던 일가족 네 식구 중 혼자만 구조된 조카 지연(5)이 걱정이 크다.

단원고 학생 남현철(18)군의 아버지 남경원(45)씨는 급성폐렴으로 8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체육관으로 돌아왔지만 통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허흥환씨는 “여기에 몸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으론 다들 병들어 있다고 했다. “내가 쓰러지면 아이를 못 데리고 가니까 버티는 거죠. 나올 때까지 버텨야죠. 쓰러지더라도 아이를 건지고 나서 쓰러져야죠.” 실종자 가족들이 주로 찾는 목포한국병원의 류재광 원장은 “날도 더워지고 장기간 스트레스에 지친 가족들이 최근 부쩍 많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침몰 94일째이던 지난 18일, 세월호 조리원 이아무개(56)씨의 주검이 발견됐다. 조리실에서 일하다 부상당했는데, 탈출하는 승무원들이 그냥 버려두고 나왔다던 그다. 단원고 교사 고창석(40)씨의 형수는 “주검을 찾은 가족들을 보며 ‘참 좋겠다.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검을 찾았다고 좋아하는 게, 그걸 부러워하는 이 현실이 말이 되느냐. 곤장 맞을 생각인데, 그걸 부러워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가 아직 도련님에게 닥친 일을 모르신다. ‘애한테서 왜 연락이 없냐’며 계속 찾으시는데 충격을 받으실까 말도 못 꺼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면 수색 작업도 줄어들까 걱정이다. 도련님을 찾을 기회를 놓칠까 두렵다”고 했다.

남은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도 ‘내가 마지막 차례가 되는 건 아닐까’, 그걸 가장 두려워한다고 했다. 권오복씨는 “여기 있는 것도 힘들지만, 실종자 주검이 나올 때가 더 힘들다. 남은 실종자가 2명으로 줄고, 결국 내가 마지막까지 남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했다. “100일이라는 숫자는 연애할 때, 아이가 태어난 뒤에, 기분 좋은 일에나 세는 건 줄 알았다”는 실종자 가족들은 그렇게 100일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100일이다, 이제는 그만 집에 가자’, 이들은 오늘도 마음속으로 이 말을 되뇌고 있다.

진도/김규남 이재욱 기자 3D3D3strings@hani.co.kr">3D3strings@hani.co.kr">3D3strings@hani.co.kr">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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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 겁먹은 아이들, 그들 눈으로 찍은 '최후 영상'


▲... [앵커] 복원된 휴대폰에는 아이들이 찍은 세월호 내부의 마지막 순간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희 JTBC는 학부모 한 분 한 분의 동의를 얻어 일부 영상들을 오늘(24일) 공개합니다. 배가 침몰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큰 공포에 떨었을지, 이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다시 되돌아 보게 됩니다.

이 내용은 신혜원 기자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기자] 석양이 깔립니다. 인천항은 잔잔합니다. 아이들이 전날 촬영한 평온한 모습.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까지 수학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짜잔!] [안개 봐]

하지만 그로부터 14시간, 세월호는 지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배가 90도까지 기운 상태에서 찍힌 영상입니다.

오전 9시 53분, 4층 중앙 홀. 배가 뒤집어지면서 홀이 깊은 낭떠러지로 변했습니다.

[찍어야해. 이거.]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소파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습니다. 자칫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추락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

미끄러질까봐 모두 소방호스로 몸을 묶었고 양말까지 벗었습니다.

아이들 옆에는 거꾸로 매다 꽂힌 음료수 자판기가 언제 덮칠지 불안하게 서 있습니다. 바로 옆 복도에는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이 가까스로 계단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잔뜩 겁을 먹은 아이들.

[쟤네 봐. 그런데 여기 사람있는 거 모르면 어떡해.]

[호루라기 불어봐.]

어린아이도 1명 보입니다.

[아이야, 아이야, 꼭 잡아.]

이 때 일반인 한 사람이 위에서 소방호스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아래에서는 물이 차오르더니 갑자기 창문이 깨집니다.

[유리 밟지 말고.]

[유리 깨졌어?]

[유리 밟지 말래.]

한 승객이 잃어버린 아이를 애타게 찾습니다.

[아기 아기.]

[아기 여기요. 아기 여기있어요.]

학생들이 올라올 수 있도록 소방호스가 내려 보내집니다.

[단단하게 계속 당겨!]

영상은 여기서 끝이 났고, 이 아이는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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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TBC





☞ 희생 학생들의 휴대전화 70여 대 분석해보니..


▲... [앵커]

지금부터는 저희들이 준비한 내용을 보도해드립니다. 이 내용들은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저희 JTBC에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던 내용들입니다. 모두 3가지 내용인데요. 그 중의 첫 번째입니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바다에서 건져 낸 아이들의 휴대폰 70여 개를 석달에 걸쳐 복구했습니다. 먼 길을 떠난 아이의 마지막 기록이 담겨 있는 이 휴대폰 복원 기록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겠지요. 학부모님들은 저희 JTBC에 이 복원 내용 일체를 처음으로 공개해주셨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아이들이 마지막까지도 구조될 것이란 희망의 글들이 담겨 있어서 더 마음이 아프고, 또 무겁습니다.

박성훈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기자]

숨진 아이들의 호주머니에서, 함께 발견된 가방에서, 하늘로 떠난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소중하게 간직했을 휴대폰.

바다에서 건져 낸 희생 학생들의 휴대폰은 70대였습니다. 녹슬고 깨졌지만 이 휴대폰의 담겼을 기록들을 학부모들은 석달 동안 복원해왔습니다.

우리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배가 갑자기 한쪽으로 쏠린 직후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묻습니다.

[얘들아~ 움직이지 말고있어]

[다들 괜찮니?] [배 쏠렸다고]

[선생님 괜찮으세요?? 조끼 입으셨나요?]

당시만 해도 아이들은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칠 거대한 위험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농담 섞인 문자를 주고 받습니다.

[나 죽는거임? ㅋㅋ]

[어린나이에 빨리 죽게 생겼네] [나 죽으면 진심 장례식에서 울어줄꺼지?]

해경 헬리콥터가 등장하고 배 밖에 구조정이 도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들, 아이들은 두려운 마음에 친구와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고 계속해서 메시지를 남깁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는 걸 수도 있겠다] [수학여행 가고 있는데 배가 많이 기울었어요. 기도해주세요] [누나, 기도해줘 나 죽을 것 같애]

배가 70도까지 기울었을 때, 아이들은 바다에 빠져야 할지 고민하기도 하고,

[일단 바다에 빠져야대 진짜 장난안치고. 나중에 저나할게 바다에 빠져야대]

직접 인터넷에서 사고를 검색해보기도 합니다.

[아빠 네이버, 진도부근 배침몰중. 뉴스ㄱㄱ]

[인터넷 방문기록, 진도 해상서 250.… : 네이버 뉴스]

[진짜로 괜찮은거맞아? 지금 뉴스떴구만 무슨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배 안에서 바깥의 보도와 대응 상황까지 보고 있던 아이들, 자신들을 책임져야 할 선장이 탈출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구조될 것이라고만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걱정하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모습까지,

[엄마야 구조되는대로 전나해줘 조심하고] [걱정마 그대신 캐리어랑 카메라 못건질수도 있다고]

[아빠 지금 인터네셍 세월호치면 우리 상황 나와 딸 무사할꺼니까 걱정마시고 사랑해 ♥♥♥]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헬기 소리가 들려도 구조대원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만 들릴 뿐.

[헬기 떳다네. 제발 다 구조되서 돌아와] [뜰 수 있는거 뭐라도 잡아. 움직이지 말래]

[너무 심하게 기울어서 움직일 수 없어. 더 위험해 움직이면 아빠]

그리고, 오전 10시 17분, 세월호 안에서 마지막 메시지가 전송됩니다.

[지금 더 기울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 JTBC




☞ "엄마·아빠 미안해…사랑해요"


▲... [앵커]

시작할 때 말씀드렸던대로 바다에서 온 여덟번째 편지를 공개해드립니다. 또한 말씀드린대로 오늘(27일)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바다에서 온 편지는 가능한 한 전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전해드리기가 마음 아프기도 하지만, 오늘의 편지내용이 마지막 작별인사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딸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친구의 전화를 빌려 부모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바닷물을 잔뜩 머금은 휴대전화를 복구하자 눈물 섞인 작별 인사가 살아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부모에게 전달된 딸의 마지막 인사는 "미안하다"는 말이었습니다.

바다에서 온 8번째이자 마지막 편지, 김관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단원고 희생자 고 김영은 양은 비교적 일찍 부모 품으로 돌아왔지만 휴대전화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건 당일엔 어쩐 일인지 통화도 안 됐습니다.

[김종호/고 김영은 양 아버지 : 아침에 전화할 때부터, 전화가 안 되더라고요. 전화기가 꺼져있다더라고요.]

딸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게 마음에 맺힌 부모는 옛 영상으로 그리움을 달랬습니다.

[김종호/고 김영은 양 아버지 : 1학년 때 학교 운동회 할 때 에어로빅을 자기가 구상해서 그걸 다 짜가지고 하더라고요. 전교 1등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영은이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부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긴 사실을 뜻하지 않게 알게 됐습니다. 같은 반 친구의 복구된 휴대전화에서 4월 16일 오전 10시 3분, 그러니까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직전 녹음한 파일이 발견된 겁니다.

[고 김영은 양/단원고 희생자 : 엄마. 엄마 미안해. 아빠도, 너무 미안하고. 엄마 정말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정말.] 딸의 목소리에 부모는 말을 잃었습니다.

일본사람인 영은이 어머니는 딸의 마지막 인사의 의미를 새깁니다.

[나카지마 야요이/고 김영은 양 어머니 : 제가 일본에서 왔는데, 이 지상에 살아 있는 어른들이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일본인이라서,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전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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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TBC




☞ 마지막 순간, 해경 긴급전화 '122'…아이들이 보내온 편지


▲... [앵커]

아이들의 휴대전화가 복구되고 그것이 저희들에게 전해질때마다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오늘(14일) 고 김완준 군의 휴대전화 사진이 복구됐습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했는데도, 아이들은 명랑하기만 했습니다.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순간 고 김완준 군은 해경 긴급전화 122번을 눌렀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바다로부터 저희들에게 도착한 여섯번째 편지입니다.

김관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4월 16일 8시 52분 21초, 세월호 4층 우현 객실에 있던 김완준 군이 복도로 나와 찍은 첫번째 사진입니다.

휴대전화 복구로 되살린 모습입니다. 허공에 뜬 쓰레기봉투가 배가 이미 많이 기울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때만 해도 아이들은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습니다. 벽을 발로 딛으며 장난치고, 천장까지 올라가 등을 댄 채 카메라를 보는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분도 안 된 9시 1분 13초,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닥에 바짝 누워있습니다.

이때 완준이의 단체 채팅방에 다른 친구가 상황을 알립니다.

[우리 지금 배 30도 기울음] [물건 다 떨어지고, 우리 다 가만히 대기중]

[바다에 잠길 삘(느낌)]

[막 방송으로 말하는데 배 엄청 위험하대] 10분 뒤 완준이는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안 되자 다시 해경 긴급전화 122에 전화를 겁니다.

역시 통화는 실패했습니다.

[김필성/고 김완준 군 아버지 : 마지막에 통화 내역 보니까 119에 전화하고, 해경에 전화하고 마지막에 통화를 시도했었는데 얼마나 급했으면 그때 전화를 했을까…그거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고요.]

끝내 가족들에게는 메시지 하나 남기지 못했습니다.

[김필성/고 김완준 군 아버지 : 살아있을 때, 제 아들한테 못 해준 게 너무 많기 때문에 그게 참 아쉽고, 앞으로 우리 부부가 우리 죽은 아들을 위해서 과연 뭘 해야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해경 긴급전화까지 시도했던 완준이의 현명했던 노력이 마지막 기억으로 가족들에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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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TBC




☞ 가슴에 묻은 말…생존 학생들의 참사 순간 영상 증언


▲... [앵커]

단원고 생존 학생들에게 우리는 아무 것도 물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받았을 상처가 얼마나 깊은 지, 또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짐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치료를 받는 과정을 학부모들이 촬영해 왔고, 이 영상을 저희들에게 제공해 주셨습니다. 간접적으로나마 생존학생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총 3회에 걸쳐 4시간 분량인데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본 참사의 순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생존 학생의 부모님들이 이 역시 저희 팀에 전해주셨습니다. 이지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지난 6월초, 경기도 안산의 한 연수원.

세월호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 6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고 50여일 만에 모인 아이들.

그동안 누구도 먼저 말하지 못한 사고 당시의 기억을 하나씩 가슴 속에서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당일 8시 40분경,

학생들은 알려진 것보다 10분 먼저 배가 기울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생존 학생 : 8시 30분에서 40분에 아무 일도 없이 4층으로 올라갔고 그때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생존 학생 : 쿵 하면서 뭔가 쓰러져 애들 다 소리 지르고 식당에 있던 물건들 다 쓰러지고요.] [생존 학생 : 제가 4층 창문 쪽에 있었는데 배가 기울어짐과 동시에 8시 50분쯤에 창문을 봤는데 컨테이너가 다 떨어지고 있었어요.]

위험을 직감한 아이들은 구명동의를 찾아 입고 탈출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광고

[생존 학생 : 처음에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조금 더 (배가) 기우니까 주변에 잡을 거 있으면 잡고 안전 조끼 입을 수 있으면 입으라고.] [생존 학생 : 두 번 정도 가만히 있으라고 한 다음에 안전봉 잡고 10시 이후에 구명조끼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입으라고.]

하지만 대피하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생존 학생 :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 계속 가만히 있으라고 한 거래요. 그 다음엔 배가 침몰되기 직전에는 방송 안 하고 아이들에게 나가라고 자기 목소리로 말했어요.]

배 안의 상황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생존 학생 : 캐비넷 하나가 떨어져서 애들이 거기에 다 깔렸거든요. 저랑 한 명 빼고요. 깔린 상태에서 물이 차오르니까 캐비넷이 뜨고 다른 애들은 다 빠져 나왔어요. 그래서 물에 둥둥 떠있었는데 저만 혼자 반대 쪽에 있었는데 물이 차가우니까 빠지는 것보다는 그 캐비넷 위에 올라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복도에 있던 친구가 저 끌어 올려줬고 다른 애들은 못 나왔어요.]

창문이 깨지고, 바닷물이 차오르면서 빠져나갈 문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생존 학생 : 나가는 문이 수압 때문에 잠겼어요. 배 안이 잠기고 물이 점점 차오를 때 (밖으로) 나간 아이들이 몇 명 있어요. 물이 밑에서 차오르잖아요. 물 따라 헤엄치고 빛 보이는 데로 나갔어요.]

휴대폰을 충전하러 가는 바람에 한 반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학생의 증언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생존 학생 : 다 같이 마피아 게임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핸드폰 충전을 해야 되는데 콘센트가 없어서 식수대 쪽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거기서 앉아 있다가 그렇게 됐어요.]

3층에 있었던 한 학생은 위에서 내려준 소방호스를 잡고 올라가 구조되기도 했습니다.

[생존 학생 : '저기(물 밑)로 나가면 되겠구나' 했는데 안 되는 거예요. 왜냐면 구명조끼도 입고 있고 잠수도 못해서. 다시 올라와서 원래 있던 자리로 갔어요. 그 이후 난간을 잡고 사다리에 오르는 것처럼 올라갔어요. (그 다음에 어떻게 탈출했어요?) 그 다음엔 소방 호스가 연결돼 있어서 (나왔어요.)]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서로를 의지했습니다.

[생존 학생 : 먼저 나온 아이들이 산다고 나간 게 아니라 아이들 끌어올려주고 먼저 나온 아이들이 밀어주고 질서 지키면서 나와서 누구 한명 나올 때까지 계속 이름 부르고 그랬어요.]

하지만 아이들 모두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밖으로 탈출하라고 말한 선원과 해경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단원고 학생 325명 가운데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학생은 단 75명 뿐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 JTBC




☞ '10시 11분' 사진 8장…아이들이 보낸 '세 번째 편지'


▲... [앵커]

4월 16일, 사고 당일 10시 11분.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지 1시간 반 가까이 지난 시간입니다. 저희 JTBC는 8시 52분에 단원고 박수현 군이 찍은 동영상과 9시 37분 박예슬 양이 찍은 동영상에 이어 10시 11분, 그러니까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배에서 달아난 지 25분 정도 지난 시점에 고 박수현 군이 찍은 사진들을 입수했습니다. 단 8장, 그것도 흔들린 사진들이지만 학생들은 이 흐릿한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육지로 보낸 세 번째 편지입니다.

김관 기자의 보도 먼저 보시겠습니다.

[기자] 사고 당일 수현 군이 찍은 동영상은 오전 8시 52분 27초에 시작합니다.

세월호가 급선회하다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 지 4분이 지난 시점이고, 119전남소방본부에 단원고 학생 최모 군의 신고 전화가 걸려온 시간이기도 합니다.

동영상은 9시 10분 쯤 끝났고, 이후 내부 상황을 알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수현 군의 휴대폰엔 그로부터 1시간 뒤의 상황을 담은 또 다른 기록이 있었습니다.

10시 11분 34초부터 10초 동안 촬영된 사진 8장이 발견된 겁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장난기가 가득했던 아이들의 얼굴은 상당히 굳어 있습니다.

배가 더 심하게 기울어 학생들은 침대와 바닥, 벽에 간신히 기대 있습니다.

수현 군의 영상과 사진은 아이들이 8시 52분부터 10시 11분까지 무려 1시간 20분 동안 객실에 꼼짝 않고 있으면서 언제쯤 탈출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올지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객실에는 아직 물이 차지 않아 이 때라도 빨리 탈출했다면 배를 빠져나가 구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사진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천금같은 시간 동안 선원들과 해경은 뭘 하고 있었을까. 수현군의 동영상이 시작할 무렵 신고를 접수한 해경의 구조정은 30분이 지나서야 침몰 현장에 도착합니다.

약 8분 뒤 세월호 승무원 15명이 이 구조정으로 탈출을 시작했고, 잠시 뒤 선장 이준석씨도 속옷 차림으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10시 7분 해경은 좌현 선실 유리창을 깨 승객 7명을 구조한 뒤 어떠한 선체 진입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수중 구조대가 와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도 아직 물이 들어오지 않은 객실에는 구조를 기다리는 수현 군과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10시 14분 수현 군은 아껴둔 휴대폰 배터리로 아버지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3분 뒤, 한 단원고 학생의 카카오톡 문자를 끝으로 세월호 안과 밖의 소통은 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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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시 40분경 담은 동영상…아이들이 보내온 두번째 편지


▲... [앵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박수현 군이 찍은 동영상을 지난 일요일, 고심 끝에 정지화면과 음성변조로 보내드렸습니다. 아버님인 박종대 씨께서는 진실을 밝혀달라고 하셨지요. 방송이 나간 후 수사당국은 이 동영상 내용을 토대로 즉각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는 어제(28일) 또 다른 동영상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등학교의 박예슬 양이 찍은 동영상입니다. 놀랍게도 이 동영상을 찍은 시간은 박수현군의 영상보다 약 3, 40분이 더 지난 9시 40분경의 영상이었습니다.

사고가 난지 한시간 가까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 때는 선장과 선원은 이미 탈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시간까지도 아이들의 모습은 고 박수현군의 친구들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 박예슬 양의 아버지 박종범씨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영상을 꼭 공개해서 우리사회가 공유했으면 한다, 그렇게 해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고심 끝에 지난번과 같은 방법으로 편집해서 보내드립니다. 저희들이 동영상과 음성을 그대로 전해드리지 않는 이유는, 비록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내용을 전해드리긴 하지만 다른 가족분들을 위해 그만큼 절제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전해드리겠습니다. 천진했던 아이들이 저 바다에서 지상으로 보내온 두 번째 편지입니다. 이지은 기자입니다.

[기자] [선생님들도 다 괜찮은 건가?]

[선생님도 여쭤봐.] [선생님도 지금 카톡을 안 보고 있어.]

사고 당일인 16일 단원고 박수현 군이 찍었던 동영상은 오전 9시 9분쯤 이렇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28분 뒤 같은 학교 박예슬 양이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습니다.

여학생들이 90도 가까이 기울어진 세월호의 객실 앞 복도에 모여 벽을 바닥삼아 누워 있습니다.

배가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세월호와 진도관제센터의 교신이 끝나는 시점인데도 대부분 학생들은 여전히 밝습니다. 밖에 해경 구조헬기 소리가 들립니다.

[헬리콥터가 와.]

헬기 소리에 안심했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장난을 칩니다.

[얘들아 원래는 이건데.]

[되게 많이 기울었다. 기울기를 어떻게 풀었지? 원래는 이건데.]

상황이 나빠졌지만 친구들 앞에서 애써 밝게 말합니다.

[힘들어. 살려줘. 살려줘.]

[다리 아퍼.]

이 때 또 선내 방송이 나옵니다. [안내말씀 드립니다. 현재 승객분들께서는 구명동의에 끈이 제대로 묶여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은 구조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습니다.

[와, 바다로 뛰어 내린다.]

일부 친구가 울먹이자 용기를 북돋웁니다. [엄마 보고 싶어.]

[살 건데 뭔 소리야.] [살아서 보자.]

아이들은 끝까지 밝은 모습을 보이려 합니다. [아 어떡해, 무서워, 무서워.]

[여기가 지금 복도입니다.]

[구조 좀.] 영상은 이렇게 9시 41분 28초에 끝납니다. 이 직후 이준석 선장과 항해사들은 배를 탈출했지만, 아이들에겐 구조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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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 수 있었던' 3번의 탈출 기회…아이들은 애타게 외쳤다


▲... [앵커] 두 단원고 학생이 남긴 동영상을 통해 당시 세월호에선 최소한 세 번의 탈출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이 세 번 모두,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상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이날 오전 9시 7분, 구명동의를 입은 아이들이 탈출을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구명조끼 입으란 거는 침몰되고 있다는 소리 아니야?] [어 진짜 바다로 뛰어들 거 같아.]

[우리 이렇게 바다로 헤엄쳐서 이렇게 될 거야.]

그런데 안내 방송이 구조를 막습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그로부터 30분이 지난 뒤 학생들 상황에 변화가 뚜렷합니다.

각자 객실에서 대기하던 아이들이 복도로 나와 바닥처럼 드러누운 벽에 나란히 누워서 어쩔 줄 몰라합니다.

이 때 헬기가 나타납니다. [와. 헬리콥터 온다.] 헬기가 세월호에 근접해 '대피 안내 방송'만 제대로 했다면 아이들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또 아직 물 위에 노출됐던 우현에 있던 학생들은 구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컸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도착한 해경은 배 앞쪽에 123 구조정을 대고 선장과 선원을 대피시키는데 급급했습니다. 같은 시각,

[와. 바다로 뛰어 내린다.]

학생들은 탈출 안내 방송을 기다리며 바다에 뛰어 들 각오를 했지만,

[구명동의에 끈이 제대로 묶여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기회가 왔지만, 선장 등 선원들은 진도 관제센터와 교신을 중단하고 탈출을 준비합니다. 객실 앞 복도에 남은 학생들은 애타게 외쳐보지만,

[구조 좀.]

끝내 구조 기회를 잃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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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박수현 군 아버지 "6시26분 난간 촬영, 전달할 게 있었던 듯"


▲... "오락가락 하는 모습, 진실에 반해…진상 규명됐으면"

"동영상 시간과 정부 발표 시간 차이 있다고 보여…이전부터 기운 것 아닌지 의문"

[앵커] 저희가 이 영상을 정지화면으로나마, 목소리를 변조해서나마 일부라도 전해드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영상을 이제 개인의 소유가 아닌 사회의 소유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영상을 일부나마 공개함으로써 그 당시 과연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진실을 밝혀야 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는 아버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고 박수현 군의 아버님이신 박종대 씨를 전화로 잠깐 연결하겠습니다. 나와 계신지요? 박 선생님? 어제(26일)가 아드님의 발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힘드신 와중에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사고 당일 8시 52분부터 시작되는 영상으로 아드님이 휴대전화로 찍은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발견하시게 됐는지요?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 : 휴대전화가 아들의 유일한 유품인데요. 발인 입관할 때 그쪽에서 전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휴대전화를 열어봤는데 메모리카드가 남아 있었고 그래서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열어봤는데 사진 한 40여 장과 동영상 3개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아들이 그런 관찰력이 있기 때문에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았나 생각했고, 그걸 주의있게 보던 중 많은 부분이 의문이 들어서 제보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그 중 동영상의 상당 부분을 저희한테 건네주셨는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희가 이것을 다 시청자 여러분께 공개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해는 해 주시리라고 생각하고요.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 : 네.]

[앵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혹시 동영상을 다 보셨는지요?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 : 아비로서 마지막 모습인데 가슴이 떨려서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은 상당 부분 보기는 했습니다.]

[앵커]

저희도 다 전해 드리지는 못한다고 했습니다마는. 글쎄요, 이런 영상 아버님께서 이것을 내놓으신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제가 짧게 말씀은 드렸습니다마는 직접 좀 듣고 싶습니다.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 : 확실히 얘기해 드린다면 진상규명입니다. 억울한 생명 300명이 사라졌는데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오락가락하는 모습만 보이고 진실하고 좀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알기로는 8시 58분에 최초 접수가 됐다고 얘기하는데 우리 아이들 영상에는 8시 52분에 이미 배가 상당히 기운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거 뭔가 틀린 것 아닌가, 이건 아들의 핸드폰이 아니라 사회에 어떤 진실을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무조건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글쎄요, 아드님이 이 영상을 찍으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 : 글쎄, 그 영상에 앞서서 6시 26분경에 배의 난간을 찍은 사진이 하나 발견됐고요. 그리고 7시 20분경에 선실 내 조명을 찍었던 사진입니다.]

[앵커] 그 사진도 저희가 건네받았는데요. 지금 나가는 사진이 6시대에 찍은 배 난간의 모습입니다.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 : 그리고 조명을 찍은 사진이 하나 있거든요.]

[앵커] 배 안의 조명을 찍은 사진인데, 그것도 잠시 후에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진이네요.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 :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누가 보더라도 의미 있거나 멋있지 않은 풍경인데 왜 찍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됐습니다. 동영상에 나온 시간하고 정부에서 발표한 시간이 어떤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얘가 이미 6시 26분경에 이 배가 삐뚤어지지 않았나, 그런 것을 전달하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앵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마는 아버님 생각에 수현 군이 평소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고, 어떤 의미 있는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얼핏 보기에도 수평을 이루고 있는 상황은 아니고요. 그래서 혹시 그전에도 조금 기울어진 상태가 아니었느냐, 왜냐하면 이 배의 어떤 균형, 복원력 이거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마 그전에도 조금 기울어져 있었지 않았나, 그래서 아드님이 그걸 주의깊게 봐서 찍은 것이 아닌가 이렇게 판단을 하신다는 말씀이시겠죠?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 : 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이렇게 인터뷰해 주신 이유는 뭔가 진실이 좀 더 밝혀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 때문이신 것으로 저희가 이해를 하고요. 인터뷰는 더 이상 길게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버님도 경황이 없으실 테니까요. 감사드리고 또 아버님께서 아드님께 보내주시는 영상편지를 저희가 받았는데요. 길지는 않습니다마는 우리 시청자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박종대 씨/고 박수현 군 아버지 : 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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