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7.20 11:48 | 수정 : 2014.07.20 11:56
17일 이스라엘 중부 헤르즐리야의 아시아 식당 '리버'에서 유대인 소녀 아바(왼쪽)와 무슬림 소녀 라완이 비빔밥을 함께 비벼 먹고 있다. 둘은 이팔 사태가 최악인 상황에서도 '한류'라는 공통점으로 금세 친해졌다./박국희 특파원
![17일 이스라엘 중부 헤르즐리야의 아시아 식당 '리버'에서 유대인 소녀 아바(왼쪽)와 무슬림 소녀 라완이 비빔밥을 함께 비벼 먹고 있다. 둘은 이팔 사태가 최악인 상황에서도 '한류'라는 공통점으로 금세 친해졌다./박국희 특파원](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407/20/2014072000602_0.jpg)
유대인 소녀 아바(18)는 지난 1월부터 이스라엘 여군으로 복무 중인 6개월차 군인이다.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에서는 남녀 모두 18세가 되면 각각 3년, 2년씩 군 복무를 한다.
무슬림 소녀 라완(21)은 현재 대학생으로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이전부터 이땅에 살고 있던 아랍인 중 일부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얻고 이스라엘인으로 살고 있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20%인 160만명 정도가 아랍계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성은 팔레스타인에 가깝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소녀가 이날 비빔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았다. 이·팔 사태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점인 만큼 둘 사이의 분위기도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이내 공통된 화제 앞에 소녀들은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었다. 둘은 모두 ‘한류’의 광팬이다.
두 소녀는 이날 외교부와 KBS월드 주관으로 열린 ‘2014 K-POP 월드 페스티벌’에 참석해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아바는 “요즘 한국 드라마인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푹 빠져 산다”고 했고, 라완은 “가수 정엽과 이적을 제일 좋아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물론 이·팔 사태에 관한 둘의 의견은 팽팽했다. 아바는 현역 군인답게 “한국을 비롯한 세계 많은 나라들이 팔레스타인에 경제적 원조를 해주지만 하마스는 그 돈으로 결국 로켓포를 만든다”고 했고, 라완은 “이스라엘의 무인기 공격으로 무고한 가자지구 시민들이 죽고 있다. 이건 게임이 아니다”고 맞섰다.
두 소녀의 논쟁은 주문했던 비빔밥이 나오고 나서야 끝이 났다. 한국 드라마와 한국 가수를 누구보다 좋아하는 두 소녀였지만 이스라엘에는 한식당이 하나도 없었다. 아바는 “드라마에서 보던 한국 음식들을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소원을 이루게 됐다”며 웃었다.
두 소녀가 이스라엘에서 비빔밥을 먹을 수 있게 된 건 지난 1일부터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이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한식 전파 사업 덕분이다. ‘리버(River)’ 라는 아시아 퓨전 식당과 협의 끝에 이곳에 한식 메뉴 8가지를 시범적으로 내놓기로 했다. 요리 실력이 좋은 한국 교민 여성이 직접 이 식당의 현지 주방장에게 비빔밥, 불고기, 잡채, 파전 같은 한식 레시피를 전수했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을 경우 이스라엘 전역에 있는 이 식당의 12개 지점으로 한식 메뉴를 전파한다는 계획이다.
박춘식 영사는 “한국 국적기가 주3회 이스라엘에 오고, 한국 여행객이 일년에 3만명씩 성지순례를 오는 상황에서 한식당은커녕 한국 식재료 하나 구할 수 없다는 현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일식당, 중식당, 심지어 태국과 인도 식당까지 수백개가 있는 상황에서 한식을 현지에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한국 대사관의 초청을 받고 이 식당에서 처음 비빔밥을 먹게 된 아바와 라완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느냐”는 질문부터 했다. 유대교 율법과 이슬람에서는 똑같이 돼지고기 식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들은 유대교와 이슬람의 식습관 규율인 ‘코셔’와 ‘할랄’에 대해 각자 설명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라완은 “유대교든 이슬람이든 종교보다 먼저인 건 인류라는 공통점 아니냐”며 “더욱이 우리는 한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까지 있다. 음악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소녀가 비빔밥을 먹고 헤어진 그날 밤, 이스라엘은 2008년 이후 6년만에 대규모 지상군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투입했다. 양측간의 교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