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란했던 한때 28일 박씨의 세간살이를 정리하면서 발견된 앨범에는 큰딸 김씨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세 모녀의 사진이 꽂혀 있었다 ![]() 두 딸의 어린 시절이 담긴 세 모녀(母女)의 앨범. ![]() 1000원짜리 콩나물·부추까지… 빼곡한 지출… 박씨의 가계부에 적힌 2006년 2월의 지출 내역. 120만원의 수입으로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세 식구의 식비와 생활용품, 약값 이외에는 지출할 돈이 거의 없었다. /이슬비 기자 한달 식비 20만원, 널브러진 약병들 당뇨병 앓는 언니 곁에서 돌보느라 둘째 딸은 일도 못하고 집에만… 단란했던 한때 28일 박씨의 세간살이를 정리하면서 발견된 앨범에는 큰딸 김씨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세 모녀의 사진이 꽂혀 있었다. 사흘 전까지 세 모녀(母女)가 살던 서울 송파구 석촌동 단독주택 반(半)지하방에서는 소주병이 수십 개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 박모(60)씨가 깁스를 고정하던 밴드, 큰딸 김모(35)씨가 복용하던 약병들, 냉장고의 말라붙은 밑반찬 그릇에선 모녀를 삼켜버린 절망이 묻어났다. 28일 오전 세 모녀의 세간살이와 함께 절망의 흔적까지 폐기물 운반 차량에 실려 사라졌다. 만화가를 꿈꾸던 두 딸의 손때가 묻은 만화책과 습작들, 아버지가 살아있던 시절 네 가족이 함께 찍은 행복한 사진첩 속 해맑게 웃던 어린 두 딸과 다정했던 부부의 환한 미소도 쓰레기봉투에 담겼다. 2002년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암(癌) 투병 끝에 숨진 뒤 가족의 행복은 산산이 부서졌다. 살던 집을 팔고 이곳 반지하 방으로 옮긴 뒤인 2006년부터 어머니 박씨가 쓴 가계부엔 고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족의 주식(主食)은 라면·빵이었다. 박씨는 하나에 600원 하는 라면 개수까지 꼼꼼히 적어넣었다. 한 달 수입은 박씨가 식당일로 벌어오는 120만원이 전부였다. 38만원인 집세와 공과금 15만원을 내고, 세 모녀가 쓴 식비는 한 달에 채 20만원을 넘지 못했다. 세 모녀는 지난 26일 오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완전히 타버린 번개탄과 현금 70만원이 든 흰 봉투, '주인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은 글이 유서처럼 남아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했지만, 가난은 모녀를 서서히 집어삼켰다. 서른 살이 넘은 두 딸은 경제력이 없었다. 큰딸 김씨는 오랜 세월 당뇨를 앓아 거동조차 힘들었고, 언니를 간병하느라 함께 집안에 남아 있던 작은딸(32)도 직업이 없었다. 아버지가 남긴 빚까지 짊어졌던 박씨 가족은 딸들이 만든 신용카드 3~4개로 '돌려막기'를 하면서 생계를 이었다. 지난달엔 38만원이던 월세가 50만원으로 올랐다. 어머니 박씨마저 지난 1월 말 길에서 넘어져 오른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식당일을 나가지 못하게 됐다. 주변 이웃들은 물론 가족들의 유일한 친척인 박씨의 남동생조차 이들이 막다른 길에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박씨의 남동생은 "누나와 전화도 자주 하고 얼마 전에는 쌀을 갖다주기도 했는데 누나는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걸 사오느냐'고 핀잔을 줬다"며 울먹였다. 박씨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집주인도 "박씨네는 월세 한 번 밀린 적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정 등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 서울 송파구청 복지정책과 직원은 "30대 딸이 둘이나 있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생계가 이 정도로 어려울 것이란 짐작을 하기 어려웠다"면서 "통장(統長) 등 이웃들을 탐문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권유하기도 하지만 박씨 가족은 주변 누구에게도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이웃주민은 박씨에 대해 "자기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무척 강한 분이었다"며 "이웃에게 폐를 끼치는 걸 참지 못하는 성격 같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석촌동 주민센터 측도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박씨 가족이 수급자 지정에서 걸림돌이 될 사유도 없어 보이는데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은 쓸쓸했다. 세 모녀의 시신은 빈소도 없이, 상주(喪主)도 없이 차가운 영안실에 사흘 동안 안치돼 있었다. 박씨의 남동생과 장례비를 지원하기로 한 교회 관계자들만 지켜보는 가운데 모녀의 시신은 28일 오후 2시쯤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을 떠나 서울 추모공원 장지(葬地)로 향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 조선닷컴 |
세 모녀가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반지하 집은 33㎡(10평) 남짓한 크기다. 28일 폐기물 처리업체가 살림살이를 모두 들어냈다. 방준호 기자 세 모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다음날인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반지하 집에서 폐기물 처리업체 직원들이 이들의 전재산이나 마찬가지였던 가구 등 살림살이를 트럭에 옮겨 싣고 있다. 세 모녀의 삶의 흔적 일부는 고철로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워질 예정이다. 방준호 기자 반지하 작은 집에서 세간이 하나씩 들려 나왔다. 쌀가마니만한 포대에 담긴 옷더미 3개도 빠져나왔다. 주인 잃은 옷들이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몸을 뉘었던 자그마한 침대는 부서진 채 밖으로 옮겨졌다. 이 생의 끝을 포근하게 해줬을 이불 보따리도 집 밖으로 치워졌다.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이 든 봉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세 모녀(<한겨레> 2월28일치 1면 참조)가 버틴 삶의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박아무개(61)씨와 큰딸 김아무개(36)씨, 작은딸(33)의 자취는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28일 오전 9시부터 세 모녀가 살았던 서울 송파구 석촌동 반지하 집을 폐기물 업체 직원 2명이 치우기 시작했다. 남루한 짐들 사이로 해묵은 만화책들이 쏟아졌다. 만화책 사이로 스케치북 크기의 도화지 몇장이 눈에 들어왔다. 만화책에 나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박씨의 딸들이 그렸을 것이다. 짐 속에는 ‘만화 원고용지’ 한 묶음이 딸려 나왔고 전문 미술용품 매장의 할인쿠폰도 섞여 있었다. 만화가를 꿈꿨던 것일까. 토익시험 참고서도 트럭에 실렸다. 두 딸이 병마와 절망 속에서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꿈의 흔적일 터다. 만화원고 용지·토익참고서…구겨진채 버려진 꿈 국가 보호 받지 못한 국민…” 누리꾼 애도 이어져 사진들도 어두운 집을 빠져나왔다. 두 자매는 사진 속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축하받았고, 마이크를 쥐고 즐겁게 노래 부르는 여중생이었다. 1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함께 미소짓고 있는 사진들이 담긴 사진첩은 트럭 위로 흩어져 떨어졌다. 사진은 그들의 행복했을 옛날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었다. 곤궁 속에서 절망했을 마지막 순간을 가늠할 만한 것은 없었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의 생애 마지막 월세를 받은 집주인 임아무개(73)씨는 슬퍼 보였다. “밖이랑 왕래가 거의 없던 사람들이에요. 나도, 1년에 한번 제대로 볼까 말까 했는데…. 두 딸은 집에만 있었죠. 9년 동안 말썽 한번 일으킨 적이 없는 착한 사람들이….” 동네 주민 서너명이 기웃거리자 임씨는 “우리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잖냐”며 조용히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이날 오후 1시께 반지하 집 안엔 텔레비전만 남았다. 낡디낡은 물건이지만 누군가 가져가겠다고 했단다. 1t 트럭 한대에 실린 세 모녀의 유품은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으로 옮겨졌다. 쓸 만한 고철만 내린 트럭은 나머지 짐을 고양시 화전동으로 날랐다. 곧 태워질 것이다. 박씨가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라고 적은 편지봉투는 경찰이 보관하고 있고, 봉투에 들어 있던 70만원은 집주인에게 전달됐다. 박씨의 전재산인 보증금 500만원은 집 정리 비용 등을 빼고 박씨의 남동생에게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박씨는 식당일을 하며 한달에 150만원가량을 벌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세 모녀의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을 애도하는 마음은 길게 줄을 이었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울었을까?”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들의 안타까운 죽음” 등의 글을 <인터넷 한겨레> 등에 적은 누리꾼들이 많았다. 세 모녀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na*****)이라며 공분하는 이들도 있다. 한 누리꾼은 “시기만 다를 뿐 우리의 미래 모습”이라고 탄식했다. 주검이 안치된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에 조문을 하러 직접 찾아오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세 모녀의 주검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됐다. 박씨의 남동생과 여동생 둘, 그리고 그 가족들 10여명이 세 모녀의 마지막을 지켰다. 유족들은 화장이 끝나고 유골을 수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박씨의 남동생은 “(누나는) 의연하고 꿋꿋했다. 매번 연락하면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고생 끝나고 좋은 데로 간 거다”라는 짧은 말을 남겼다. 이제 세 모녀는 한 줌 재로 흩어졌다. 그들이 살다 간 흔적은 모두 사라졌다. 애도의 뜻을 전하는 시민들의 가슴에 아픔과 염원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가난과 병이 없는 천국에서 행복하시길 빈다.” “좋은 데로 가서 편히 쉬시기를….” 정환봉 방준호 기자 bonge@hani.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한겨레 |
![]() 세 모녀에게 가능했던 정부 지원 정리 표 건강한 둘째 딸 추정소득 감안, 기초수급 땐 月 48만원 받아 정부 자활사업 참여했으면 月 70만원 추가로 벌 수 있어 서울 송파구 박씨 세 모녀는 질병으로 수입이 끊겼지만 정부 복지에 전혀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만약 박씨 모녀나 주변에서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더라면 이 가족은 기초수급자나 차상위계층(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내)으로 지정돼 최소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기초수급자는 소득 인정액(소득과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액수)이 월 133만원(3인 가정 최저생계비) 이내면 해당된다. 정부에서 매월 주거·생계비와 함께 의료비 혜택(의료급여)도 받게 된다. 박씨 모녀는 집 보증금 500만원 말고는 별다른 재산이 없었고, 소득은 박씨가 월 150만~180만원을 벌었던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만약 박씨가 계속 일했다면 소득이 최저생계비(월 133만원)보다 많아서 기초수급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팔을 다친 박씨가 올 2월 들어 수입이 없어졌기 때문에 기초수급자가 될 자격이 생겼다. 이때도 박씨 가정이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생계비는 월 48만원이었다. 3인 가정의 현금 지원액은 월 108만원인데, 둘째 딸은 근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추정소득(월 60만원)을 뺀 액수만큼만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때 추정소득은 최저임금으로 한 달에 15일간 일한 것으로 계산한다. 첫째 딸은 투병 중이었기 때문에 추정소득을 공제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받을 수 있는 돈 48만원은 박씨 모녀가 살던 월세(50만원)에도 못 미친다. 박씨 가족은 긴급 지원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실직 등으로 위기에 빠진 가정을 정부가 한시적으로 도와주는 제도다. 우선 생계비로 매달 88만900원씩 석 달간 받으면서 기초수급자로 지정될 수 있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조선닷컴 |
일선 사회복지사들은 "생활고로 세상을 등진 박씨 모녀같이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거나, 가족이나 지인들이 지원 대상이 되는 가정의 사정을 모를 경우엔 복지 사각(死角)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차영미 서울 송파구 복지정책과 주무관은 "개인정보 문제 때문에 당사자 허락 없이 인적(人的)정보를 조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당사자와 주변 지인들의 신청 없이는 사실상 대상자 발굴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차 주무관은 "집세나 공과금이 장기 체납됐다면 구청에 신고돼 생활 실태가 노출됐겠지만, 숨진 박씨는 월세를 꼬박꼬박 냈기 때문에 구청에서 인지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구(區)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8000명 대부분이 이웃 주민이나 친척에 의해 신고가 됐기 때문에 지원이 가능했다"면서 "박씨 모녀처럼 사회안전망에 노출되지 않는 가구는 매우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상자 발굴을 위한 인력도 부족하다.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주민센터 복지지원팀 주무관은 "주민 3만5000여명을 복지사 4명이 담당하고 있다"면서 "사무실에서 민원상담하기도 바쁜데 현장에 나가 대상자를 발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은천동주민센터의 경우 3만6000명의 인구를 2명의 사회복지사가 관리하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등)] ▒☞[출처]조선닷컴 |
'Netizen Photo News'.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가 26일 저녁 8시30분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70만원이 담긴 새하얀 봉투를 남겼다. 방세 50만원과 가스비 12만9000원, 전기료·수도료 등을 어림한 돈이었다. 봉투 겉면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이 숨을 거둔 비좁은 방(오른쪽 사진)은 작은 침대와 이불, 각종 세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환봉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 자살 아닌 ‘사회적 타살’…약자에 관심 가져야 “나만 잘 산다고 다인가? 부끄럽다” 자성 목소리도 “이래도 복지가 포퓰리즘인가?”…정부 비판도 잇따라 생활고를 비관해 세상을 등진 세 모녀의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에서는 세 모녀를 지켜주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간 현실을 비판하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세 모녀가 비극적 선택을 한 순간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다. 닉네임 아****는 <한겨레> 기사에 “결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세 모녀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울었을까”라고 물으며 “가난과 병이 없는 천국에서 행복하시길 빈다”는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누리꾼(닉네임 봄***)도 “얼마나 암담했으면 저 길을 갔을까. 아마 우는 상태로 엄마는 딸들을 생각하며, 딸들은 노모를 생각하며, 서로는 서로를 생각하며 그렇게 소리 죽여가며 울었을 것이다. 눈물이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댓글을 남겼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기사 더보기 ☞ 원본글: 한겨레 신문| Click.● 닷컴 가기. |
'사회생활 >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년의 4고 (老年 四苦) (0) | 2014.03.04 |
---|---|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서 ... (0) | 2014.03.02 |
맨해튼 한복판서 출산… (0) | 2014.02.28 |
도올논어강의 20장 신종추원 (제사의 모든것) (0) | 2014.02.24 |
어머니 사망신고 않고 연금 챙긴 60대 징역 10월 (0) | 2014.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