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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淸潭 2014. 2. 9. 10:17


♥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
- "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한탄하라." -



< 방랑시인 김삿갓 >

김병연 (金炳淵 1807 ~ 1863).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性深), 별호는 난고(蘭皐),
호는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 김삿갓이 어릴 때 살던 곳(심심산골) -

김삿갓이 20살 되던 1826년,
영월읍에서 백일장대회가 열렸는데,
그 때 시제(詩題)는,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즉, 정시(鄭蓍)의 충절 한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를 통박하라는 것이었다.


- 백일장대회가 열렸던 영월의 관풍헌(觀風軒) -

< 김삿갓 백일장 試題와 答 >
당시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그는,
정시의 충절에 대하여는 아낌없는 찬사를,
그리고 김익순에 대하여는 가차없는 비판을 하였다.


- 할아버지 김익순을 조롱하는 김삿갓의 답안지. -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
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
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

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 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
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
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
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 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
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
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



- 김삿갓이 마지막 기거하고 사망한 전남 화순 -

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
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 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

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
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
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
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

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
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
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
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선 안되리라.
청천강 맑은 물에 병마를 씻고 철옹산 나무로,
만든 활을 메고서는 임금의 어전에 나아가,
무릎 꿇듯이 서쪽의 흉악한 도적에게 무릎 꿇었구나.

너의 혼은 죽어서 저승에도 못 갈 것이니,
지하에도 선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라.
이제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고 육친을 버렸으니,
한 번 죽음은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리.
춘추필법을 너는 아느냐?
너의 일은 역사에 기록하여 천추만대에 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