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
전한(前漢) 말기, 왕망(王莽)은 한(漢) 왕조로부터 황제위를 빼앗아 신(新)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갈수록 악정이 계속되자 민중에서는 이를 원망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AD 17년 녹림군(綠林軍)이 각지에서 봉기해 그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한 왕조의 일족인 유수(劉秀)도 원현(苑縣)에서 병사를 일으켰다. 유수의 부대가 영양(潁陽)에 이르렀을 때, 그 지방의 왕패라는 자가 친구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23년 6월, 40여 만 명의 왕망군과 1만여 명의 유수군이 곤양(昆陽)에서 격돌하였다. 여기서 예상을 깨고 유수군이 대승하였다. 이때 왕패도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드디어 유수군은 갱시제(更始帝)를 옹립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황제의 견제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유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허베이[河北] 지방의 평정을 자청하였다.
갱시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왕패도 유수를 따라 종군하였다. 그러나 이 원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따라서 고난을 이기지 못해 이탈하는 자가 속출하였다. 유수는 주변의 낯익은 병사가 줄어든 것을 보고 왕패에게 말하였다.
"영천에서 나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구나. 오직 그대만이 남아서 힘쓰고 있으니 '세찬 바람이 불어야 억센풀을 알아볼 수 있구려(疾風知勁草·질풍지경초)'."
얼마 뒤 유수가 산둥[山東]의 호족인 왕랑군(王郞軍)에게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였을 때, 왕패는 죽음을 무릅쓰고 그를 구출해 내었다. 훗날 유수는 후한의 황제가 되어서도 왕패를 더 한층 신임하였으며, 상곡(上谷)의 태수에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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