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천황(破天荒)
이 고사는 과거의 급제와 관련이 있다.
당나라 때는 지방시험인 향시에 합격하여 중앙시험에 추천되는 사람을 해(解)라고 불렀다. 모든 일에 통달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송나라때 나온 ‘북몽쇄언’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당나라 형주(荊州)에는 학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지만 해마다 해(解)를 뽑아 중앙에 보내는데, 어느 누구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황해(天荒解)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곳의 '유세'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解로서 급제하자 천황을 깬 사람이 나왔다 해서 '유세'를 <파천황>이라고 불렀다
'유세'의 과거급제가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면 당시 형남군(荊南軍)절도사가 파전황전(破天荒錢)이라 하여 상금으로 거금 70만전을 보냈다는 사실로도 짐작할 만하다.
科擧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고려시대 후주(後周)에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에 따라 958년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비로소 과거의 법을 마련한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과거제도는 수(隋)나라 때 시작하여 청(淸)나라 말기까지 1천3백년 동안 이어졌다. 과거는 유교의 경전에 대한 교양과 시문(詩文)의 재능, 정치적 식견 등을 테스트하는 공개경쟁 시험제도였다.
뛰어난 암기력과 해박한 지식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지방시험인 향시(鄕試)에서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회시(會試)까지 급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글,문학 > 故事成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知 音 ( 지 음 ) (0) | 2013.05.19 |
---|---|
城下之盟(성하지맹) (0) | 2013.05.18 |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 (0) | 2013.05.17 |
상궁지조(傷弓之鳥) (0) | 2013.05.17 |
배중사영(杯中蛇影) (0) | 2013.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