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임제스님과 본적스님의 게송-28*2

淸潭 2011. 4. 26. 10:11

임제스님과 본적스님의 게송에 부침

       임제(臨濟)스님은 임종하면서 「법을 전하는 게송〔付法偈〕」을 남겼다.

     

         흐름따라 머물지 않는 도리를 묻는다면

         참다운 관조는 끝없는 것이라 말해주리라

         ‘모습’과 ‘이름’을 떠난 것 본래 성품 없으니

         예리한 칼날 쓰고서 얼른 갈아 두어라

     

         沿流不止問如何    眞照無邊設似他

         離相離名如不稟    吹毛用了急須磨

     

       그러나 이 게송은 구전자에 의하여 ‘얼른 갈아 두어라〔急須磨〕’라는 귀절이 ‘얼른 다시

    갈아라〔急還磨〕’로 바뀌었다.

       또한 조산 본적(曹山本寂: 804~901)스님은 ‘고목나무 속에 용이 울부짖는다〔枯木龍吟〕

    ’와 ‘해골 속에 눈동자니라〔髑髏無識〕’한 이야기에* 대해 풀이하는 게송을 지었다.

     

         고목에 용이 울부짖을 때 바야흐로 도를 보고

         해골 뼈다귀에 ‘식’이 없어야 바야흐로 눈이 밝아지네

         기쁘다는 생각이 다할 때 소식이 없어지니

         사람들이 어떻게 혼탁한 가운데 맑음을 알랴.

     

         枯木龍吟方見道    髑髏無識眼方明

         喜識盡時消息盡    當人那辨濁中淸

     

       이 또한 구전자에 의하여 ‘소식이 없어진다〔消息盡 〕’라는 귀절이 ‘다하지 않는다

    〔消不盡〕’로 바뀌었다.

       이 두 분 큰스님의 게송에는 매우 은밀한 뜻이 담겨 있는데 그 본의를 잃으면 해는 매우

    크므로, 내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임제스님의 ‘용료급수마(用了急須磨)’란, 바로 선자(船子)스님이 말씀하신

     

         모름지기 몸을 감춘 곳에

         종적이 없고

         종적이 없는 곳에

         몸을 감추지 말라.

     

         眞須藏身處    沒蹤跡

         沒蹤跡處    莫藏身

     

    라는 뜻이다.   또한,

     

         기쁘다는 생각이 다할 때 소식이 없어지니

         사람들이 어떻게 혼탁한 가운데 맑음을 알랴.

     

         喜識盡時消息盡    當人那辨濁中淸

     

    라는 것은 바로 달관(達觀)스님이

     

         ‘편’과 ‘정’이 자재하니

         초연히 벗어나 십성(十成)을 꺼린다

         용문을 모름지기 꿰뚫어야 하나

         험한 길 어찌 갈 수 없네

         석녀는 차가운 서리 속에서 베를 짜고

         진흑소는 불 속에서 밭갈이하네

         두 가지 길을 모두 벗어난다면

         메마른 고목나무가지에 꽃이 피리라.

     

         偏正互縱橫    迢然忌十成

         龍門須要透    鳥道不堪行

         石女霜中織    泥牛火裏耕

         兩頭如脫得    枯木一枝榮

     

    하신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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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스님이 향엄 지한(香嚴智閑)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고목 나무 속에서 용이 우짖느니라.”   "무엇이 이 도 가운데 사람입니까?"   "해골바가지 속의 눈동자이니라."

       그 스님이 석상(石霜)스님에게 가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무엇이 고목 나무 속에서 용이 우짖는 것입니까?”  하니

       석상스님이 “아직도 기쁜 빛이 있구나” 하였다.   이어서 “무엇이 해골 속의 눈동자입니까?” 하니

       “아직도 헤아리는 〔識〕빛이 있구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