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불교경전

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15회 <13.여법수지분>

淸潭 2011. 2. 19. 17:42

 

우승택 금강경 해설 제15회 <13.여법수지분>

 

13분 이제 처음 반야란 말이 나온다. 12분에서 말한 대로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 신장님들이 일단 도와주시는 것이다. 아직 반야가 감이 안 잡힌다고 해서 속상해 할 필요 없다. 왜냐하면 이 책 금강경의 수보리 존자도 12분까지 감을 못 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3분 여법수지분에서 금강경에 대해 부처님 말씀 듣고 나서 14분에 가면 수보리 존자가 울기 시작한다. 법문 듣다 까닭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리는 것이 다 있다.

 

체루비웁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다.

 

예전에 3천배 3일 스트레이트로 한 적 있다. 그랬더니 몸무게가 4.7Kg이나 빠졌다. 그런데 어떤 노보살님이 눈물 안 나? 안 나던데요. 그럼 헛 했네. 생각으로 참회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이전의 자리에서 참회가 나면 눈물이 주르륵 나온다 그런다. 이게 바로 체루비웁이다. 아직 12분까지 수보리존자도 대승과 소승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저도 오늘 여러분들에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반야를 알게 해드려야 한다. 사실 반야를 알아야 보시를 해도 지치지 않고 인욕을 해도 지치지 않는다. 절에 가서 법당 청소 절 앞에서 주차봉사 하지만 나중에 다 지친다. 대가가 없으면 금방 지치는 사람들 많다. 왜냐하면 반야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업식으로 했기 때문이다. 업식으로 하면 다 지치고 실망한다. 그러나 반야로 하면 그런 게 없다. 그래서 반야를 알아야 한다. 저는 6분부터 반야란 말을 사용했지만 부처님은 13분에서 비로소 반야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 如法受持分 第十三 <법에 따라 받아 지녀라 운명과 숙명>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當何名此經 我等 云何奉持 佛告須菩提 是經 名爲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所以者何 須菩提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所說法不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來無所說 須菩提 於意云何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 是爲多不須菩提言 甚多 世尊 須菩提 諸微塵 如來說非微塵 是名微塵 如來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須菩提 於意云何可以三十二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三十二相 得見如來 何以故 如來說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以恒河沙等身命 布施 若復有人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 甚多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어떻게 이름할 것이며 저희들이 어떻게 그 말씀을 받아 지녀야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이 경의 이름을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할 것이며 이 이름으로 너희들은 마땅히 받들어 지녀야 할 것이니라. 어째서 그러한고?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이라 하는 것은 그 이름만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들어야 하는 반야바라밀을 의미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한고? 여래가 설한 바의 법이 있더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설하신 바의 법이 없나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삼천대천세계의 있는바 티끌이 많다고 하겠느냐?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이러한 모든 티끌들은 여래가 말하기를 눈에 보이는 미진이 아니라 마음으로 형상화되는 미진을 말하기에 미진이라 이름하는 것이며 여래가 설하는 세계도 마음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세계이기에 세계라고 이름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나의 32가지의 상<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을 32가지로 분류한 것>으로서 나를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아니합니다. 세존이시여! 32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나이다. 여래께서 말하는 32상은 눈에 보이는 어떤 특징적인 상이 아니라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상입니다. 그래서 32상이라 하는 것입니다. 수보리야 만일 어떤 착한 남자와 여인이 있어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의 몸과 목숨을 바쳐 보시를 했다고 치자. 그러나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이 경의 내용 중 사구게라도 마음으로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 설한다면 그 복이 앞서 목숨 바쳐 보시한 사람보다 큰 것이니라.  

 

운명과 숙명.

아직 이 화두를 타파하진 못했지만 이것은 운명 이것은 숙명임을 안다고 감히 생각한다. 글자로는 알게된 단계까지 왔다. 그래서 오늘은 운명과 숙명을 반야란 말을 통해서 말씀드리겠다. 한국 말이지만 참 어렵다.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다음 구절에 시명반야바라밀이 있는 구절이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조선과 중국엔 있고 고려대장경엔 없다. 부처가 얘기한 반야바라밀이란 것은 너희들이 알고 있는 단어나 말이나 글로서의 반야바라밀이 아니라 단지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일 뿐이니라. 시위다부 不는 문장 끝에 쓰이면 부가의문문이 된다. 그 다음은 금강경의 그 유명하고 특이한 어법이 나온다.

 

여법수지분 如法 법대로 받아 지녀라.

그러면 법이 뭐냐? 달마대사가 말했다. 법이 뭔가요? 중생들 마음이니라 그러셨다. 내가 설한 바가 많느냐? 84천 법문을 45년동안 평생 설하신 분이 나는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 그러신다. 성철스님도 그렇게 많은 법문 해놓고 돌아가실 때는 중생들한테 거짓말만 하다 간다 그러셨다. 말이나 글로 안 되는 것이다. 눈 길을 걸으면 자기 발걸음 대로 따라오라 그러시고는 발걸음을 지워버리는 것이 부처님이 가르치시는 방법이다. 금강경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 스님 말이 맞다 저 스님 말이 맞다 자꾸 이렇게 하지 말고 자기 마음 그릇만큼 요만큼 알게 되면 요만큼 행하고 저만큼 알면 저만큼 행하라는 뜻의 법문이다. 그러면 일체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그래도 반야가 뭐냐

 

+마음<업식+반야>

업놀음 하지 말고 반야로 살라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반야가 뭐냐? 잘 아는 분 중에 IMF 때 쫄딱 망한 분 계신다. 홧김에 술 한잔 하면서 민물장어를 시켰다. 막 죽이려는 순간 잠깐! 나한테 파시오. 그리고 방생했다. 그리고 나서 그분 다시 재기했다.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나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일 한 것은 그 일밖에 생각 안 난다. 그게 반야다. 너와 내가 없는 경지가 된 것이다. 매일 회 먹다 그 순간 너와 내가 둘이 아니란 마음이 된 것이다. 이 사람을 다시 살려준 것은 뱀장어가 아니다. 반야 계속 나오지만 부처님은 내가 너 해준다는 것 없다 과보로 받는다. 그 한 순간의 마음이 온 우주법계의 마음을 다 움직인다. 그 사람이 과거에 지은 선악의 업이 있겠지만 이렇게 행하면 시절인연이 안 된 선업까지 몽창 쏟아 부어주는 것이다.

 

나도 반야가 뭔지 몰랐다. 나도 2003년 어려웠다. 태국에 휴가를 갔지만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나도 Lobster 2마리를 사서 방생해 봤다. 인위적인 반야의 마음 한번 써봤다. 직장생활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누구에게 미움 받는 경우가 있다. 직장 상사가 나를 너무 미워했다. 직장을 옮기든지 저 인간이 잘리든지 그럴 때다. 그런데 스님에게 말했더니 그 사람 잘 되게 해달라고 108배를 100일 동안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했다. 그런데 정말 그분 사장 되서 더 좋은 데로 갔다. 나를 미워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없어져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뱀장어 이야기처럼 순간적인 것은 아니지만 인위적으로 노력해도 반야의 힘이 작동하는 것이다. 잘 되는 것은 그 사람 사정이고 내 마음 편해지는 것은 내 사정이다. 그래도 명색이 불교 공부하는 사람인데 사람이 잘못되는 걸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반야를 한 번 체험해 봤다.

 

또 하나는 경전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33 28천 설명할 때 제석천 도솔천 말했다. 제석천 주인인 제석환인의 손자가 단군이다. 우리는 모두 도솔천 자식들이다. 33천과 굉장히 관련이 많은 민족이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이다. 인간세계보다 못한 아수라 세계가 있다. 아수라도 선 아수라와 악 아수라가 있다 한다. 원래 금강경 수지독송할 때 수호해주는 신장님은 일체 세간 천인 아수라인데 선 아수라 악 아수라를 다 포함한 개념이다. 원래는 아수라가 제석천인보다 더 높고 수승했다 한다. 아함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수라와 제석천인은 원래 친했다. 아수라 여동생이 있었다. 제석천인이 놀러갔다 여동생을 건드렸다 싸운다. 제석천인이 한 대 맞고 넘어지는 순간 새 집이 있어 피하다 엄청난 힘이 들어와 제석천인이 아수라를 이긴다. 그래서 더 위로 올라간다. 그때 제석천인의 마음은 새 집의 새와 업은 다르지만 반야가 같은 것이다. 반야의 힘이 작동하면 그렇게 된다.

 

도솔천 욕계 6天 가운데 제4

제석천<Sakra devanam indra> - 불법과 이에 귀의하는 자를 수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징벌하는 하늘의 임금     

 

이것은 말로도 글로도 안 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다 무의식 중에 써본 적이 있다. 이 말 듣는 중에도 아 맞아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어 하는 그것이 반야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반야는 하루 3분 되고 업식은 23시간 57분 되니까 반야가 항상 업식에 눌려 그렇지 있기는 있는 것이다. 반야를 증장시키거나 사용하게 되면 그 힘이 정말 크다. 주역이 불교보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영역이 다르니 비교하지 말자는 것이지 누가 더 낫다 못하다 그런 말이 아니다. 우리는 업이 있으니 사주팔자 주역에 휘둘린다. 그런데 업식에 전혀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제시해준 분이 부처님이시다. 반야를 하게 되면 완전히 다 바뀐다. 나도 미워하는 사람 많다. 정말 미우면 기도한다. 그것이 반야다.

 

금강경 4구게만이라도 전하면 어떤 보시보다 좋다고 하는데 4구게가 뭔가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도 사구게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도 4구게다. 삼천대천세계를 가즉 채운 보시보다 4구게가 좋다는데 내가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실 답 못했다. 4구게는 5 26 32분에 계속 나온다. 공덕 쌓겠다고 4구게부터 찾게 되면 그것이 욕심 된다. 4구게를 어떻게 전하지 노트에다 써서 주나? 4구게 전하는 방법이 32분에 나온다. 불생법상이라 나온다.

    

不生法相 법상이 생겨나지 아니 할 것이다.

 

법은 중생들 마음이라 그랬으니 네 마음 속으로 그린 상으로 전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을 화두로 전하는 것도 좋은 일 같다. 아까 반야를 말씀 드린 것처럼 말과 글로는 안 되지만 너와 나는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보리 존자가 법상에 올라 법문도 하기 전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뭐야? 난 이미 다 들었다. 말하기 이전 자리 설법하기 이전 자리다. 법사가 주장자 들고 이 자리 오기 전에 이미 설법은 다 끝났다. 말하면 어긋 난다. 법문을 하겠다고 마음 낸 자체가 이미 법을 전한 것이고 법을 듣겠다고 아침 일찍 목욕재계하고 온 재가불자들 우바새 우바이 사부대중들은 이미 법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법상에 올라 주장자 치고 아무 소리 안 해도 사실은 서로 할 것은 다 한 셈이다. 줄 사람 주고 받을 사람 다 받은 것이다. 옛날 공부 많이 한 스님들 다 그러셨다. 그러나 요즘은 땡초 스님도 주장자 많이 치니 조심해야 한다. 4구게를 어떻게 전하지? 그것도 큰 공부다

 

13분에서 운명과 숙명 말했는데 그전에 증상연을 설명하면서 콩 심은 데 콩이 안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안 나고 콩을 하나 심었는데 팥이 나올 수도 있고 했더니 어떤 분이 질문해 왔다. 혜거스님 금강경 강의와 다르다. 선인선과 악인악과 절대 어긋날 수 없다 그랬는데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선인이 악과를 받는다는 말인가요? 선인선과 악인악과가 맞다. 금강경을 모르는 경우에. 우리같이 무리 지어 살고 거듭 태어나는 중생들은 선인선과 악인악과가 맞다. 부처님 말씀하신 고락사 3수는 자신이 받아들여 인식할 때 싫다 좋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버릴 사를 말한다. 그래서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이다. 자신이 행위를 할 때부터 즐거워서 하면 樂 선인이다. 자기가 알고 하는 것은 나중에 정확히 받는다. 고와 락은 선인선과 악인악과로 딱 떨어진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가만이 있는 것 이것이 나중에 증상연을 만드는 것이다.

 

증상연<Adhipati-pratyaya> - 다른 법을 일으키는 데 힘이 되는 연      

 

이렇게 인을 심어 놨지만 현재의 因도 緣이 있어야 나중에 果가 맺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깨달아 연을 잘 맺게 되면 좋다. 대표적인 것이 육조혜능대사 이야기다. 누군가 죽이려고 온다. 알고 돈 놔두고 숨는다. 지난 생에 돈이 없어 네 돈 10냥 훔친 적 있지만 목숨은 뺏지 않았다. 그러니 훔친 돈 10배만 더 받아 가라 말한다. 그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갈 수밖에 없다. 도둑놈은 돈 밖에 없는 데 살인을 저지를 뻔 했다. 이렇게 눈 밝은 선지식이 연을 바꿔 준다. 천냥 빚도 말 한마디에 갚는다 그런 말 있다. 사실 천 냥 다 갚아야 하는데 연을 잘 맺으면 말 한마디로 갚는다는 뜻이다. 이 연을 잘 맺는 것이 바로 반야다. 반야로 연을 맺으면 업식이 아니라 반야의 마음으로 되고 천냥 빚도 말 한 마디로 갚는 것이다. 그것이 증상연이다. 중생들은 고락으로 선인선과 악인악과 정확히 받지만 고도 아니고 락도 아닌 사가 부처님 가르침 받고 말도 생각 행동도 바뀌어서 반야의 힘으로 작동하면 연도 달리 작동하게 된다.

 

평형저울을 예로 들어 보자. 한쪽엔 선한 과보<> 다른 쪽엔 악한 과보<>가 있어 균형을 잡고있다 하자. 팽팽한 평형을 이루지만 깃털 하나라도 붙으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깃털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고락사 3수를 무지하게 뿌려 놨다. 그런데 그중에서 이상하게 뿌려 놓은 사를 깨달아 알게 되면 저울추는 다시 바뀐다. 복을 많이 지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반대로 금강경의 이런 가르침을 잘 몰라 혜능스님 해치러 온 사람처럼 10냥 빚만 받아가면 되는데 상대의 목숨을 뺏었다 그러면 저울추는 악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이런 것을 낙타의 바늘효과라 그런다. 괜찮네 그러면서 자꾸 싣다 보면 나중에 아주 미세한 바늘 하나에 낙타 허리가 부러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저질러 놓은 것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고락사 3수 중 사를 저울추 어느 쪽으로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바로 증상연 얘기다. 중생들 얘기다. 하지만 금강경에서 말하는 보살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 없어. ? 있어. ? 없어.

난 좋은 것만 가질래 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금강경 가르침이다. 유마경에도 나온다. 대승경전이 무서운 것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부처님 제자 중에 지율제일 우팔리<Upali> 존자가 있다. 어떤 남매가 있다 오빠가 출가를 했다. 속가에 남아 있던 여동생이 오빠 찾아 절에 간다. 마침 오빠 도반스님과 같이 있다 건드리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오빠는 이 사실을 알고 자기 여동생을 죽여버린다. 도반도 밉지만 자기 여동생이 더 미운 것이다. 살생과 사음에 딱 걸려든 것이. 그래서 우팔리 존자한테 가 묻는다. 그러자 큰 죄를 졌다 말한다. 마침 이때 유마대사가 지나가다 이 장면을 보고 당신 그렇게 사람 가르치지 말아. 자성이 본디 없거늘 죄가 본래 실체가 없고 형상이 없는데 없는 죄를 자꾸 형상화시켜 죄를 더 무겁게 하지 말아 그런다. 유마경 이야기다. 그러니까 금강경 같은 대승경전은 즐거움도 망이고 괴로움도 망이다.

 

보통 나무관세음보살 찾을 때 보면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만 부른다. 좋은 일 있을 때는 잘 안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고통스럽고 힘들 때 절에 많이 가지 즐거우면 놀러 간다. 할 수 없다. 그런데 대승에선 뭐냐? 즐거움도 망이고 괴로움도 망이란 것이다. 천수경 보면 죄무자성종심기 나온다. 왜 당신은 제자들 죄를 더 무겁게 만드는 것인가? 유마거사한테 엄청나게 깨진다. 나중에 우팔리 존자 보고 유마거사 문병 가라니까 저는 못 갑니다. 굉장히 수승한 분이라 제가 병문안을 갈 수가 없습니다.

 

죄무자성종심기 죄는 본래 자성이 없고 마음 따라 일어난다.    

 

운명과 숙명

사람들이 업식으로 지어놓은 모든 것은 운명이다. 운명은 고락사 3수 중 사다. 숙명은 고와 락이다. 선인선과 악인악과로 확실히 뿌려놓은 것이다. 운명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다. 중생 입장에서 말하는 것과 보살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다르다.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 자식이지만 나를 속 썩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 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보다 더 깊은 관조를 해서 악인악과 고와 락<탐진>이 밝혀진 것이 숙명이다. 잠잘 宿이니까 숨어 있다 나온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아니다. 살다 보면 무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운명은 운이고 숙명은 숙이다. 운명은 부처님 가르침 대로 하면 밟고 가라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일 있을 때 운명인가 숙명인가 잘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운명을 따라가면 바보다. 숙명은 또 안 따라가면 바보다. 자기가 잘 생각해 봐서 고와 락 탐진치 숨겨놓은 원인이 있다 그러면 그 과보 달갑게 받아야 한다. 그 과보마저 피하려면 부처님 법 공부할 필요없고 금강경 공부할 필요없다. 금강경 공부하다 보면 배짱도 생긴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 보고 관을 해봐도 알 수 없다면 운명이니 밟고 지나가야 한다. 운명이 훨씬 많다. 그래서 왠만한 어려움 다 밟고 지나가야 한다.

 

 

실패를 자산으로<우붕잡억>

1.덩샤오핑 - 73세에 다시 중국을 살린다는 일념으로 산 분이다.

2.Conel Harland sanders – KFC 창업자. 65살에 다시 일어 서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이다.

3.지셴린 우붕잡억 저자 <외양간의 갖가지 기억. 외양간은 문화대혁명 때 비판 대상자들이 갇혀 있던 장소를 빗댄 말. 우붕=소 외양간>

70 넘어 다시 도전한 사람들이다. 운명과 숙명의 개념을 안 사람들이다. 보통 50 넘어 실패하면 대부분 사람들 재기 못한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은 반야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닭고기 팔아 돈을 벌겠다는 뜻이 아니라 맛있는 닭고기를 사람들이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이다. 등소평도 모택동에 대한 억울함보다 중국인민을 잘살게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일어난 것이다. 지셴린도 문혁 때의 슬픈 얘기를 나라도 하겠다고 또 일어나는 것이다. 반야를 모르면 재기 못한다. 업식으로만 하면 늪으로 빠져 들어간다.

15. 우승택 금강경<여법수지분> 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