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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이 곧 자연, 산처럼 솟아 폭포처럼 떨어지는

淸潭 2011. 1. 31. 11:09

 

붓이 곧 자연, 산처럼 솟아 폭포처럼 떨어지는…

서예가 蒼巖 이삼만 특별전
조선후기 김정희·조광진과 '三筆' 흐르듯 예스러운 '유수체' 확립
"앞으로 秋史만큼 진가 드러날 것"

조선후기의 서예가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1770~1847) 탄생 240주년을 맞아 특별전 〈창암 이삼만-물처럼 바람처럼〉이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호남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창암 이삼만은 19세기 당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1772~1840)과 함께 '삼필(三筆)'로 불렸지만 지금까지 본격적인 연구가 부족해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창암은 전주이씨 반가(班家)의 후예로 태어났지만 집안이 기울어 부친은 약초를 캐러 다녀야 했다. 약초를 캐던 부친이 뱀에 물려 사망하자 창암은 그때부터 보이는 뱀을 모두 죽여 '축사(逐蛇)장군' '벽사 이삼만'으로 이름을 날렸다.

조선 후기 서예가 창암 이삼만의 유수체(괥水體)를 보여주는‘사시사’육언시 부분.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며, 물 흐르듯 쓴 창암의 대표 작품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제공
창암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31세 때는 서예 교과서인 '화동서법(華東書法)'을 펴냈다. 이 책은 조선의 한석봉(韓石峯)과 명나라의 동기창(董其昌) 등 한국과 중국 여섯 대가의 필적을 소개하고 있다. 이 무렵 창암은 '명창 정씨'를 만나 평생 예도(藝道)의 동반자로 함께 했는데 그의 글씨에서 판소리 가락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창암은 중국한국 서예가들의 필묵을 두루 섭렵하고 자신만의 유수체(流水體)를 확립했다. 물 흐르듯 유려하면서도 굳세고 예스러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산광수색(山光水色)'은 깊은 산의 웅장함을 느끼는 순간 눈앞에서 폭포가 떨어지는 듯하다. 산과 물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다가오다가 어느 순간 자연과 합일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가늘다 굵어지고 진하다가 엷어지는 대비가 화면에서 뛰어난 조화를 이룬다. 그는 작가의 성정과 기질이 삼라만상의 형상을 빌려 상징적으로 표현돼야 무한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산광수색' 작품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창암 이삼만이 쓴‘산광수색(山光水色)’.“ 산은 높고 물은 맑다”는 뜻으로, 창암 유수체의 조형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제공
창암의 유수체는 획을 흘려 쓰는 행초서(行草書)에서 잘 나타나며 60대부터 깊어지고 무르익어갔다. 타계하기 1년 전에 쓴 '사시사(四時詞)' 육언시는 막힘 없이 가볍고 자유로운 유수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물 흐르듯 바람이 부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기운이 생동한다. '일운무적 득필천연(逸韻無跡 得筆天然)'이란 글씨는 "빼어난 소리는 흔적이 없고 경지에 이른 필법은 자연 그 자체"라는 뜻으로 자신이 추구하던 서도의 경지를 표현했다. '임지관월(臨池觀月·연못에서 달을 바라보다)'이란 글씨는 추상회화를 보는 듯 동양철학의 깊이와 조형미가 동시에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창암의 걸작과 미공개작 등 100여점을 통해 그의 풍부한 서예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서예박물관 이동국 수석 큐레이터는 "앞으로 추사 못지않게 진가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 계속되며, 정읍사예술관(2011.3.5~13), 전북도립미술관(3.18~4.17), 국립광주박물관(4.23~ 5.22)으로 순회전이 이어진다. 예술의전당 관람료 3000~5000원,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