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첫눈 / 이언적(李彦迪),新雪-28

淸潭 2010. 12. 11. 10:39

출처;음악정원

글쓴이;사맛디

 

한시의 산책







      - 첫눈
      - 이언적(李彦迪),新雪 新雪今朝忽滿地 신설금조홀만지 怳然坐我水精宮 황연좌아수정궁 柴門誰作剡溪訪 시문수작섬계방 獨對前山歲暮松 독대전산세모송 첫눈 내린 오늘 아침 땅을 가득 덮었으니 황홀하게 수정궁에 나를 앉혀 놓았구나 사립문에 누군가가 섬계(剡溪) 찾아왔으려나 앞산에 소나무를 나 혼자서 마주하네 첫눈이 올 무렵은 대개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이어서 오는 듯 마는 듯 감질나게 내리거나 절반쯤 녹은 눈비의 형태로 내릴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시에서처럼 첫눈은 밤사이에 수북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야 반가움과 경이로움이 큰 법이다. 그래서 작자는 황홀하게 자신을 수정궁에 앉혀 놓은 것 같다고까지 하였다. 세 번째 구(句)는 유명한 고사를 사용하였다. 명필 왕희지(王羲之)와 그 아들 왕휘지(王徽之)는 부자간에 고상한 풍모로 유명하다. 그 왕휘지가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날 밤에 문득 섬계(剡溪)에 살고 있는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나서 배를 타고 찾아갔다. 그러나 정작 문앞에 이르러서는 홀연 되돌아오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다. 그의 대답이 만고에 회자된다. "원래 흥을 타서 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가는 것이니(乘興而來 盡興而反) 어찌 꼭 친구를 볼 필요가 있겠소". 논리적으로 따지면 실없기 짝이 없는 행동이지만 작위(作爲)에 얽매이지 않는 유유한 태도는 가히 선승(禪僧)의 경지이다. 따라서 이 세 번째 구는 '내 친구 중 누가 왕휘지처럼 지난 밤에 흥이 나서 나를 찾아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았을까'하는 은근한 기대를 들어낸 것이다. 대규의 입장에서는 친구가 왔다 갔는지 전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한밤중에 자기를 찾아와 줄 생각을 하는 고상한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작자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 구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를 연상케 한다. 한해가 다 저물어 온갖 나무들은 낙엽지고 앙상한 모습인데 앞산의 소나무는 꿋꿋한 자태로 푸름을 잃지 않고 있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은 조선 전기의 유명한 성리학자이다. 여기의 소나무는 바로 자신의 정신적 지향을 나타낸다. 그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경주 안강(安康) 양동(良同)이다. 최근에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로 그 양동마을이다. 안강에서 대구(大邱)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자옥산(紫玉山) 아래 옥산서원(玉山書院)이 있고 그의 문집들이 보관되어 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경치가 빼어나 초,중학생 시절 봄 가을에 그 곳으로 소풍을 가고는 했다. 부근에는 왕릉과 유적들이 많다. 드라마 선덕여왕(善德女王)에서 안강성(安康城)으로 나오는 곳이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소년기를 보낸 그곳을 잊은 적이 없다. 요즘도 가끔 호젓한 밤 꿈길에서 가 보고는 한다. 누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서라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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