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월야(月夜).....김령(金 坽)

淸潭 2010. 6. 12. 13:02

  

 

 

 
月夜1

(월야1)

달밤.......김령(金坽)

 

明月入我戶

(명월입아호)

밝은 달이 내 방에 들어오는데

 

獨坐鳴瑤琴

(독좌명요금)

홀로 앉으니 거문고 소리 울려온다.

 

萬籟自寥寂

(만뢰자요적)

온갖 소리 다 쓸쓸하니

 

悠然中夜心

(유연중야심)

한밤에 내 마음은 아득하여라

 

 

月夜2

 

琴鳴月色靜

(금명월색정)

월색은 고요한데 거문고 울리고

 

月白琴聲淸

(월백금성청)

달빛은 희고 거문고 소리 맑구나

 

撫琴見明月

(무금견명월)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밝은 달 바라보니

 

此夜難爲情

(차야난위정)

이같은 밤에야 마음잡기 어렵구나

 

 

김령 (金령)  1577년(선조10) ~ 1641년(인조19)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준(子峻), 호는 계암(溪巖), 시호는 문정공(文貞公)이요, 예안출신이며

아버지는 현감 부륜(富倫)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로 부호군(副護軍) 수민(壽民)의 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의 나이 17세에 유성룡(柳成龍)의 막하로 자진 종군하여

당시 명나라의 총병사 오유충(吳維忠)과 유격장 노득공(盧得功) 두 사람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을 정도로 학식이 숙성하였다.

1612년(광해군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주서에 이르렀으나,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비관하여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618년 인목대비가 폐위되자 두문불출 독서로 소일하였다.

1624년(인조4)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한양으로 인조를 찾아나섰으나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요형(耀亨)을 시켜 상소를 올리게 하고서 돌아왔다.

뒤에 신하로서 아들을 시켜 상소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났다는 격렬한 상소가 있었으나

인조가 이를 모두 무마시켰다. 그뒤로도 학덕을 잊지 못한 이조가 장령, 보덕, 헌납, 사간 등으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번번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 병사가

남한산성을 포위하자 가산을 모두 털어 의병들의 군량미로 충당하였으며

끝내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비분강개한 시 수편을 남겼다.

벼슬에서 물러나 죽을 때까지 처음에는 제자들과 경승지를 찾아 마음을 달래었으나,

마지막 20여년간은 문밖출입을 삼가며 오가는 사람도 방에 앉아 영접하고 보내,

세상에서 영남 제1인이라고 불렀다.

1689년(숙종15)에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영조 때는 원액(院額)이 하사되었다.

저서로는 계암집(溪巖集) 6권이 있다.<웹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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