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인은 높고 양반은 낮다’ 동요 유행… 북인 집안, 글공부 틈틈이 바둑 수업
18세기 생활상 담긴 ‘송천필담’ 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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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사회상을 담은 ‘송천필담’(보고사)을 신익철 조융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종서 한국학중앙연구원 강사, 한영규 성균관대 수석연구원이 최근 완역했다. 18세기 후반 문인인 심재(沈/·1722∼1784)가 편찬한 것으로 총 837편의 짤막한 글에 자신의 체험이나 독서편력, 관심사, 세태풍속 등을 기록했다.
18세기 초 한양의 도로가 눈으로 진창이 되자 관청에서는 도로 양편의 진흙을 깎아 모아 가운데를 높였다. 이 일로 ‘중간 길은 높고 양쪽 가는 낮다(中路高 兩班低)’는 동요가 유행했다. 중로(中路), 즉 중인의 힘은 커지고 가난한 양반(兩班)은 몰락하던 당대를 빗댄 노래이기도 하다.
당시는 조정이 노론과 소론, 소론은 또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던 시대였다. 심재가 기록한 일화를 보면 당파마다 자녀교육법과 독서법까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인 집안에서는 ‘장자’ ‘사기’ 등 다양한 글을 읽힌다면 북인 집안에서는 글을 가르치는 틈틈이 바둑을 반드시 두게 해 집안사람들이 모두 수준급의 바둑 실력을 갖췄다는 식이다.
심재는 말년에 함경남도로 귀양을 간 뒤 이 지방의 세태와 풍속도 책 속에 담았다. “관북(關北)의 여러 고을은 모두 큰 바다에 임해 있어서… 이따금 죽은 고래를 잡게 되면, 팔아서 이익을 남긴다”며 당시 고래잡이 풍경을 기록했다. 또 다른 글에서는 “한 길 남짓한 나무판으로 앞부분을 뾰족하게 하여 발의 좌우에 묶어 두니 ‘썰매(雪馬)’라고 하는 것이다”라며 일종의 ‘현대판 스키’가 당시 겨울철 사냥에 사용됐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미술사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있다. 역대 명필의 글씨를 모은 ‘대동서법’을 보고 각 명필의 글을 평한 글이나 궁궐 각 현판에 글씨를 쓴 인물을 기록한 대목 등이다. 이항복, 송시열 등 당대의 유명한 문인에 관한 일화, 종들이 주인을 저주해 죽이자 그 자식이 다시 종들을 벌한 사건, 세간에 화제가 됐던 살인사건 등의 전모, 기녀나 칼 만드는 장인 등 하층민 중에서도 기이한 인물들에 관한 기록도 등장한다.
신 교수는 “심재는 중국의 최신 서적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 독서 폭이 넓고 함경도부터 남해 지역까지 두루 구경해 견문이 풍부했던 인물”이라며 “‘어우야담’이 17세기 초를 전후한 조선 사회상을 담았다면 ‘송천필담’은 18세기 조선 사회가 변모하는 양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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