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30] 중화학공업화 선언 • 눈물과 땀… '한강의 기적' 꽃피워 |
발행일 : 2008.07.17 / 종합 A6 면 기고자 : 유석재 |
1973년 1월 12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화(重化學工業化)'를 선언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31일 경제제2수석비서관 오원철(吳源哲)로부터 네 시간 동안 브리핑을 들었다. "공업구조를 개편하고 산업을 확대해야 합니다. 종합화학공장과 조선소, 기계공업을 육성하고, 최신 기술과 대규모 공장을 마련하는 게 필요합니다.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동시에 건설해서 북한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박정희는 드디어 지시를 내렸다. "필요한 외자도입 조치를 하시오!" 그 회의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1인당 GNP 320달러(1972년)의 나라가 조선·전자·기계·제철·자동차·석유화학·원자력 등 기술집약적인 핵심산업을 모두 진흥하는 엄청난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김정렴(金正濂)과 중화학공업기획단장 오원철이 핵심 역할을 맡았고,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분야당 1~2개의 민간업체를 선정해 부지와 도로, 자금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1973년 7월 3일, 한국 중화학공업의 상징과도 같은 연산 103만t 규모의 포항제철이 3년 만에 준공됐다. 첫 쇳물이 쏟아지자 사장 박태준(朴泰俊) 이하 직원들은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쏟았다. 포철의 규모는 1978년 550만t, 1981년 850만t으로 급증했다. 박정희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조선소 건설을 기권하려는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鄭周永)에게 "내 앞에 앉은 사람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던 그 사람이 맞느냐"고 독려했다. 유럽으로 날아간 정주영은 500원 지폐의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는 수백 년 전에 이런 배를 만들었다"며 배짱을 부린 끝에 차관을 얻어냈다. 현대조선소는 1975년에 준공됐다. 1976년에는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서 수십 년 또는 100년 이상이 걸린 산업구조의 변화가 대한민국에선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났다. 1973~1979년 한국의 제조업은 연평균 16.6%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1980년 전체 제조업에서 중화학공업의 비중은 54%가 됐다. 1965년 필리핀의 절반에 불과하던 한국의 1인당 GNP(106달러)는 1979년 1745달러로 필리핀의 세 배였다. '한강의 기적'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동영상 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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