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역사의기록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29] 10월유신

淸潭 2008. 7. 24. 12:29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29] 10월유신

 憲政 중단… 체육관 선거 시작


발행일 : 2008.07.16 / 종합 A8 면 기고자 : 유석재 
 
종이신문보기

소요나 시위가 일어난 것도 아니었고, 북한이 무력 도발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1972년 10월 17일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무척 평범하고 평온한 날처럼 보였다. 그날 저녁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는 갑작스러운 비상조치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며 정치활동을 중단시키고, 열흘 안에 새 헌법을 공고한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출판·방송엔 사전 검열이 실시됐다. 한 마디로 '헌정(憲政) 중단'이었다.

사실상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가능케 했던 이 '10월 유신(維新)'체제는 대통령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그해 5월부터 박정희는 국무총리 김종필(金鍾泌) 등에게 "획기적인 체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고, 6월에는 비서관 동훈(董勳)에게 1971년의 대선을 회고하며 "이제 그 따위 놈의 선거는 없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비상조치 발표문에는 '미국과 중공의 접근이 이번 조치의 한 원인'이란 말이 있었으나 당일 아침 삭제됐다. '유신'이란 '시경(詩經)'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거기서 어렵지 않게 일본의 메이지(明治)유신을 떠올렸다.

10월 27일에 공고된 유신헌법은 11월 21일 비상계엄령하의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이 헌법은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 국회해산권을 부여했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유정회)과 법관의 임명권도 대통령이 갖게 했지만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없게 했다. 12월 15일에는 대통령을 뽑는 권한을 갖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선거가 치러졌다. 등록 과정에서부터 정부의 통제하에 있었던 이들 대의원 2359명은 12월 23일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른바 '체육관 선거'의 시작이었다. 단독 출마한 박정희는 2357명의 지지를 받아 임기 6년의 제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제 대통령은 어떠한 국가기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지니게 된 반면 대의(代議)민주주의의 정치 원리는 희미해졌다. 1972년 12월 27일 유신헌법은 공포되고 제4공화국이 출범했다. 91.9%의 투표율과 91.5%의 찬성으로 확립된 이 새로운 체제에서 대통령 박정희는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성장 산업'의 추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