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전도생활은 불과 2년이란 짧은 세월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는 전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택된 12명의 사도(使徒)가 있었다. ‘사도’라는 것은, 원어인 그리스어로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이고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신약성서 중 <마태오의 복음서> 제10장은 12사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비롯하여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와 세리였던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가나안 사람 시몬, 그리고 예수를 팔아 넘긴 가리옷 사람 유다이다.
12사도 각각의 인격과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베드로에 대해서만 약간의 서술이 있는 정도이다. 알려진 것만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베드로-본명을 시몬이라 하고 12사도의 대표격이다. 갈릴래아의 어부의 아들이고 그 자신도 어부였다. 그는 그리스도한테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다. 이 고백에 대해 그리스도는,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마태오늬 복음서> 제 16장).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이다. 그는 초대 교황을로도 비유되고 있다.
베드로는 그러나 그리스도가 체포되었을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정할 만큼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뒤에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 그 증인으로서 용기를 갖고 나섰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네로황제의 박해에 의해 순교하였다고 한다.
2. 안드레아-베드로의 형제이며, 베드로와 같이 어부였다. 소사시아, 스큐티아, 그리스에서 전도하였다.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하였다.
3. 야고보(대 야고보)-제베대오의 아들이고 그리스도 승천 뒤에는 예루살렘의 지도자가 되었다. 12사도에는 또 한명의 야고보가 있으므로 이쪽을 대 야고보라 부르고 있다.
4. 요한-대 야고보의 형제이고 신약성서 <요한 복음서> <요한의 첫째 편지> <요한의 둘째 편지> <요한의 셋째 편지> <요한의 묵시록>의 작자라고 전해진다. 그리스도는 그에게 ‘천둥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5. 필립보-사마리아와 이디오피아에 포교하였다.
6. 바르톨로메오-소아시아, 인도 등에 포교하고, 그 이외에 아르메니아에도 갔다고 한다.
7. 토마-그리스도가 부활해서 제자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토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다른 제자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그는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하고 있다. 뒤에 그리스도는 이 토마 앞에 나타나셨기 때문에 토마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게 되었지만, 그리스도는 그에게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라고 말하고 있다(<요한의 복음서> 제20장). 파르티야, 인도에 전도했다고 전해진다. 또 자를 손에 든 모습으로 건축가, 목수의 보호성인으로 되어 있다.
8. 마태오-그의 직업은 세리(稅吏:세금을 걷는 관리)였다. 신약성서 <마태오의 복음서>의 작자로 되어 있다.
9. 야고보(소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10. 타대오-이 사람은 ‘야고보의 아들 유다’라고도 불려지고 있다.
11. 시몬-‘혁명당(Zealots;A.D.1세기경 활약하던 광신적 유대민족주의자들의 結社)의 시몬’
12. 유다(가리옷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그룹의 회계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은 30냥에 그리스도를 제사장에게 팔아 넘겨, 그리스도를 배반하였다. 뒤에 그는 자살한다. 이 가리옷의 유다가 그리스도를 배반한 뒤에는 12사도에 마티아가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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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의 10대 제자는 석가의 45년에 걸친 긴 전도생활 중에 교화한 많은 제자 속에서 특히 우수한 10면을 선택한 것으로 이것은 후세의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지 석가 자신이 지명한 것은 아니다.
1. 샤리뿌뜨라(舍利佛)-그는 처음에는 산자야라는 회의론자의 제자였다. 석가를 알고나서 그 가르침에 감동하여, 친한 친구 목건련과 함께 산자야의 교단을 떠나 불교교단에 참가하였다. 그때 산자야 교단의 250명이 사리불, 목건련과 함께 불교교단에 개종했다고 한다. 불교교단에 있어 사리불은 ‘지혜제일’이라고 칭해지고, 석가의 한쪽팔이라고도 말해질 정도가 되었다. 때로는 석가를 대신해 설법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석가보다 먼저 죽었다고 전한다.
2. 마우드갈랴야나-사리불과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이고, 산자야의 교단에 있었으나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에 들어갔다. ‘신통제일’이라고 말해지고 있는데 신통이란 초자연적 능력이다. 전설에 의하면 탁발(托鉢)을 하고 있을 때 불교교단을 증오하는 바라문의 습격을 당해 죽었다고 한다. 그의 죽음도 석가의 입멸(入滅)전이었다.
3. 마하까샤빠(摩河迦葉)-‘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두타’란 금욕행(禁慾行)이고 석가의 제자중에서 가장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청렴한 인격자로 불린다. 석가의 사후에는 제1의 장로로서 불교교단을 통솔하였다.
4. 아니룻다(阿那律)-석가와 같은 석가족 출신이다. 석가의 설법을 듣다 졸아서 석가의 질책을 받았다. 자신의 실수를 반성한 아나율은 ‘불면(不眠)의 맹세’를 세우고 수행하여 끝내는 실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깨달음을 얻어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고 칭해졌다. 천안이란 깨달음의 눈, 마음의 눈을 말한다.
5. 수부띠(須菩提)-‘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해서 공(空)의 교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석가의 제자들 중 제일이었다고 한다.
6. 뿌르나-‘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고 해서 전국에 전도여행을 계속하였다.
7. 까따야나-‘논의제일(論議第一)’ 즉 불교의 교리를 논의하는데 능숙했다고 되어 있다.
8. 우빨리(優波離)-석가국에서 이발사를 하고 있었으나 석가국의 몇몇 귀족들이 출가할 때 짐을 운반하기 위해 따라왔다가 자신도 같이 출가하였다. 석가의 제자가 된 후에는 계율을 잘 지켜 ‘지율제일(持律第一)’이라 말해진다. 석가사후 교단에서는 계율방면에서의 권위로 되어 있다.
9. 라훌라(羅喉羅)-석가의 친아들이다. 불교교단에 들어간 이후로는 석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주위에서 경원했으나 그는 자신의 신분을 잘 알아 수행하였다. 계율을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되어 있다. 밀행이란 계율을 자세한 것까지 잘 지키는 것이다.
10. 아난다(阿難)-석가의 사촌이고, 석가에 반역했다고 하는 데바닷따(提婆達多)의 형제이다. 석가 만년의 25년간을 그의 시자(侍者)로서 계속 석가를 모셨다. 석가의 설법을 잘 듣고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제자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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