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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22 - 강흥 이현로 (李賢老)

淸潭 2007. 9. 8. 21:49
 
몽유도원도 22 - 강흥 이현로 (李賢老)

 

 

 

 

이현로(이현로) : ? ~ 단종 1년 ( ? ~ 1453)

 

初名은 善老, 본관은 江興. 光後의 아들로 세종 20년(1438)

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집현전교리(集賢殿校理)를 거쳐

세종 29년(1447) 병조정랑(兵曹正郞)이 되었으나,

이 해에 뇌물을 받은 죄로 남평에 유배되었다.

 

문종 1년(1451) 유배에서 풀려나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에

등용되었으나, 이듬해 안평대군에게 아부하여

권세를 부린다는 수양대군 측의 탄핵을 받고

삭직(削職)되었다가, 단종 1년(1453) 계유정난(癸酉靖難)이

발생하여 남원(南原)으로 귀양가던 중에

정분(鄭분)과 함께 살해되었다.

 

 

 

 

 

[작품 해설]

 

몽도원부

학 날아가는 길 아득한데

봉황세 모양의 생(笙)소리 유유히 울려 퍼지네.

 

신선이 사는 곳 속세와 멀고,

지난 일 모두 뜬구름 같네.

 

내 일찌기 도연명의 도화원기 읽고

한창려의 시를 읽었었네.

 

옛날의 신선들을 아름답게 여겼거니와

속에 맺힌 답답한 마음을 누가 알아 주리오.

 

적송자의 속세 등진 맑은 언동 듣고나서,

나도 그 풍도 본받고자 하였다네.

 

이 세상 밖에 도원의 경지 찾아보려고

천지 사방 끝까지 다 가 보았다네.

 

길 멀고도 멀었으나

위 아래로 다 찾았다네.

 

마음으로야 곧장 그 곳으로 가려 하였으나

길 그윽하여 통하지를 않았다네.

 

도에 따라 재쳐 달려가고파 하였으나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몰랐다네.

 

안타까와라 중도에서 갈 바를 잃고서,

뒤를 돌아보며 방황을 하였다네.

 

그윽한 곳의 난초 엮어 띠를 매고 머뭇거리나니

내 마음은 진정 미덥고 향그러워라.

 

속세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도 그만,

나는 그만 물러나 다시 나의 처음 입었던

그대로의 옷을 가다듬으려네.

 

복숭아꽃 떠가는 봄 물결 건너,

삼급에서 교룡의 모습 바꾸어 놓으려 한다네.

 

영주의 하늘나라에 오르고

구지의 풍랑을 즐기려네.

 

지체 높고도 높으신 분의 큰 덕 가까이에서 뵙고

힘써 글로 엮어도 보려네.

 

그러나 젊은 시절의 씩씩한 회포는

지금껏 다 이루지를 못하였다네.

 

 


 

오고 감에 정신은 또렷 또렷하건만

한해 두해 나이만 더해 간다네.

 

온 나라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 없다 한들

내 어찌 요즈음 사람을 원망 하리오.

 

다행히 하늘나라 신선되는 꿈을 꾸었고

때로는 나도 신선과 사귈 수 있을 것 같다네.

 

옥으로 지은 궁전에 때는 바야흐로 이른 봄,

구리 항아리 시계는 더디기만 하구나.

 

상아 침대에서 베개 베고 누워서

비단 창문에 휘장 내렸네.

 

쉬다가 살포시 잠이 들었는데

정신은 잠깐 사이에 하늘 위로 날아올랐네.

 

풍백이 앞장서서 인도하고

뇌사가 길을 헤치네.

 

흰 사슴에 올라타고, 푸른 용에 채찍하며 나갔다네.

 

옥 구슬 허리에 차고, 구름깃발 휘날렸다네.

 

무지개 찬란한 빛 드높이고,

천천히 절도 있게 앞으로 나아갔네.

 

곤륜산을 향하여 길잡아 나아가니.

허리에 찬 구슬이 영롱한 빛 반사하며 쟁그렁거리네.

 

신선 고을에 이르러 잠시 쉬면서

눈 돌려 주변을 살펴보네.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운지라

즐거운 마음 짐짓 나비에 기탁하여 본다네.

 

옳고 그름 다 그렇고 그런 것,

잠시 허물 벗은 가을매미 같은 느낌이네.

 

시냇물에는 금고의 붉은 잉어가 뛰고

들판에는 푸른 소가 그늘에 몸을 숨기네.

 

단약 끓이는 솥에 불 피우는데

두약이 향기로운 물가에 흐드러졌네.

 

복숭아꽃 물따라 저멀리 흘러 가는데,

바로 호리병 속 같은 딴 세상이라네.

 

대나무로 지은 집에 사립문 닫혀져 있는 곳

인간의 세월이 아니네.

 

구름 저 끝에 옥으로 다듬은 듯한 절구공이 세워져 있고

개울 바닥엔 금장을 담았네.

 

형상의 꽃가루를 몽글게 빻아서

 

 


 

단사를 만들었네.

 

요초로 푸른 자리를 엮어 밝은 들판에 펴 놓았고,

옥으로 지은 누각이 높이 구름 위까지 솟았네.

 

눈 닿은 곳 아득히 보이는 것 없고,

황홀한 가운데 들리는 소리 없네.

 

위로 탁 트였으되 하늘이 아니고

아래로는 산 우뚝 우뚝 솟아 멀리까지 남은 땅이 없네.

 

티끌바람 닿지 않는 아득한 곳,

신선과 속세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네.

 

향초 자라는 꽃 피인 섬,

올망 졸망 바다 위에 떠 있는 신선의 고장.

 

늘어뜨린 옷자락은 구름인 듯 비인 듯,

대부분이 귤 속에서 나왔다는 신선 노인들.

 

아련히 악전의 모습이요.

조용함은 마치 교진이 지팡이 짚고

산천 소요하는 자태로세.

 

모두가 옥지(玉池)에서 헤엄을 치고,

구슬 깔린 뜰에서 훨훨 나래펴고 나르네.

 

폭포의 깨끗한 물을 마시고,

아름다운 꽃을 품에 지녔네.

 

깊은 밤에 내리는 이슬을 마시고 육기를 먹으며,

아침 안개를 머금고 푸른 정기를 배불리 먹네.

 

음양이 그들의 춥고 더운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조화가 그들의 흥망을 관장할 수 없네.

 

담담하게 행하는 일 없어도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며,

세상과 나를 모두 함께 잊었네.

 

문득 내가 누구이며

무엇하러 이 곳까지 왔는지를 알지 못하였네.

 

하늘에 바람 솔솔 불고,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혔네.

 

대나무 숲에 빗방울 후드기니,

세상이 온통 하나로 맑은 영대(靈臺)로세.

 

짐짓 유가 선가를 뒷따르는데,

의관과 수레 덮개 엄정히 갖추니 빛 더욱 나네.

 

눈에 들어오는 대로의 선경을 묘사하며,

시 몇 수 지어 주머니에 담았네.

 

삼투의 비술을 시험하여 보고,

만 가지 변화의 현묘한 이치를 파고들어 보네.

 

황홀한 가운데 마치 신선 사는 허허한 곳에 들어와 

장수 누리는 듯,

 


 

소동파가 날개 돋힌 옷 휴대하고

너울거리던 일 다시 겪는 듯하네.

 

마치 서왕모가 파랑새 타고 구름 위로 솟아 오르는 듯하고,

문중자가 흰 무지개를 끼고 하늘나라로 올라 가는 것 같네.

 

이 세상 어디메에 이와 같은 곳이 있으랴?

무릉도원이 바로 그 곳이로세!

 

내가 온 곳 되짚어 보니,

어찌됐든 길을 따라 오지는 않았네.

 

산과 내 비록 만리를 떨어져 먼 곳이긴 하지만,

잠깐 베개 베고 있던 사이에 옮겨 왔다네.

 

구중 궁궐을 한 발 나서지도 않고,

않아서 깊은 숲속의 정취 얻었네.

 

높은 신분 따지지 않고 격의가 없었으며,

산수의 거리를 축소하여 곧장 지났다네.

 

표연히 다다르니,

내 몸 훌쩍 버리고 왔음을 어찌 알리오?

 

홀연히 여기에 다다르니,

세상과 내가 함께 꿈을 꾸고 있는가

의심도 하였다네.

 

옷자락은 비처럼 쏟아지는 꽃잎에 지금도 젖어 있고,

소매자락에는 선도 몇 개가 그대로 남아 있네.

 

몸은 이미 노을진 하늘 끝에 들어 있고,

마음은 삼산의 그윽한 고을에 있네.

 

따르던 사람보고 무엇을 보았더냐 물으니,

중천에 반쯤 걸린 달뿐이었다 하네.

 

아! 부귀영화의 흔적 없음이여,

이름 하나 제대로 지키기도 어려운 일.

 

고개지 솜씨 빌어 그려내고,

용의 골수 물들여 넓은 경계 형성 하였네.

 

비바람 홀연히 지나가며

지나온 자취 휩쓸어 버리네.

 

안개 자욱한 속에 누대는 옛 모습 그대로이고,

온갖 풀과 나무, 새들은 모두가 서로 아는 사이인 듯.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 아닌데,

몸은 어떻게 천진(天眞)에 이르렀을까?

 

그림 속의 그림이 아닌데,

눈은 홀연히 먹 자욱에 미혹되었네.

 

어찌 꼭 단계이어야만 광한의 약 먹는다 할 것이며,

 

 


 

자지(紫芝)을 캐어야지만 상산의 즐거움

맛 볼 수 있다 할 것이랴!

 

나는 이에 그림을 어루만지며 펼쳐보고,

눈 크게 떠 황홀한 경지에 이르렀네.

 

일찍부터 그리워하던 터에 그 경지 얻었으니,

생각하는 바를 써서 그 뜻 다해 보리라.

 

크시도다. 지체 높으신 분의 긍지여!

부귀한 신분이시면서도 그 속에 빠지지 않았네.

 

슬프도다, 세속의 각박함이여!

훌쩍 몸을 빼어 먼 곳으로 떠나가 버리고 싶구나!

 

비해(匪懈)라 이름한 당(堂)을 짓고 세상에 뽐내며,

매죽(梅竹)이라 이름한 헌(軒)을 짓고 신선세계 찾았네.

 

상아와 구슬로 장식한 서화 족자와,

경전 만 권을 저장하였네.

 

자연과 벗하며,

마음가짐에 티끌 한 점 없었네.

 

형체는 조용한 마음탓에 부담이 적었고,

정신은 도와 함께 융화되어 참에 통하였네.

 

아홉번 다시 고은 단약의 힘 빌지 않고도,

신선세상의 바둑 한 판에 속세의 도끼자루

썩는 것 볼 수 있었다네.

 

어찌 정성이 지극하여

그대로 감통하고.

 

형체를 잊은 상태에서

현묘함을 통찰하며,

 

어둠속에서도

넓은 물 건너는 공력 때문이 아니랴!

 

천지와 더불어 기리 존재하고,

해와 달처럼 빛나리.

 

한폭의 그림에 선경을 다 드러내었고,

우주의 원기를 들이마셨네.

 

이 세상과 풍속을 멀리하고,

도원의 경내에 터를 잡았네.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즐겁게 하고,

마음 놓고 태평성대 누리게 하였네.

 

옛날 옛적의 순박한 풍습 되살리고,

쉽게 신의 저버리는 세태 말끔히 내동댕이쳤네.

 

 



 

속세의 풍습인즉 공교함만 따르고,

명예와 이익 좇아 서로 다투네.

 

해골 같은 인간들이 세월따라 몰려가고,

슬픔과 즐거움 엇섞여 오장육부 녹아나네.

 

잠깐 사이에 꾼 꿈이라 하지만,

꿈속에서 겪은 일들 낱낱이 현실일세.

 

오색의 붓 놀려 화려함을 더 하였고,

꿈에 칼 세자루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주의 자사가 되었다네.

 

소나무 심어 가문 드러내기도 하고,

난초 선사하여 이름 높이기도 하네,

 

탁류에 휩쓸려 빠져 나오지 못하고,

화려하기만 하고 이룩한 것 없네.

 

이는 모두 길흉에 정신이 팔리고,

영욕에만 마음을 쓰기 때문이라네,

 

뱁새 나무가지 위의 평안함만 알고,

큰 새 천리를 날으는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 하겠네.

 

저들 속된 무리들을 고치는 방법이 없으니,

전생에서부터 몸에 배인 탓.

 

진나라 한나라의 군왕은 어쩌자고,

방사의 불로장생 헛소리에 미혹되어.

 

넓고 넓은 천지에 삼신산을 찾았으며,

뭇 사람의 뼈를 궁벽된 곳에 드러내게 하였던고?

 

바람따라 배에 돛 달았으되 이르지 못하였으니,

망양(亡羊)과 견주어 득실은 어느 쪽이 많은고?

 

한번 웃음거리도 못 되는 일이어늘,

사람들은 내내 탄식하며 마음 아파하네.

 

나는 먼지 이는 흙 위에 눈물 뿌리고,

단구를 바라보며 한숨을 짓는다네.

 

천년에 한번 있기 어려운 좋은 꿈을 만나,

한 폭의 신묘한 그림 보았네.

 

오래 오래 내 마음에 품어오던 바로 그러한 곳,

마치 내 눈으로 그 광경 직접 본 것만 같네.

 

연단 술 익히는 과정의 들머리가 아니고도,

날개 돋혀 신선세계로 오를 만하네.

 

이에 노래 부르노니

도원을 꿈에 보니

 



 

 

세상에는 흔치 않는 일.

 

도원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세상 사람 다투어 자랑.

 

구하여도 볼 수 없던 풍경을,

꿈에서는 현실처럼 보았네.

 

그 꿈 지금은 사라졌으나,

그림 새로 그려놓으니 느낌 새로와라.

 

그림 펼쳐놓고 꿈길 더듬으니,

뼈속까지 시원한 느낌.

 

그림 보고 시를 읊조리니,

눈도 한결 밝아지네.

 

강흥 이현로 씀.

 

 

< 참조 >

 

적송(赤松) : 곧 적송자, 신농시대의 신선.

 

구지(仇池) : 감숙성成縣에 있는 산, 산 위에 못이 있음.

 

뇌사(雷師) : 雷神, 혹은 雷公이라 하며 천둥을 맡은 신.

 

호중지천지(壺中之天地) : 별천지를 말함, 갈홍(葛洪)이 <神仙傳>을 보면 壺公이란 신선이 저자에 있다가 밤만 되면 병 속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전설.

 

육기(六氣) : 하늘과 땅 사이의 여섯가지 기운,

                곧, 陰, 陽, 風, 雨, 晦, 明.

 

삼투(三偸) : 동방삭(東方朔)이 서왕모의 선도(仙桃)를 세번이나

                 훔쳐먹었던 일.

 

환단구전(還丹九轉) : 단사(丹砂)를 가열하여 불사약을

제조함에있어 아홉 차례의 환원 단계를 거친 약으로

선약(仙藥)중 최상의 것.

 

도삼현(刀三懸) ; 晋나라 때 王濬이란 사람이 꿈에 칼 세자루가

대들보에 걸려 있는 데다 다시 한자루가 추가되는 꿈을 꾸고서

益州刺史가 되었다는 고사.

 

삼신산(三神山) : 海外의 神仙이 사는 곳.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

 

망양(亡羊) : 갈홍의 <神仙傳>에 보면 황초평(皇初平)이라는 신선이 15세에 양을 치다가 실종되었는데 후일 兄 초기(初起)가 신선이 된 初平을 만나 羊의 행방을 물었더니, 초평이 주위의 백석(白石)을 부르자 모두 양으로 변했다는 故事가 있음.

 

 

 

단구(丹丘) : 신선이 사는 곳.

海外에 있으며 밤이나 낮이나 늘 밝다고 함.

 

도규(刀圭) : 분말약을 헤아리는 숟갈.

사방 1寸 정도의 크기임.